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스TV=이주영 무용평론가] ‘춤의 정원(庭園)’은 이제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궁중춤예술연구원(최경자 예술감독)의 지난한 노력의 결실이다. 2013년 처음 선보인 ‘춤의 정원’은 올해 서울돈화문국악당과의 공동기획을 통해 힘이 실렸다. 8월부터 10월까지 다섯 번의 무대는 각 작품이 지닌 고유성을 발현하고, 전체적으로는 ‘춤선’이라는 관점에서 담고, 보고, 놀고, 날아, 모이는 시간을 가졌다. 특히 9월 12일 개최된 최지원의 ‘추야지향(秋夜之香)’은 ‘춤선을 보다’라는 타이틀에서 알 수 있듯 다채로운 춤의 결을 응집하고 분사시켰다. 가을 밤의 춤향인 ‘秋夜之香’은 사계절을 불문하고 가장 풍요롭기 때문이다. 춤 여운 가득하되 밀도있는 이번 무대는 영호남, 경기를 아우른다. 최선류(호남), 최희선류(영남), 이동안류(경기) 등이 꿋꿋하게 받쳐주기 때문이다. 핵심은 전북무형문화재 제15호 호남살풀이춤 전승교육사인 최지원 호남살풀이춤보존회 대표의 춤에 근간한다. 경희대 무용학부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는 최지원 선생은 춤에 대해 엄격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자신과 춤, 춤맥에 대한 엄격함은 내적으로는 관리와 성찰을 추동한다. 외적으로는 전승의 당대적 가치를 구현하는 기제로 작용한다. 최지원의 이번 무대는 이런 의미를 담지해 춤의 정원을 웅숭깊게 만들었다.
‘최지원, 춤선을 보다_추야지향(秋夜之香)’은 최지원의 독무, ‘호남살풀이춤’, ‘달구벌입춤’, ‘진쇠춤’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여기에 여타의 춤과 소리가 가세해 무향(舞香)을 피웠다. 첫 문을 전북무형문화재 최선류 ‘호남살풀이춤’이 연다. 전북과 서울 등 많은 무용가들이 추고 이 춤의 매력은 최지원의 춤 성정(性情)과도 연결된다. 침잠된 호흡 속 우아함, 장단과 가락 속 맺힘과 풀림은 흡입력 강하다. 절제미 가득한 정(靜)의 시간은 춤을 서서히 숨쉬게 한다. 춤의 여정을 알린다. 해당 종목 전승교육사로의 춤 전승 의지도 감지된다. 수건을 가슴에 살포시 대며 마무리 될 땐 여운을 증폭시키되 또 다른 여운을 남긴다. 호남살풀이춤의 잔향(殘香)이자 양향(兩香)이다.
화사한 듯 한이 서린 듯 양가성 높은 춤의 마디가 생겨나기 시작한다. 구음에 매달린 수건의 흐드러짐이 여울진다. 구음이 멈추자 장단 속 춤의 행렬이 빨라진다. ‘호남살풀이춤’과 호흡이 잘 맞는 전북무형문화재 ‘동초수건춤(최선류)’이다. 호남살풀이춤 이수자 고상윤과 전수자 윤초아, 지다영이 춘 동초수건춤은 전라도 지역의 권번 또는 기방에서 추어지던 춤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굿거리장단으로 이루어진 독특함을 춤으로 승화시켰다.
