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스TV=이주영 무용평론가] ‘Generation’은 ‘세대’를 뜻한다. 동 연령대가 지니는 공감대 형성이 충분조건이다. 또 하나는 ‘공감’과 ‘공통’이라는 요소가 이를 뒷받침한다. 여기에 빠질 수 없는 것이 있으니 바로 세대 공감을 이루는 ‘단계’가 형성될 때 구조화 될 수 있다. 한국현대춤협회(회장 손관중)가 개최한 제35회 NGF(New Generation Festival)은 무용 창작이라는 단계를 통해 공감이라는 화두를 던지고, 동시대성을 새롭게 획득한다는 측면에서 타이틀이 지닌 무게감을 이끌어냈다. ‘2023 현대춤 NGF’(2023.8.25~27, 서강대 메리홀)는 당초 8명의 안무자에서 연습 중 한 명의 부상으로 인해 7명의 안무자가 참여했다. 아쉬움은 있었지만 그 몫까지 다해 창작성 구현과 전체 완성도에는 문제가 없었다.
젊은 춤꾼들의 성장 플랫폼인 NGF의 첫 날, 첫 작품은 이지수(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전문사 재학) 안무의 ‘Cobwebby’다. ‘거미줄투성이의’라는 뜻을 지닌 제목처럼 안무자는 거미줄처럼 다양하게 얽힌 관계의 속성을 통해 우리를 대면케 한다. 여기에 그치지않고, ‘나’를 성찰하는 지각(知覺)의 숨소리를 들려준 것은 예술성 고양의 밑거름이 됐다. 솔로춤으로 시작해 4명, 2명 등의 대칭 변화를 보인다. 역동성, 자유 분방함 가득하다. 음악이 바뀌면서 분위기가 전환된다. 창작의 고지를 향한 열정이 자유성과 즉흥성을 직조해 전개된다. 김윤지, 손지원, 김리하, 이지수의 앙상블은 거미줄 속 나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6명(신애린, 추한율, 변지원, 류지수, 김미소, 박효빈, 강수인)이 리듬을 타며, 무대 후방 우측에서 등장한다. 빛의 분사속에서 두 원을 통해 안무자가 드리운 안무의 속성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작은 원에 2명이 배치돼 있다. 그 원을 보다 큰 원이 둘러싼다. 1명이 위치 해 짧지만 뜨거운 응시의 눈빛을 보낸다. 고단한 길의 끝자락에서 나만의 서커스를 보여주고자 한 강수인(경희대학교 박사 수료・부산예술고등학교 강사)의 ‘나만의 서커스’다. 각자의 꿈을 향해 나아가는 이들에게 보내는 애정 가득한 위로를 서커스라는 무대를 통해 펼쳤다. 튜브같은 세트가 내려오면서 흥겨움을 더할 땐 역경을 이겨내는, 이겨내고 싶은 모든 자들에게 서커스의 꿈을 잇댄다.
이새봄(한성대학교 현대무용전공 졸업)의 안무작 ‘Vacance:1/3’는 인생의 1/3을 보낸 자의 감회를 바캉스(Vacance)와 연결시켜 풀어냈다. 여행지에서 돌아오면 뭔가 모르는 공허함이 잔존하듯 살아온 삶을 돌아보면 이와 흡사한 점이 있다. 유사성은 확장성을 지닌다. 착상이 좋다. 마임 동작으로 남자 무용수가 동작을 반복하며 공연이 시작된다. 이어 3명이 합류한다. 정적인 움직임 이후, 경쾌한 움직임이 이어진다. 권태로운 일상을 벗어나 휴가를 떠난 느낌이 삶의 여정에 오버랩된다. 류견진, 양서진, 황은별, 이새봄이 떠난 바캉스는 춤의 바캉스이자 삶의 바캉스로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첫 날 마지막 무대는 허채민(성균관대학교 무용학 석사・예원학교 강사) 안무 ‘사이의 결(結)’이 장식했다. 이 날의 수작인 이 작품은 오브제 ‘기와’를 제재에 멈추지 않고, 주제의식까지 상승시켰다. 무용수들이 머리에 기와를 이고 등장한다. 무대 앞쪽에 기와를 쌓는다. 마지막 순간까지 불규칙을 정형화하는 구조화 작업은 얼기설기 얽힌 삶과 흡사하다. 인간관계의 파동을 기와의 곡선에 빗대 다시 한 번 삶으로 투영해내는 ‘프리즘(prism) 미학’을 보여줬다. 굴절, 분산은 빛의 세계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도 다양한 얼굴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하나의 지붕을 이루어 내기 위해 평기와와 둥근기와가 공존하듯 직선이 아닌 곡선을 통해 유연함의 비밀을 소리없이 전한다. 