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영의 무용읽기_위로 ‘WE-路’

인정(認定)과 위로(慰勞)로 죽음에 답한 춤적 사유
김미란 안무, 위로 ‘WE-路’

이주영 칼럼니스트 승인 2023.04.05 16:45 의견 0

[댄스TV=이주영 무용평론가] 삶과 죽음은 인생이란 대지를 달리는 가장 큰 두 바퀴다. 경계와 접점이 교차되고, 유한과 무한이 반복된다. 현실과 이상의 간극도 크다. 부산시립무용단 부수석단원 김미란은 ‘죽음’에 대해 대범하면서도 따뜻한 시선의 춤으로 인사말을 건넨다. ‘위로(慰勞)’다. 하지만 작품 제목에서도 명시되듯 ‘WE-路’라는 말로 치환됐다. ‘우리의 길’, ‘우리를 향한 길’, ‘우리를 위한 길’, ‘함께가는 길’ 등 다양한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 (사)창무예술원 ‘내일을 여는 춤’ 무대(2023.3.10~11, 포스트극장)에서의 이번 ‘위로’의 함의는 무엇일지 공연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답은 ‘위로’ 그 자체다. 독창적 춤 시선과 안무, 연출로 ‘죽음’이란 묵직한 단어를 춤 공간에서 분사시킨 사유적 무대였다.

김미란 안무, 위로 ‘WE-路’

안무자 김미란과 부산시립무용단 수석단원 최의옥과의 듀엣으로 풀어낸 이번 공연은 생을 살아가는 사람들 누구에게나 필연적 운명인 죽음에 대해 동행(同行)해보길 권한다. ‘존재에서 부존재로’, ‘기쁨에서 슬픔으로’, ‘첫 걸음에서 마지막 걸음으로’ 이동하는 것, 바로 생(生)에서 사(死)로 건너가는 큰 강에서 마주하는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개인적, 사회적, 심리적, 문화적, 정치적... 등 ‘죽음’ 앞에 배치될 단어는 적지않다. 이 작품이 유의미한 점은 죽음이란 단상앞에서 ‘자신에 대한 성찰’, ‘자유함’이란 화두를 묵직하되 느긋하게 던져주었다는 점이다.

김미란과 최의옥의 듀엣

헬레니즘 시대의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Epicuros)는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고통은 사실 삶 위에 있음’을 역설했다. 삶 속에서 다양하게 침범하는 고통에 대해 지혜로운 대처를 말한다. 이 작품은 ‘인정’과 ‘위로’로 압축시킨다. 죽음뿐 아니라 인생에서 마주하는 운명이란 쳇바퀴를 멈출 수 있는 답안지를 당당하게 제시했다.

‘검은 눈물’, ‘새 옷’, ‘미궁’, ‘위로’, ‘걸음’으로 전개되는 장은 작품을 연결한다. 공연이 시작되면, 무대 위 댄스플로워의 테두리가 백색으로 채워져 있다. 띠도 둘러져 있다. 사람 형상의 인형들이 군데군데 서 있다. 소우주다. 객석 바로 앞에 위치한 연주자는 연주와 더불어 퍼포머(performer) 역할도 수행한다. 낚싯대를 던져 인형을 하나씩 건져 올린다. 죽음을 연상시키는 염하는 모습도 보여진다. 희화적 표현은 죽음이란 무게감을 경감시킨다. 죽은 자의 춤을 강을 건너는 듯한 상징성을 담아 표출한다. 이 작품에서 많이 사용된 반구(半球) 형상의 그릇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주요 오브제다. 여자 무용수가 그릇을 두드리며, 소리지르며 나와 눕는다. 남자 무용수가 죽었는지 살피듯 상대의 손을 들어본다.

위로 ‘WE-路’

어둡고 기괴한 음악 속에 구음의 소용돌이가 순간 몰아친다. 남자가 여자에게 옷을 입혀준다. “아재 아재 바라아재” 소리가 반복된다. ‘가세 가세 저 깨달음의 세계 아미타부처가 계신 곳으로 가세’란 뜻을 지닌 ‘아재 아재 바라아재’가 세상을 향해 들려주는 외침은 ‘지혜’다. 남자 무용수에게 건네받은 사람 모양의 작은 낚싯대를 여자 무용수가 움직인다. 죽음을 조정하고, 조절하는 위로의 순간이다.

위로 ‘WE-路’

부산대학교 미학박사인 김미란은 ‘얼룩무늬 저 여자’, ‘청색 시대’, ‘그에게 가는 길’, ‘메멘토 모리’, ‘진흙’, ‘ It’s a real’ 등 다수의 작품을 안무한 Dance Theater ‘엇’ 예술감독이다. 프로무용단 단원이자 자신만의 색깔로 채색하는 김미란의 춤 행보는 이번 작품을 통해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있음을 목도한 점은 행운이었다. 위로하고, 위로받은 날이다.

안무자 김미란


이주영(무용평론가・고려대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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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댄스TV= 이주영(무용칼럼니스트)-이주영의 무용읽기_위로 ‘WE-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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