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영의 무용읽기_사초(史草)

초고(草稿)를 넘은 내일의 실록(實錄)
장유경 안무, ‘사초・史草 대구, 현재를 기록하다’

이주영 칼럼니스트 승인 2022.01.11 15:01 의견 0

[댄스TV=이주영 무용칼럼니스트] 역사는 기록이다. 오늘의 기록을 내일의 기억으로 담아낸 작품이 2021년 12월 16일, 대구문화예술회관 팔공홀에서 펼쳐졌다. 장유경무용단이 주최한 ‘사초・史草 대구, 현재를 기록하다’ 무대다. 2021년 대구문화재단 명작산실지원사업 선정작으로 초연된 이번 작품은 역사를 관통하는 남다른 시선이 눈에 띈다. 장유경무용단이 보유한 좋은 인적 자원과 무대 운용이 안무에 담겨져 2021년 현재라는 기억을 내일에 말했다. 흑백의 대조와 의상, 세트, 안무 등의 유기적인 결합이 작품 흐름을 명징하게 했다.

사초(史草)


무대 막이 오르다. 16명의 하얀 의상을 입은 군무가 가로 형태로 서 있다. 몸을 좌우로 천천히 움직인다. 1명이 조금 앞으로 나온다. 사초의 문을 여는 순간이다. 포그머신이 역사의 안개를 흩뿌리다. 군무의 몸이 천천히 무대 후방을 향한다. 백색 물결이 일렁인다. 군무 대열 속에서 솔로춤이 반복되는 구조를 보인다. 움직임이 속도를 낸다. 가로 대열을 유지한 채 음악의 진폭이 커진다. 민천홍이 디자인한 의상도 그 느낌을 배가시킨다. 비트 빨라진다. 춤의 박동도 그러하다. 웅장함을 넘어 비장함까지 이르다.

무대 중앙 세트에 무용수들이 모여 있다. 이때 천안시립무용단 김용철 예술감독이 무대 우측에서 서서히 등장한다. 느릿하면서도 큰 호흡을 보여주다. 흡입력 있는 움직임은 사초를 쓰는 사관(史官)의 역사 속 고뇌를 짐짓 느끼게 한다. 여자 무용수 1명이 무대 왼쪽에서 한지를 들고 나와 굴려 펼친다. 슬픔을 머금은 음악 속에서 한지가 접힌다. 소리가 깊다. 후대 유산으로 남겨질 ‘초고(草稿)’의 운명을 알리는 순간이다.

사초(史草)


무대 세트가 4개로 분할된다. 사이 사이로 무용수들이 움직임을 메꿔 나간다. 세트가 병풍같은 역할을 한다. 역사를 세우기 위한 여정이다. 무대 세트 변화에 따른 공간 창출과 움직임 연결이 두드러진다. 작게 퍼지는 타악 소리에 무대 후방에서 3명의 움직임이 이어진다. 총 6명이 검은천을 이고서 무대 앞으로 나왔다가 다시 후방으로 이동한다. 흰 역사와 검은 역사의 대립과 변주를 보여준다. ‘흑풍(黑風)’이 일렁인다. 공간이 열리고 채워지는 느낌이다.

사초(史草)


남자 2인무 후, 백색 세트 배경이 여유롭다. 중앙으로 하나둘씩 등장한다. 응시의 움직임이 좌우로 가볍게 흔드는 움직임에서 절묘하게 피어난다. ‘몸으로 쓴 사초(史草)’. 이는 쓰는 것이 아니라 견디는 것이요. 경배하는 것이요. 또한 보듬는 것이다. 한국무용의 컨템포러리성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4열 종대의 군무가 자유함 속에서 균질감을 채색한다. 기본무 같은 움직임이 미니멀리즘하게 소리따라 이어진다. 웅장한 세트가 무대 중앙에 다시 위치한다. 화이트에서 블랙으로 바뀐다. 오늘의 사초를 쓰다.

사초(史草)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네 삶은 매일매일이 사초다. 그 기록은 역사가 된다. 팬데믹 시대, 단절에 대한 기록을 지금 이 순간에 마주하다. 초고를 넘어 내일의 실록(實錄)을 오늘에 품은 시간이다. 질박할 수 있는 기록을 사초의 이면(裏面)까지 파헤쳐 거둔 따뜻한 성과다.

이주영(무용평론가・고려대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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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댄스TV= 이주영(무용칼럼니스트・고려대 문학박사)-이주영의 무용읽기_사초(史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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