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영의 무용읽기_태곳적 침묵
침묵의 강에서 길어올린 自我의 숨소리
구경현 안무, ‘태곳적 침묵’
이주영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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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02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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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스TV=이주영 무용평론가] 전통춤을 잘 추는 무용가 구경현은 이번 무대에서 창작춤 역량까지도 선명하게 보여줬다. ‘전통과 창작의 만남Ⅱ’ 기획공연에서 이루어진 ‘태곳적 침묵’(2022.10.25~26, 포스트극장, 평자 26일 관람)은 ‘경건한 침묵’을 무대에 드리웠다. 태고(太古)와 침묵(沈默)이 만나 시원성과 본향의 가치는 고조된다. 경희대학교 무용학부,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전문사를 졸업한 한누리무용단 부대표 구경현은 ‘침묵’이라는 내면의 목소리를 침잠시켜 진실을 마주할 때를 갈구한다. 하지만 요란하지 않다. 묵직하다. 고요한 외침이 주는 웅변의 목소리는 여느때보다 강하다. 이번 작품과 주제 의식은 차이가 있지만 바람보다 더 빨리 눕고, 울고, 먼저 일어나는 김수영 시인의 ‘풀’을 연상케 하는 힘을 지녔다.
이 작품은 침묵을 통해 나를 돌아본다. 태곳적 침묵이라면 그 강도가 얼마일지 가늠이 된다. 지쳐있는 현재의 나, 행복하게 춤 춘 과거, 갈등과 깨달음 등이 새순 나기를 기다리듯 내민 손에 걸린 것은 ‘소리없는 침묵’이다. 침묵의 외침은 과거와 현재,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무대를 팽팽하게 만든다. 현재의 자아 2명과 과거의 자아 2명을 대칭성 있게 포맷하고, 무용수 3명(정지윤, 안수지, 차연화)과 1명(구경현)의 대척점(對蹠點) 형성 및 전개는 이 작품의 흐름을 이어가는 축이다. 심리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의 초기 자아 개념에 따르면, ‘자아(ego)’는 방어 기제 발현이 중요하다. ‘자기(self)’ 개념으로 통용되는 이 개념은 이번 작품에서도 내면 속 자아의 심리 기제를 현재와 과거의 존재와 대립, 자아의 심적 요동과 깨달음을 침묵의 정돈으로 유려하게 연결한다. 지성적 안무로 담아낸 수작(秀作)이다.
태곳적 침묵을 알리는 바람소리가 공간을 가른다. 시원성 강하다. 안무자이자 무용수인 구경현은 과거의 자아 2명이 엎드려 있는 과거 공간을 살핀 후, 그곳으로 들어간다. 태고의 숨소리가 들린다. 손바닥으로 땅을 친다. 과거 공간으로의 유입이다. 현재자아와 과거자아가 분리된다. 과거는 시간적 표현, 현재는 심리적 표현을 상징한다. 움직임의 질감이 두터워진다. 대립 시, 대칭과 비대칭의 논리가 중요한데 안무자는 ‘시간’과 ‘심리’라는 두 요소를 적극 개입시켜 풀어낸다. 흐름을 안정되게 하고, 춤적 감정은 고조된다.
장단을 타고 흐르는 4명의 춤이 일사불란하다. 2:2 대칭이 주는 동질감은 반복적 움직임을 통해 증폭된다. 4명의 무용수가 무대 중앙에서 포개져 탑을 쌓는다. 모든 자아들이 하나의 자아임을 알리는 숭고한 의식이다. 과거와 현재의 관계성 발현을 위한 ‘컨텍적 움직임’ 활용도 주효했다. 과거에 대한 현재의 강한 갈망은 어긋남을 만드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안무자는 서로의 자켓을 엮는 장면을 구현했다. 과거로 인한 현재의 복잡하게 얽힌 심리 반영이다. 현재의 욕망은 과거를 닳게한다. 현재의 나를 괴롭혔음은 무용수 3명이 무대에서 쓰러짐을 통해 통렬히 보여준다.
욕망은 한꺼번에 사라지지 않는다. 하나씩 정돈시키고, 빠져나가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비움의 시간을 솔로춤이 담는다. 대금소리 흐른다. 정돈과 깨달음이 침묵으로 수렴된다. 태곳적 침묵이다. 침묵의 강이 조용히 빗살을 그리기 시작한다.
침묵, 응시, 탐색, 관조 등이 징검다리가 된 이 작품은 춤적 사유를 통해 침묵의 경건함에 대해 말한다. 지금의 나를 받아들인다. 두려워도 관계없다. 결국은 다시 태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침묵의 미덕은 말없음이 아니라 마음의 고요 그 자체다. 침묵의 언덕에서 바라 본 세상이 고요하다.
이주영(무용평론가・고려대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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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댄스TV= 이주영(무용칼럼니스트)-이주영의 무용읽기_태곳적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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