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스TV=이주영 무용평론가] 춤의 성찬(盛饌)이었다. 한유선미리암스발레단이 마련한 ‘2023 댄스페스티벌 in 전주’무대다. 2023년 12월 17일(일) 오후 6시, 예술극장 숨에서의 이번 무대는 한 해를 마무리하는 공연답게 한국무용, 현대무용, 발레를 아우르는 일곱 레퍼토리가 2023년을 장식했다. 전라북도문화관광재단 ‘2023 지역문화예술육성지원사업’ 선정작이기도 한 이번 공연은 지역춤 육성과 발전이라는 지원사업의 취지를 달성했다. 완성도 높은 작품의 예술성과 출연진들의 고른 역량이 이를 뒷받침한다.
첫 문은 최연주 안무의 ‘District 3’ 작품이다. 어떤 땅의 구역을 의미하는 ‘District’. Salle de Dancegram 대표인 최연주는 ‘불완전한 우리는 과연 무엇을 완성시키는 과정인가?’라는 철학적 화두를 현대춤이 지닌 움직임을 통해 제시했다. 이 작품은 몸의 신체성을 구체화 해 안무에 담은 특질을 보였다. 전북대학교에 재학 중인 양혜빈, 강유나, 홍두화 등 세 명 무용수의 움직임은 기민했고, 3인무의 조화로움은 춤 에너지와 연결된다. 특히 내적 심상(心想)이 경쾌한 리듬과 함께 바깥으로 분출될 땐 에너지가 극대화됐다.
국립무용단 단원을 역임한 박정원 춤・프로젝트 동무 대표는 ‘국수호류 입춤’을 독무로 보여줬다. 입춤이 지닌 즉흥성과 허튼 가락에 따른 춤성이 시간의 흐름을 타고 유유하게 흐른다. 국수호류 특유의 큰 동작성은 솔로춤의 기백을 알린다. 아기자기함보다 대범함을 장단과 가락 속에 녹여내는 공력이 상당하다. 춤적 아우라를 보여주다.
명상하는듯 3명(양은경, 이윤아, 박영은)의 여자 무용수 움직임이 무대에 퍼져나간다. 잔잔히 기원의 모습을 탐색한다. 춤적 구도(求道)다. 선험성과 연역성의 의미가 담긴 ‘a priori’의 가치가 기원을 오마주(hommge) 한다. 프로젝트 춤인 대표 김지정(전주예술중학교 교사) 안무의 ‘기원’ 무대다. 남녀 듀엣이 앙상블을 이룰 때 기원의 숭고함이 상승된다. ‘보다 앞섬’에 대한 명제를 자신만의 색깔로 채색한 ‘기원’은 춤적 신기원(新紀元)을 무대에 드리웠다.
동아무용콩쿠르 현대무용 부문 금상 수상자인 정승준은 개성있는 움직임과 창의성으로 주목도가 높다. ‘초침은 움직인다’라는 안무를 통해 자신의 춤개성을 다시 한 번 확인시킨다.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한 정의헌, 나정운 두 무용수들의 뒷받침 또한 춤에 힘을 실었다. 모리스 라벨이 작곡한 볼레로(Bolero) 음악은 이 작품을 이끄는 축이다. 음의 변화에 따른 움직임이 조화롭다. 볼레로 음악이 시작을 알린다. 셔츠에 넥타이를 맨 정승준의 솔로춤이 시선을 끈다. 3명은 긴장과 이안을 교차시키며, 춤의 희열을 이끌어 낸다. 3명이 무릎을 꿇은 채 종대 형태에서 거센 움직임을 이어 나갈 땐 숨을 멎게했다. 음악과 춤의 조화, 그에 따른 공간 창출이 시계의 건너편 풍경을 바라보고자 한 초침에 정확이 맞추어진 무대다.
기다림의 꽃말을 지닌 달맞이꽃. 널마루무용단과 이해원무용단 아움에서 활동하는 박세련, 최선주는 ‘달맞이꽃’을 2인무로 조화롭게 풀어냈다. 애절한 슬픔과 그리움 가득한 꽃, 누군가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달맞이꽃. 여인의 모습과 닮았다. 그 주인공인 된 두 명은 여성성 강한 춤으로 수줍은 듯 다정하게 무대를 연다. 사랑과 이별, 슬픔이란 감정선을 그리움과 기다림으로 채색한 이 작품은 두 명이 느릿한 움직임으로 춤의 바다를 항해할 때 절정을 이룬다. 전반부와 후반부의 감정 교차는 대조미를 유발시켜 미학성을 강화시켰다. “얼마나 기다리다 꽃이 됐나. 얼마나 그리우면 꽃이 됐나”. 달맞이꽃 가사가 춤 자체가 된 시간이다. 춤의 성정을 아로새긴 두 명의 달맞이꽃을 바라본 행복한 순간이다.
전북 부안의 명기 매창(梅窓)의 소리, “이화우 흩날리제...”가 이별의 마음을 담아내기 시작한다. 합죽선을 들고 흰 의상을 입은 호남살풀이춤 이수자이자 이해원무용단 아움 대표인 이해원의 춤이 소리에 실루엣을 만들어 낸다. ‘장인숙류 전주부채춤’다. 산조, 남도민요, 구음살풀이, 남도굿거리 등 남도음악에 바탕을 둔 춤이다. 전주의 시나위 가락이 더해져 춤은 더 풍성해졌다. 살풀이춤과 부채춤이 절묘하게 만나 춤미학은 상당하다. 이 춤에서 부채는 오브제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때론 주체가 되고, 때론 객체가 된다. 슬픔과 기쁨이 교차되고, 증폭된다. ‘전주부채춤’은 이날 이해원이 지닌 춤적 개성에 수용 돼 이별의 정한을 더했다. 사랑의 여운도 깊어졌다. 다시 만나고 싶은 춤, 전주지역을 넘어선 귀한 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다.
색소폰 연주가 귓전을 울린다. 색소포니스트 고민석의 연주에 겨울의 애잔함이 숨을 내쉰다. 긴 웨딩드레스를 입은 한유선미리암스발레단 한유선 단장이 사선으로 등장한다. 사랑의 언약을 이뤄가듯 국립발레단 출신 허요완과의 앙상블이 사랑스럽다. 젠틀한 스포팅을 받은 한유선의 우아함은 사랑의 깊이까지 말해준다. ‘A Tale of Winter’는 두 남녀의 애틋한 사랑이 그리움과 벅참을 노래한다. 때론 기다림의 순간까지도 투영한다. 마음속에 간직하고픈 겨울 이야기, 바로 ‘A Tale of Winter’다. 오지현(작사, 작곡, 보컬)의 커튼콜 음악에 맞춘 무대인사로 댄스페스티벌의 향연을 마무리하다.
한유선미리암스발레단의 ‘2023 댄스페스티벌 in 전주’는 다양한 춤의 질감을 입체감있게 객석에 선사했다. 일곱 빛깔로 채색된 2023년 춤의 정원이다. 예술극장 숨에서 무한히 펼쳐질 2024년이 기대되는 12월이다.
이주영(무용평론가・고려대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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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댄스TV= 이주영(무용칼럼니스트)-이주영의 무용읽기_2023 댄스페스티벌 in 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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