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스TV=이주영 공연평론가] 작년 9월, 연극 <마지막 소원>의 잔향이 가시지도 않은 채 제천시문화회관에서 울림 큰 작품을 만났다. 2025년 6월 27~28일, 울림 아트n’ 컴퍼니가 제작한 <꽃신 그 길을 따라>서다. 박주리 작, 채민석 연출의 이 작품은 2025년 제천문화재단 지역문화예술단체육성지원사업 선정작이자 제14회 대한민국연극대상 베스트 작품상 수상작이다.
중증 치매 할머니와 헌신적으로 할머니를 돌보는 손녀의 이야기다. 죽음을 성찰(省察)하고, 삶을 사유(思惟)하는 인생극(人生劇)이다. <꽃신 그 길을 따라>는 따뜻하다. 온기 속에 스며든 먹먹해지는 눈물의 온도 또한 높다. 나와 너를 넘어선 우리들의 이야기, 삶이 유유히 흐르기 때문이다.
울림 아트n’ 컴퍼니의 '꽃신 그 길을 따라'
사랑하는 어머니를 잃고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돌보는 손녀 미영(이은비). 공연이 시작되면, 손녀가 할머니(김미숙)의 머리를 손질하고 있다. 그 뒤에는 검정 옷을 입은 자아들(황연주, 노순호, 권화숙)이 정면을 응시한다. 조명이 켜짐과 동시에 시선을 부여잡은 첫 장면은 마지막 꽃길 장면과 더불어 하이라이트다. 아우라(Aura) 크다.
치매 할머니의 행동에 손녀가 힘들어한다. 할머니 공간(방)과 손녀 공간(테이블)의 분할 처리는 근원적(近遠的) 공간과 근원적(根源的) 가치라는 중의성을 지닌다. 저승 명부전에서 온 고참 저승사자(이세진)와 신참 저승사자(김요셉)는 할머니 눈에만 보이고, 들리는 역할이다. 할머니의 유일한 친구다. 특히 고참 저승사자가 극 중간중간 부르는 노래가 편안하다. 공감대 형성에 일조했다.
스트레스가 큰 손녀 미영이 외출한다. 그녀를 찾기 위해 가누기 힘든 몸을 이끌고 집을 나선 할머니. 길만 잃어버린 것이 아니다. 삶과 죽음, 현실과 이상이란 경계의 파도에 휩싸인다. 상여소리가 애잔하다. 할머니가 길을 나선다. ‘동백아가씨’ 노래가 길벗이 된다.
이번 작품은 무대 위에 객석을 배치했다. 소극장 공간 조성은 몰입도를 높여 이머시브(Immerse) 연극성까지 제시했다. 혜안과 통찰의 산물이다. 무대와 원래 객석의 경계를 나누는 막이 오른다. 저승사자들과 할머니가 머나먼 길을 나선다. 넓게 펼쳐진 객석으로 한 걸음 걸음 발길을 옮긴다. 할머니를 바라보는 손녀의 눈시울이 뜨겁다. 이 작품에서 중요한 오브제인 ‘꽃신’에 탑조명이 내린다. 할머니의 분신이자 사랑의 결정체인 꽃신은 말이 없다. 할머니 간 길을 따라 여운이란 또 다른 길을 낼 뿐이다.
작가의 자전적 경험이 연극으로 승화된 이 작품은 쇼케이스(서울명동창고소극장), 2022년 공연(제천, 영주) 후, 올해 제천시민들과 함께했다. 150명 관객들의 마음을 파고든 이 작품은 가족, 생과 사, 갈등과 용서 등 다양한 지점을 두드리고 어루만졌다. 젊은 시절 할머니(권화숙)와 젊은 시절 할아버지(지성기)의 꽃신 장면은 짧지만 과거와 현재, 오늘과 내일을 여닫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하이라이트 장면은 할머니가 먼 길을 떠나는 마지막 씬이다. 그 길이 주는 함의가 크다.
제천으로 이주한 지 올해로 7년째인 극단 울림 아트n’ 컴퍼니(대표 채민석)는 그동안 제천에서 지역문화 발굴과 콘텐츠화, 문화원형에 대한 탐색과 무대화를 비롯해 배우연기 워크숍, 낭독공연, 청년공연예술가 육성 등을 지속적으로 이어오고 있다. 양질의 레퍼토리 개발과 보급, 향유가 중요하다. 시와 재단 등 관련 기관에서도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을 해 줄 필요가 있다. 최종 수혜자는 시민과 관객이다.
'꽃신 그 길을 따라'(박주리 작, 채민석 연출)
조명 아래 홀로 반짝이는 꽃신의 잔향이 먹먹하되 따뜻한 울림으로 다가 온 이번 공연은 삶의 언저리가 아닌 중심에서 모티브를 길어 올렸다. 철학적 사유는 연기와 소리, 움직임으로 예술적 지층을 아로새겼다. 다음 울림을 기다려 본다.
이주영(공연평론가・고려대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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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댄스TV= 이주영(칼럼니스트)-꽃신 그 길을 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