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영의 무용읽기_흔들못

지역 설화 기반 우수 문화콘텐츠
제31회 전국무용제 인천지역 대상작, ‘흔들못’

이주영 칼럼니스트 승인 2022.06.23 13:54 의견 0

[댄스TV=이주영 무용칼럼니스트] (사)대한무용협회가 주최하는 제31회 전국무용제의 본선을 향한 전국에서의 예선 경쟁이 뜨겁다. 2022년도 개최지인 목포행 티켓을 향한 무용인의 잔치이기도 하다. 올해 단체경연은 9월 29일부터 10월 6일까지 목포시민문화체육센터에서 본선이 진행될 예정이다. 인천지역 또한 대한무용협회 인천광역시지회가 주관해 제31회 인천무용제가 ‘RESTART’라는 타이틀을 걸고 춤의 항해를 알렸다. 전체 프로그램은 개막초청공연, 솔로·듀엣 경연, 단체경연 등으로 구성됐다. 총 9개 작품이 6월 11~12일 양일간 인천 서구문화회관 대공연장에서 진행됐다. 가장 주목받은 프로그램은 전국무용제 지역예선을 감안할 때 단체경연 부문이다. 단체경연 참가팀 작품은 나누리무용단(안무 강선미)의 ‘세밑’, 나영무용단(안무 김명주)의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이데아댄스컴퍼니(예술감독 김주성, 안무 김기훈)의 ‘메모리즈’, 정미심무용단(예술감독 정미심, 안무 송성주)의 ‘흔들못’ 등으로 4작품이 열띤 경쟁을 펼쳤다.

이현지 솔로춤, '흔들못'


각 작품마다 공연 시작 전에 영상으로 안무자 또는 예술감독이 나와 인사와 함께 작품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한 후 공연을 이어나갔다. 이날 지역예선에서는 정미심무용단의 ‘흔들못’이 영예의 대상을 수상하며 인천 대표 자격을 부여 받았다. ‘흔들못’ 작품은 먼저 출연한 3팀의 작품과 비교해볼 때, 객석에서의 판단을 일찌감치 하게 했다. 결과는 생각과 동일했다.

이번 대상 수상작 ‘흔들못’은 지역 설화에 바탕한다. 콘텐츠 개발에 있어 지역성과 일반성을 고루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측면에서 이 작품은 양쪽을 다 충족했다. 인천시 청학동에는 ‘흔들못’이라는 큰 연못이 있다. 여기에 전해지는 전설에 의하면, 겨드랑이 밑에 날개 달린 아이가 최 씨네 집에서 태어난다. 마치 용마(龍馬)의 날개와 비슷했다. 기쁨도 잠시, 힘이 센 장사가 태어나면 나라에서는 장차 반란이 날까봐 잡아 죽인다는 것이다. 부모는 애지중지하는 그 아이를 눌러 죽여 버린다. 그러자 흔들못에서 솟아 오른 그 용마가 슬픈 소리로 울어대며 안절부절 못한다. 밖에서 어지러이 날다가 자취를 감둔다는 이야기다.

정미심 예술감독 솔로춤, '흔들못'


‘아기장수 설화’는 전국적인 분포를 보이는 한국의 대표 전설이다. 아기장수는 비범한 출생과 능력을 갖추었지만 태어난 아기가 권력자의 횡포나 부모의 실수로 인해 영웅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한다는 내용이다. 아기장수 설화에서 용마는 아기장수의 분신과 같은 존재다. 인천지역 관련 설화에는 서구 철마산의 아기장수 설화, 중구 영종도의 아기장수 설화, 강화 진강산의 아기장수 설화 등 다양하다. 아기장수 설화는 '아기장수의 출생-부모로부터의 죽임-용마의 등장-증거제시'라는 기본구조를 지닌다. 아기장수 ‘우투리’의 서사구조와 맥을 같이한다.

이날 공연은 작품 전체를 보여주는 것이 아닌 쇼케이스(showcase) 식으로 핵심적인 부분만 보여주며 진행됐다. ‘흔들못’은 이번 작품의 예술감독을 맡은 정미심의 솔로춤으로 시작된다. 무대를 감싸는 구음(口音)은 흔들못의 전체 분위기를 나타내듯 춤을 밀고 당긴다. 상징성 큰 독무 후, 군무가 무대 좌우에서 등장한다. 비애와 슬픔을 연신 담아낸다. 무엇보다 2인무를 통한 슬픔과 환희의 교차점 처리는 이 작품이 지닌 극적 서사성을 서정성으로 치환시키며, 감동과 공감을 주는 역할을 했다.

이 작품의 주역을 맡은 여자 무용수 이현지는 좋은 피지컬과 수려한 용모를 바탕으로 안무의도를 관통하는 움직임과 감정 처리로 눈길을 사로잡았다. 의상 또한 장면 효과를 배가시킨다. 이현지와 더불어 한상익 또한 타이틀 롤의 가치를 충분히 증명했다. 작품 전개에 힘을 부여했고, 극성(劇性)을 편안하면서도 안정감있게 이끌어냈다. 그 외 여타 출연진 또한 군무, 앙상블 등 여러 포지션에 맞는 움직임을 통해 안무 포맷을 견고하게 했다. 쇼케이스 경연 특성상 무대장치 등 세트 처리는 없었지만 잘 직조된 안무와 이를 적극 수용해 자신만의 춤 언어로 변용, 발전시킨 것은 대상 수상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이를 전체적으로 리드하고 이끈 예술감독과 안무자의 예술적, 인간적 리더십도 어렵지 않게 짐작이 간다.

'흔들못' 군무


단단한 안무와 작품의 주제 의식을 직유(直喩)와 환유(換喩), 때론 내러티브(narrative)하게 보여줌으로써 긴장과 이완 구조를 견지한 것 또한 작품의 예술성을 배가한 주요 요인이다. 설화에 기반한 지역 콘텐츠의 남은 과제도 있다. 필자가 늘 주창하는 ‘지역을 담되 지역을 뛰어넘는’ 고유성과 일반성의 효과적인 처리다. 무용 작품에서 이 부분은 쉽지는 않지만 역설적으로 무용이어서 풀어나갈 여지가 크다. 이 지점이 잘 해소된 그날을 목포 무대에서 만나고 싶다. 자취를 감춘 용마의 비상처럼 궁금하고 기대된다.

'흔들못'

이주영(무용평론가・고려대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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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댄스TV= 이주영(무용칼럼니스트)-이주영의 무용읽기_흔들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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