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영의 무용읽기_비너스의 외출
동기의 미학이 발현된 ‘오늘날의 비너스’
홍선미 안무, ‘비너스의 외출’
이주영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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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21 11:49 | 최종 수정 2023.08.28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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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스TV=이주영 무용평론가] 비너스(Venus)가 외출했다. 작품 속 ‘비너스’는 누구며, ‘외출’의 의미는 무엇일까?라는 궁금증이 유발된다. 공연의 기획, 제작, 안무, 연출을 맡은 홍선미(홍선미댄스시어터Nu 대표・삼육대 교수)는 ‘오늘날의 비너스’에 대해 탐미했다. ‘일렁이는 가슴 속 욕망 분출과 그로인한 행복을 찾는다는 동기로 춤을 출 수 있는 비너스가 현재의 아름다움 기준이 아닐까’라는 화두를 던진다. ‘동기의 미학’이 담긴 묵직한 메시지다. 춤 미학의 시작이자 창작의 열매를 맺게 하는 뿌리다. 단단한 뿌리에 기대 다산과 아름다움의 상징, 비너스를 동시대에 수용한 ‘비너스의 외출’(2023.8.11, 계룡문화예술의전당 대극장)은 명징한 플롯(plot)에 기반해 춤타래를 시원하게 풀어냈다. 시원하되 사유깊다.
무대 영상이 흘러가는 가운데 백색 드레스를 입은 홍선미가 부케를 들고 무대 뒤에서 등장한다. 서정적인 음악이 무대 왼쪽에서 퍼진다. 마치 웨딩이 시작되는 듯 경건하다. 무대에 올라 허리숙여 인사한다. 하객에게 인사하듯, 이 시대에 고하듯. 객석에 앉아있던 무용수 5명이 무대 위로 향한다. 영상 속 빨랫줄에 걸린 빨래가 바람에 날린다. 각종 옷들이 무대 공간을 채운다.
고무장갑의 반란이 시작된다. 손에 든 것은 이제 부케가 아니라 고무장갑이다. 강애란 배우가 사랑의 쓸쓸함에 대해 말한다. 부케와 빨간 고무장갑의 교차성은 물리적 교환 차원이 아니라 사회적, 문화적, 심리적 교환까지 담지한다. 쓸쓸함의 잔향 뒤 본격적인 비너스의 외출이 시작된다. 류명옥의 내공있는 춤이 심연함을 드러낸다. 윤정아, 정미영의 춤, 일부 관객들에게 장미 한 송이씩을 나눠 준 후의 고일도 춤까지 이어진다. 비너스이고 싶은, 아니 비너스가 된 각자는 자신만의 캐릭터로 솔로춤을 보여줬다. 강애란이 말한다. “너만 힘든 것 같지? 나도 힘들어.” ‘가출인줄 알았는데 외출이네’라는 말 속엔 외출의 심지(心志)와 심지(深智)가 모두 들어있다. 우천식의 피아노 연주에 맞춘 외출의 미학을 담은 홍선미의 솔로춤이 마지막으로 보여진다. 안나 파블로바의 ‘빈사의 백조(Dying Swan)’를 연상시킨다.
다섯 명의 무용수가 발레 포즈로 등장한다. 슬픔에 젖은 우아함이 무대 공간에 빨랫줄 세트와 엉킨다. 고무장갑, 앞치마를 다시 착용한다. 무대에 뿌려진 지난날의 아름다움이 피아노 선율을 탄다. 유쾌한 분위기의 춤으로 전환된다. 다시 일상이다. 6명의 비너스가 하나의 비너스로 되는 순간을 끝으로 외출 시간이 마무리된다.
이상과 현실, 삶과 속의 양가성을 풀어낸 이 작품은 시간적으로는 잠깐의 외출이지만 그 시간이 유토피아임을 말한다. 현재의 비너스에 답한 시간이다. 그리스 신화의 아프로디테와 동일시 되는 로마 신화의 여신, 비너스(Venus)가 주는 미(美)는 ‘비너스의 외출(Brilliant going out of Venus)’를 통해 확장됐다. 예술감독, 안무감독, 안무자, 연출가, 무용수, 교육자로서 깊고 넓은 활동을 펼치고 있는 홍선미 교수의 예술적 통찰을 무대를 통해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당초 계획된 9월 공연보다 한 달이나 앞당겨 공연이 이루어졌음에도 예술성을 획득한 것은 중년 비너스들의 힘 때문이다. 다음 외출을 기다려 본다.
이주영(무용평론가・고려대 문학박사)
출처/댄스TV= 이주영(무용칼럼니스트)-이주영의 무용읽기_비너스의 외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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