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영의 무용읽기_2022 작가12인전

‘춤작가’란 이름을 무대에 아로새기다
창작춤 플랫폼, ‘제36회 한국현대춤 작가12인전’

이주영 칼럼니스트 승인 2022.07.08 15:12 | 최종 수정 2022.07.09 09:09 의견 0

[댄스TV=이주영 무용칼럼니스트] ‘작가(作家)’. 문학 작품, 사진, 그림, 조각 따위의 예술품을 창작하는 사람을 지칭한다. 시인이자 무용 대본작가이기도 한 필자로서는 작가라는 용어에 대한 자긍심과 경외심이 있다. 공연예술 중 문학의 시(詩)격인 메타포(metapor) 강한 무용에서의 작가에 대한 상징성은 크다. 텍스트 기반 작가도 있지만 안무자로서의 고유한 영역에 창작성을 한층 더 부여한 작가들의 무대는 그야말로 ‘창작춤 플랫폼’ 그 자체다. 이 역할을 한국현대춤협회(회장 손관중)는 1987년부터 매해 해오고 있다. 코로나가 심했던 지난 2년 여의 시간속에서도 한길을 달려온 것은 협회의 의지와 열정, 춤과 춤작가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2022년도 ‘제36회 한국현대춤 작가12인전’(6.22~30,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은 예년과 달리 6월에 진행됐다. 이전 개최시기인 봄 기운을 소담스럽게 담고, 춤향기를 무르익혔다. 곡진(曲盡)하게 관객을 맞이한 이번 춤작가전 무대는 작가정신이 충분히 발현된 명실상부한 춤 무대였다.

김순정 안무, ‘...,머물며 2022’(사진 제공_강선준)


첫 번째 그룹(6.22~23)의 첫 작품은 이동하의 ‘Guernica again <ver.2>’가 열었다. 지난해 서울무용제 경연부문 대상을 수상한 툇마루무용단 대표인 이동하는 충돌, 분열, 판타지성을 집약해 작품을 그렸다. 한마디로 ‘공존을 향한 자아의 고독한 부딪힘’이라고 평하고 싶다. 공연이 시작되면 동물소리 같은 울음소리가 공간을 채운다. 다층적 감정의 이입이 몰입도를 높인다. 마지막 장면에서 벽에 그려진 사람 모양의 그림에 기댈 때는 자아에 대한 공존의 접근이 심리적, 사회적 기제를 발휘한다. ‘Guernica(게르니카)’는 스페인 북부 Basque 지방의 소도시다. 스페인 내란 때 Franco 장군이 이끈 반란군 측에 가담했던 독일 비행기의 무차별 폭격으로 파괴되기도 했다. 에스파냐 내란을 주제로 전쟁의 참혹성을 담았던 첫 번째 버전에서 더 진척된 이번 두 번째 버전 무대는 전쟁을 향해 경종을 울린다. 저녁 산보가 계속 이어지길 조용히 웅변하는 작가의 몸짓은 시대상을 담은 무대로 숭고미를 보여줬다. “나나 나나~~” 나지막한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정겨운 듯 슬프다. 99아트컴퍼니의 예술감독인 장혜림은 ‘에카’를 통해 이 시대의 애가(哀歌)를 들려줬다. 침잠된 시간을 끌어 올리는 힘이 대단하다. 음(音)이란 시간속에 공간을 집어 넣어 여백을 그려낸다. 철학성에 서정성을 부여한 이 작품은 구약성서 예레미아 애가의 첫 소절인 ‘에카’의 비통함과 놀라움을 남녀 듀엣으로 담았다. 강다니엘이 피아노 연주할 때 장혜림은 피아노 위에서 몸의 타건(打鍵)을 보여준다. 하이라이트 장면이다. 비탄의 세상 속 내 안에 울고 있는 어린아이와 같은 울음이자 몸짓이다.

이동하 안무, ‘Guernica again <ver.2>’

장혜림 안무, ‘에카’


분위기가 전환된다. 무대는 바다다. 키무브 댄스컴퍼니 대표이자 가림다 댄스컴퍼니 단원인 김은정은 권민찬과의 좋은 호흡을 통해 ‘바다주다’를 바다가 받아주게 만든다. 포그머신으로 무대는 자욱하다. 일순간 심해 풍경이 펼쳐진다. 김은정의 손이 위로 뻗어 있다. 푸른 조명이 처리된 가운데 깊은 바다 정경을 그리움을 토해내듯 파도에 실어 보낸다. 성난 파도의 분노도 마주하고, 냉기 품은 바다의 속마음도 들여다본다. 이 작품은 ‘쓸쓸함, 고독’이란 심상을 바다에 녹여, 바람에 실어 보낸 바다와 나눈 춤편지다. 계산된 안무 속 전개가 명징한 작품으로 심해에 들어간 듯 춤적 정경을 좋은 움직임으로 순발력있게 담아냈다. 이어진 무대는 조원석의 ‘경계’. 시간과 공간 속 경계의 존재성을 무경계로 치환시킨 작품이다. 남자 듀엣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경계에 대한, 경계를 넘는 해석에 창작성을 더해 보여줬다.

