이주영의 무용읽기_무향 춤 페스티벌

영원한 예술의 향기, ‘무향(舞香)’

이주영 칼럼니스트 승인 2022.06.21 12:17 의견 0

[댄스TV=이주영 무용칼럼니스트] 5월을 더 5월답게 만든 춤 축제, ‘제1회 무향 춤 페스티벌’. 3일 내내 춤의 향기로 가득 채우다. (사)서울국제문화예술협회(이사장 백현순)의 첫 기획공연은 창작과 전통을 한 자리에서 맛보게 했다(2022.5.18~20, 강동아트센터 소극장 드림). 특히 전통춤을 중심으로 구성했다. 다양한 춤 레퍼토리를 통해 비교와 경쟁이 아닌 춤의 향연을 ‘무향(舞香)’으로 수렴한 명실상부한 축제였다. 공연 첫날은 창작춤, 둘째와 셋째 날은 전통춤이 관객을 맞이했다.

현보람, '벽사류 월하정인'


18일 첫날 첫 무대는 발레가 연다. 육지민 안무 ‘Who Cares?’는 네오클래시즘(neo-classicism)의 매력을 보여줬다. 20C 고전발레의 대명사 조지 발라신(George Balanchine)과 가장 미국적인 스타일을 구사한다는 조지 거쉬인(George Gershwin) 음악과 만나 춤으로 발산됐다. 5명의 발레리나들이 보여준 개성미 넘치는 솔로 바리에이션은 때론 경쾌했고, 때론 은은하게 춤 공간을 채웠다. 이어진 무대는 ‘Homo Bulla(호모 불라)’. 김민정 안무자는 ‘거품’에 주목했다. 인생과 거품을 조망하되 그 본질을 성찰한 무대다. ‘호모 불라’는 인생을 거품에 비유한 예술작품들을 묶어서 부를 때 사용된다. 느릿하면서도 묵직하게 이끌어내는 힘이 있었다. 상대를 통해 진실을 바라보고, 나를 통해 상대를 알 수 있는 자아와 타자의 경계까지 고민한 흔적이 행복이란 삶의 종착역을 향해 달려갔다. 거품없는 인생이다. 이날의 마지막 작품은 고신영 안무 ‘회귀(回歸)’다. 전통춤 ‘승무’에 기반하되 회귀가 지닌 본향의 미덕을 자신만의 색깔로 채색한 작품이다. 다시 태어난다는 ‘rebirth’와 다시 뒤바꾼다는 ‘reverse’의 의미를 직조한 무대였다. 전통춤의 현대적 수용이란 측면에서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육지민, ‘Who Cares?’


둘째 날 전통춤 8작품은 우리춤이 지닌 춤결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박재희 선생의 춤을 이어가고 있는 현민아의 ‘한영숙류 태평무’는 단아 속 경쾌함까지 전해주며, 장단 변화에 따른 태평무의 춤적 느낌을 포착해 구현했다. 이어 정미래는 ‘이매방류 살풀이춤’을 통해 우리춤의 정수를 재확인시켰다. 이어 박은진은 ‘이동안류 진쇠춤’을 선보인다. 경기도당굿의 무악을 반주음악으로 사용하는 이 춤은 화성재인청의 대가인 운학 이동안 선생의 춤 유산인 진쇠춤의 엄숙함과 신명을 동시에 쇠(꽹과리)에 담아 두드렸다. 윤정옥은 ‘강선영류 태평무’를 통해 강선영류가 지닌 춤적 내재미와 외형미를 동시에 보여줬다.

