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스TV=이주영 무용평론가] 전쟁을 뛰어 넘다. 전쟁과 평화, 사랑이라는 거대 담론은 범접하기 어려운 예술창작의 숙제다. 박지혜 안무의 ‘그날이 오기를 간절히 기다렸어요’는 전쟁의 숨은 속살을 생생한 눈물과 감정을 통해 말한다. 사람의 이해와 탐구에 천착한다. 묵직한 주제의식을 작가적 관점에서 해석하고 풀어냈다. 서울문화재단 2023년 예술창작활동지원사업 선정작인 이 작품은 2015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우크라이나 출생의 스베틀라나 알렉예비치(Svetlana Alexievich)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를 원전으로 하고 있다. 이 책은 1985년에 출간됐다. 200만 부 이상 판매된 베스트셀러다. 여자들의 전쟁에 대한 이야기다. 전쟁의 민낯, 죽음에 대한 혐오와 두려움, 전쟁 그 이후의 삶까지 다룬다. 작가는 전쟁에 참전했거나 전쟁을 목격한 200여 명의 여인들을 만났다. 이들의 처절하고 가슴 아픈 사연, 고통에 눈과 귀를 기울여 쓴 명작이다. 안무자는 여기에 한 발짝 더 나아가 전쟁의 비극 속 내면의 응어리에 주목했다. 침묵의 목소리를 현실의 모습, 사회라는 굴레에 대입시킨다. 나라는, 우리라는 이름앞에 숭고한 감정을 덧댔다. 희망이라는 내면의 소리를 들려주고자 했다. 응어리 맺힌 자를 위한 ‘찬란한 희망가’다. 잿빛 어둠을 밀어내고자 하는 춤의 포효(咆哮)가 놀랍다.

박지혜 안무, ‘그날이 오기를 간절히 기다렸어요’

이 공연은 3막으로 구성됐다. ‘감정들의 사원’이 1막을 연다. ‘웅장한 합창’이 2장에서 이어받는다. 마지막 3장은 공연 제목과 같은 ‘그날이 오기를 간절히 기다렸어요’와 같이 명명됐다. 공연이 시작되면, 흰 바닥에 천이 깔려 있다. 사람의 숨소리가 천 사이로 고개를 내민다. 전쟁의 내밀함이 첫 장면에서 침잠돼 강물되어 흐른다. 오브제의 활용성 높다. 안무자인 박지혜의 솔로춤은 전체 작품 속에서 화자가 되기도 하고 때론 청자가 되기도 한다. 주체와 객체의 이중 구조를 통해 낯설게 하기와 낯익게 하기의 중첩성을 발휘한다. 작품 흐름의 변곡점이 되기도 한다. 여자 무용수들이 힐을 벗고 자유롭게 추는 춤, 가야금(문세미 연주)과 바이올린(김유리 연주)의 묘한 합은 감정의 곡선을 유영케 한다. 선율의 곡선이 춤의 곡선과 만난다. 하지만 빚어낸 것은 곡선이 아니라 직선이다. 역사성에 기반한 심리적 충돌이 주제 의식을 명징하게 한다. 환희와 기다림의 순간이다. 그날이 오늘에 이른다. 희망의 소리가 위로라는 선물을 소리없이 건넨다.

Dance&Culture WISDOM, ‘그날이 오기를 간절히 기다렸어요’

‘그날이 오기를 간절히 기다렸어요’

Dance&Culture WISDOM 예술감독이자 현 경기도무용단 수석단원 박지혜는 전통과 창작을 넘나든다. 전통에 기반한 해석과 재해석이 강점이다. 이번 작품에서도 그러한 맥락에서 풀어냈다. 주제 선정, 모티브를 통한 착상, 안무, 움직임 구현이라는 춤 창작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담아내 완성도를 높이려는 모습을 견지했다. 군무로 시작해 솔로춤, 군무로 전개되는 안무 포메이션(formation)은 안정감 유지에 기여했다. 정다은의 움직임 리서치, 출연자인 정다은, 이현지, 김윤서, 유기량, 조다희의 고른 기량과 감정 표현의 완급 조절, 창작성은 안무에 힘을 보탰다.

‘그날이 오기를 간절히 기다렸어요’

여자들의 가장 아름다운 시간이 전쟁을 통해 바쳐진 역사의 아픔, 전쟁의 비극은 특별한 침묵이라는 터널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된다. 멍에를 벗지 않으면 안 된다. 가슴 속 응어리는 세상 밖으로 나와야 한다. 무엇보다 나의 가슴에서 탈출해야 한다. 작품 ‘그날이 오기를 간절히 기다렸어요’는 그 간절함의 문을 담대하게 열었다. 따뜻함이란 문이다. 희망의 문이다.

‘그날이 오기를 간절히 기다렸어요’

이주영(무용평론가･고려대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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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댄스TV= 이주영(무용칼럼니스트)-이주영의 무용읽기_그날이 오기를 간절히 기다렸어요

댄스TV 이주영 칼럼니스트 jy034@hotmail.com 이주영 칼럼니스트의 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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