김은정 안무, ‘바다주다’

조원석 안무, ‘경계’


두 번째 그룹(6.25~26)의 첫 작품은 이홍재가 ‘Blue hole’로 연다. 작가는 블루홀을 너와 나의 발현이라 규정지었다. 빠져듬과 나옴의 경계에 대한 감사의 기도같은 작품이다. 회상과 갈등이 중첩된 장면을 시작으로 바깥에서 안으로 서서히 침잠되는 심상의 구현이 인상깊다. 다층적 감정이 스며든 홀(hole)를 통해 흐름에 대한 또 하나의 흐름을 제시한 의의가 있다. 작가전에서 ‘작가’라는 주제로 작가전을 펼친 무대가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인 김형민은 ‘작가(working title)’를 통해 한 작가의 모습을 다양한 층위를 통해 보여줬다. 작품 진행 시, 말도 직접하면서 움직임을 담아낸 이 작품은 ‘작가가 되기 위해, 작가로서, 작가이기에’ 라는 여러 명제들을 집중력있게 구현한다. ‘70, Artist Manifesto, 침묵, 점령, 퇴장’의 순서로 그려낸 이 작품은 ‘working title’이란 의미처럼 가제(假題)가 진제(眞題)로 되는 순간 순간에 대한 경외의 고백이자 울림이라 볼 수 있다.

이홍재 안무, ‘Blue hole’

김형민 안무, ‘작가(working title)’


다음은 베토벤을 만나보자. 단국대학교 교수인 최소빈은 ‘아델라이데’를 통해 베토벤의 영원한 사랑이자 음악적 영감의 뮤즈(muse)인 ‘불멸의 연인’을 남녀 듀엣으로 채색했다. 단 한명의 영원한 연인에 대한 마음을 발레로 담은 이 작품은 풀리지 않는, 그러면서도 풀고 싶은 삶과 예술의 영원한 화두를 담았다. 감정 이입과 발산이 발레 특유의 동작과 테크닉, 그 속에 담긴 감정선으로 구현했다. 변함과 변하지 않음, 존재론 그 이상의 가치를 모던하게 담아낸 ‘electronic garden’은 김영미 경희대 교수의 작품이다. 썬글라스, 마스크, 헤드셋을 쓰고 테이블 위에서 변하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한 진지한 가치를 표현한다. 그런 정원의 모습은 어느새 춤의 정원으로 변해 있다.

최소빈 안무, ‘아델라이데’

김영미 안무, ‘electronic garden’


세 번째 그룹(6.29~30)은 상대적으로 중량감있는 작가들이 참여한 날이다. 춤적 묵직함의 첫 문을 성신여대 교수이자 김순정발레단 예술감독이 연다. 작품명은 ‘...,머물며 2022’이다. 김순정이 여행용 가방을 들고 무대에 등장한다. 머뭄을 위한 출발이다. 무대에 의자들이 놓여있다. 머뭄은 쉼, 다시 일어나야 다음 순간을 맞기 위한 스텝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브제(objet)로 의자를 활용한 것은 안무자의 재치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마지작 장면에서는 의자를 모으고, 뒤돌아 앉는다. 탑조명 아래 김순정은 의자를 ‘툭’ 치고 나간다.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이항대립(二項對立)의 면모를 보여준다. 이는 거친 대립이 아니다. 머뭄에 대한 작가의 예술적 가치를 순간적이되 여운있게 처리한 것이다. ‘지금, 여기 무대 위에 머문다’는 현상은 물리적 위치를 훨씬 상회한다. 김순정표 미학성이 집약됐다. 제목처럼 ‘머물고 싶은 2022’다. 순간의 뜻을 지닌 ‘모멘토(momento)’. 그 순간을 무대로 다시 끌어올린 서울시무용단 정혜진의 ‘Momento – 접어둔 날개’는 고독과 어둠속에 갇힌 여인의 몸짓을 통해 사랑의 기적과 희망의 소중함에 대해 얘기한다. 2021년 관객평가단 최우수 작품상 수장작의 이유를 밝혔다.

정혜진 안무, ‘Momento – 접어둔 날개’


장은정은 ‘친애하는 그대에게’를 통해 당신을 향한 마음의 울림을 2인무로 담았다. 파트너는 박호빈이다. 신나게 한바탕 노는듯한 명랑함을 보여준 후, 남녀 듀엣을 통해 조용히 춤의 자국을 남긴다. ‘당신’이란 소중한 이름이다. 마지막 무대는 계명대 장유경 교수가 ‘입-입소리에 춤을 얹다’라는 작품을 통해 구음(입소리)에 얹힌 춤의 질감을 제대로 보여준다. 구음 속 느릿함이 유유하되 여운있다.

장은정 안무, ‘친애하는 그대에게’


아르코예술극장에 초대된 12명의 춤작가들은 각자가 지닌 작가정신을 춤으로 펼쳐냈다. 완전한 일상은 아니지만 코로나 상황이 완화된 대한민국 서울에서 펼쳐진 2022년도의 춤작가전은 ‘작가’라는 이름을 무대에 아로새기고, 춤 역사의 한 페이지를 정성스럽게 장식했다. 춤을 쓴 아름다운 6월이다.

장유경 안무, ‘입-입소리에 춤을 얹다’

이주영(무용평론가・고려대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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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댄스TV= 이주영(무용칼럼니스트)-이주영의 무용읽기_2022 작가12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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