호남에서 영남으로 이동한다. 영남춤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곳 중 하나가 대구다. 무용사적으로도 대동권번(大同券番), 달성권번(達城券番) 등은 대구지역을 대표하는 권번이다. 박지홍제 최희선류 ‘달구벌 입춤’은 달성권번의 명인 박지홍(1889~1959)에서 최희선(1929~2010)으로 이어지는 춤이다. 대구 출생인 최희선은 1988년에 달구벌 전통무용연구회를 조직하는 등 박지홍류 전통춤을 정리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달구벌입춤보존회 회장이자 이동안진쇠춤보존회 회장인 윤미라 경희대 무용학부 교수는 이 춤을 군무화 하기도 했다. 오늘 무대에서의 ‘달구벌 입춤’ 솔로춤 또한 윤미라의 재구성을 통해 대구의 멋스런 정서를 담았다. ‘수건춤’, ‘덧배기춤’으로 불리는 이 춤의 특질은 유감없이 발휘됐다. 공연이 시작되면, 현(絃)의 울림을 타고 춤의 음계를 한 계단씩 오른다. 입춤, 소고춤, 살풀이춤의 구도성은 구성의 완결성과 춤미학을 상승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춤과 노래가 춤 정원에 흥을 더한다. 정인삼, 신만종, 이부산 선생을 사사한 한국십이체장고춤보존회 이사인 신근철은 신만종류 ‘설장고춤’을 선보였다. 이 춤은 장고의 다양하고 화려한 장단과 춤사위, 궁채와 열채를 가지고 노는 채발림의 이용한 농악의 개인놀이다. 농악 판굿에서 장고수가 맡는 개인기 대목인 설장고의 의미에서도 알 수 있듯 개인의 기량이 중요하다. 최근 이 작품을 여러 무대에서 선보이고 있는 신근철은 흥과 신명이란 선물을 객석에 선사했다.
노름마치예술단 대표인 김주홍은 판소리를 시작으로 사물놀이, 노래 등을 하는 다양한 재능을 지닌 예술가다. 이번 무대에서는 고려가요 ‘쌍화점’에 등장하는 어릿광대의 시각으로 남녀의 자유로운 사랑을 삶 속에 투영했다. 김주홍 특유의 성음이 어우러진 국악가요 ‘새끼광대의 노래’다. 해학과 재치 가득한 판소리 수궁가 중 ‘좌우나졸’을 김주홍은 토끼와 나졸 사이의 긴장감을 김주홍 스타일로 풀어냈다. 악사와의 호흡이 좋다.
전통춤에 있어 화성재인청 이동안류는 빼놓을 수 없다. 화성재인청은 조선 후기 경기도 화성 지역에 설립된 전문 예인집단의 자치 조직이다. 경기도 내 다양한 지역에서 모인 재인 등에게 예술적 기능을 가르쳐 전문 예술가로 양성하는 역할을 하였다. 이동안(1906~1995)은 조선 왕조의 마지막 재인청 도대방(都大房)을 지냈으며, 악가무에 모두 능했다. 봉정민(경희대 무용학부 강사), 윤초아, 신애린이 춘 ‘신칼대신무’는 말그대로 신칼을 들고 추는 춤이다. 3인무로 이루어진 이번 무대에서는 신칼과 지전이 어우러져 극성(劇性)을 높이고, 백색미학의 가치까지 보여줬다.
피날레 무대는 이동안류 ‘진쇠춤’이다. ‘신칼대신무’와 더불어 이 춤 또한 윤미라 교수에 의해 재구성됐다. 근엄을 넘어선 위엄(威嚴)의 가치가 최지원의 솔로춤에서 느껴진다. 철릭을 입은 최지원은 음악의 공간, 춤의 공간 양쪽 모두를 조화롭게 한다. 경쾌한 몸놀림, 꽹과리 사위와 소리 등은 진쇠춤의 매력을 높였다. 최희선류 ‘달구벌 입춤’과 이동안류 ‘진쇠춤’은 무형문화재적 특성과 춤유산으로서의 가치가 큰 바, 이에 상응한 뒷받침이 제도적으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2023 춤의 정원’ 두 번째 순서를 장식한 ‘최지원의 추야지향(秋夜之香)’은 영남, 호남, 경기 지역 춤의 조명이란 의미를 구현했다. 가무악 작품 구성을 통해 전통예술의 특질 또한 발현했다. 무엇보다 연구와 교육, 전승과 창작 등 춤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최지원 무용가의 노력의 결실이 춤의 정원에 아로새겨져 반가운 시간이었다. 다음 춤의 나이테를 기다려 본다.
이주영(무용평론가・고려대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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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댄스TV= 이주영(무용칼럼니스트)-이주영의 무용읽기_최지원, 춤선을 보다_추야지향(秋夜之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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