하지만 춤의 지층은 두터웠다. 김예원, 이민주, 김재은, 김서연, 김윤서, 허채민은 지붕이란 삶을 이고 있는 인간 기와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둘째 날, 첫 무대는 김병화(세종대학교 무용학 박사・무용단 Altimeets 단원)의 ‘amor fati’가 열었다. 올해 NGF에서 유일한 솔로작이다.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의 운명관(運命觀)을 나타내는 용어인 ‘amor fati(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라)’. 삶에서의 적극성, 긍정성을 부여하는 말이다. 운명(fate)을 자신만의 색깔로 담아낸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출신인 안무자는 무대에서 가감없이 ‘운명의 자기화’를 보여줬다. 공연이 시작되면 에디트 피아프의 샹송 ‘Non, je ne regrette rien(아니, 아무 것도 후회 안 해)’가 무대를 감싼다. 긴 치마를 몸에 두르자 무대 바닥에 원형 물결이 생긴다. 운명의 파동이 시작된다. ‘아모르’ 느낌 강하다. 무음악 속 움직임이 이어질 때 운명의 갈림길을 예고하듯 미니멀리즘한 춤빛이 아로새겨진다. 화려한 의상을 입고 김병화가 직접 마이크를 잡는다. ‘영동블루스’가 흘러 나온다. 운명의 굿거리같다. 찬란함 속 슬픔이 핵심이다. 침잠된 운명의 속삭임은 나(我)에 대한 찬가(讚歌)이자 우리를 향한 송가(頌歌)다. 삶에 대한 철학성을 의미있게 담아낸 이 작품은 운명에 대한 따뜻한 헌정이라 할 수 있다.
권지민, 이승현의 듀엣 무대가 이어진다. 미국 털사발레단 솔리스트, 보스턴발레단 단원을 역임한 이승현(서울예술고등학교 강사)은 ‘Something Happen’을 통해 삶의 이유와 행복을 탐색한다. 감정의 변화를 춤으로 수용하고, 안정적인 움직임과 구성으로 미지의 세계인 내일을 하나씩 담아낸다. 우연이 주는 즐거움, 인연이 주는 희열은 긍정을 소구하는 역할을 하기 마련이다. 이승현은 클래식 발레 무브먼트를 통해 상냥하게 ‘Something Happen’의 가치를 높였다.
차주연(한양대학교 대학원 졸업・가림다 댄스 컴퍼니 단원)은 웅변한다. “우리가 어떻게 이 자유를 해명할 수 있겠는가?”. 묵직한 화두다. 작품 ‘Hello, World!’를 통해 안무자는 무의식 속 막연함을 삶과 연결시켜 성찰의 계기로 삼고자 했다. 역설 속 정설을 위한 노력이 돋보인다. 공연이 시작되면, 무대 오른쪽에 자그마한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두 명(변민지, 차주연)이 춤춘다. 한 명이 다른 한 명에게 멍에를 씌운다. 종착역이 보이지 않는 삶의 철길은 찰나(刹那)라는 현재의 시간조각이 이어질 때 달릴 수 있다. 과거-현재-미래라는 알고리즘을 통사적 연대성으로 간파한 안무자의 통찰력이 좋다. 무엇보다 자유라는 가치를 철학성있게 담아내 무대에 구현한 점은 세상을 향한 외침으로 자리 잡았다.
‘2023 현대춤 NGF’는 35년 역사 속에 자리매김한 정통성 위에 각 안무자들이 지닌 창작성이 무대라는 대지에 춤꽃을 피웠다. 개성미 속 공통분모는 삶에 대한 관조와 응시다. 인생이란 바다를 유영하는 춤의 바다는 숭고했다. 현대춤이다.
이주영(무용평론가・고려대 문학박사)
사진 : 손관중 교수(black.hand.ph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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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댄스TV= 이주영(무용칼럼니스트)-이주영의 무용읽기_2023 현대춤 NG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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