박정화, '논개별곡'


둘째 날 후반부 격인 4작품이 이어진다. 요즘 전통춤판에서 종종 만날 수 있는 작품, ‘논개별곡’을 박정화가 선사했다. 김수악-김경란으로 이어지는 이 춤은 진주 기방계열과 남해안 무속의 색채가 담겼다. 이날 박정화는 ‘논개별곡’의 춤적 가치를 높였다. 풍부한 감정선에 바탕한 춤은 관조와 응시의 미적 체험을 동시에 객석에 전달했다. 연이어 이보름은 ‘이동안류 엇중모리 신칼대신무’를 엇중모리 장단 속 춤을 통해 ‘정화(淨化)’의 새로운 명제를 화두로 던졌다. 분위기가 전환된다. 엄선민의 ‘임이조류 화선무(花扇舞)’를 통해서다. 1978년 초연작이다. 허튼가락의 유유함 속 여성성 강한 춤을 대구에서 활동중인 엄선민은 5월의 춤 향기로 화답했다. 옥진정이 직접 만든 ‘쌍북채춤’은 영, 호남의 춤 특징을 쌍북채에 담아 외북으로 치며 발산한다. 덧뵈기가 주는 느낌은 두드림 속 울림 그 자체다.


셋째 날 첫 무대는 강유정이 한영숙-박재희로 이어지는 ‘한영숙류 태평무’를 우아한 자태로 태평무의 춤격에 격을 더한다. 이어 정향숙이 ‘논개별곡’을 선보이다. 논개살풀이의 고유성에 창작성이 더해진 이 춤을 정향숙은 공간에 춤을 녹이고, 시간에 삶을 더해 풀어냈다. 이어 우리춤에서 빼놓을 수 없는 벽사류 두 작품이 이어졌다. 먼저 현보람의 ‘벽사류 월하정인’이다. 이 춤은 정재만 원작의 산조춤 ‘청풍명월’을 4대 벽사 정용진이 새롭게 구성한 춤이다. 달빛에 비친, 아니 달빛과 같은 여인의 심경이 거문고 산조가락에 넘실댄다. 현보람은 은은하되 세련되게 담아냈다. 이어진 무대는 조영인의 ‘벽사류 태평무’. 한성준-한영숙-정재만으로 이어지는 벽사류 춤의 사군자 중 난(蘭)에 비유되는 춤이다. 조영인은 기품있는 춤태로 벽사류 춤이 지닌 춤의 고고함을 명징하게 드러냈다. 셋째 날 후반부 격인 4작품이 춤 바통을 이어받는다. ‘백현순류 산조 <무향>’을 유진주가 싱그럽게 연다. 가야금 산조에 넘실거리며 추는 솔로춤으로 이번 무대에서 초연되는 사적 의미도 있다. 진양,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도 구성된 이 춤을 유진주는 ‘무향’이란 춤빛으로 객석에 향기를 전했다. 다음 무대는 강선미의 ‘구음검무’. 김수악의 구음에 맞춰 재구성된 김경란류 구음검무다. 춤의 다양성, 소리와의 조화 등이 눈길을 끌었다. 악기춤으로 무대가 전환된다. 정읍농악의 설장구 계보를 이어가고 있는 전선희가 ‘정읍농악 이영상류 설장구’를 탄탄한 짜임새로 선보였다. 가락의 절묘함을 꽹과리(권오성)와 장구(조보경)가 잘 받쳐줬다. 피날레를 장식한 무대는 최주연의 ‘교방굿거리춤(김수악제 김경란류)’이다. 굿거리 여덟 마루에 즉흥성이 깊게 배인 소고가락이 어우러져 풍미를 더했다.

정향숙, '논개별곡'


장르를 불문하고 하나의 축제(festival)를 기획, 제작, 무대화한다는 것은 녹록지 않다. (사)서울국제문화예술협회가 마련한 첫 기획공연은 기획의도가 분명했고, 프로그램 구성에 따른 출연진들의 기량과 작품성이 전체적으로 수월했다. 계절을 뛰어넘는 무향(舞香)이 되길 기대한다. 춤의 향기다.

이주영(무용평론가・고려대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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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댄스TV= 이주영(무용칼럼니스트)-이주영의 무용읽기_무향 춤 페스티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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