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영의 무용읽기_서연수, Black Vol.2

블랙을 통한 화이트의 역설(力說)과 역설(逆說)
서연수 안무

이주영 칼럼니스트 승인 2021.10.10 17:27 의견 0

[댄스TV=이주영 무용칼럼니스트] 공연장이 주는 분위기는 출연자, 관객 모두에게 문제와 답을 동시에 준다. 상암동 문화비축기지(Oil Tank Culture Park).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위치하고 있다. 이 곳은 폐산업시설인 마포석유비축기지를 문화가 살아 숨쉬는 친환경 복합문화공간으로 2014년에 조성됐다. 이채로운 장소성이 특별함으로 다가오는 곳을 배경으로 2018년부터 국제댄스페스티벌이 진행돼 오고 있다. 올해로 4회째인 서울국제댄스페스티벌 인 탱크(4th Seoul International Dance Festival in Tank, Seoul, Korea). 코로나19 상황속에서도 축제의 방향성을 놓치지 않고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관객들과 소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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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공연 중 ‘마라톤 스페셜 공연’에서 시선을 끈 작품, 서연수 안무의 ‘Black Vol.2’(2021.7.11., 문화비축기지 T1 파빌리온)는 전작 ‘Black’의 의미는 간직하되 형상화, 구체화 순도는 높였다. 역사 속 짙은 기억을 옹골차게 담아낸 ‘Black’에 견주어 보면, 여유롭되 촘촘한 안무로 2인무가 줄 수 있는 미덕을 발휘했다. 대소(大小) 부채, 북 등의 오브제 활용은 평소 작품에 오브제를 적극 활용한 안무자의 감각을 그대로 느끼게 했다. 울림과 움직임의 직조는 문화비축기지 장소성을 적극 활용한 영민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15분 소요의 이번 작품은 1시간을 본 듯한 팽팽한 미학을 선사함으로써 연작이자 독립작으로서의 가치를 머리와 가슴속에 남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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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이 시작되면, 강요찬은 부채를 들고 나와 하나씩 무대에 놓기 시작한다. 무브먼트가 강한 그의 움직임은 시선을 따라가게 만든다. 5개의 부채는 선 채로 공간을 채운다. 그는 무대 사이드에서 북을 두드린다. 두드림에 잔향이 서서히 퍼진다. 진초록 의상을 입은 서연수가 부채 하나를 끌고 무대에 등장한다. 북소리와 부채의 대화가 시작된다. 울림의 시각화다. 서연수는 부채를 바닥에 펴기 시작한다. 펼쳐진 4개의 부채는 숨죽인채 무대에 놓여있다. 부채 하나는 자신의 머리에 조심스레 얹혀있다. 서서히 주변을 응시하다. 강요찬은 뒤에 서서 앞을 응시하고 있는 서연수와 찬찬히 교감을 이루어 낸다. 사막의 모래바람이 일 듯, 봄바람이 자그마한 숨을 쉬는 듯하다. 공간이 메꾸어진다. 큰 부채는 큰 배요, 큰 산이 된다. 세월이요, 역사가 된다. 부채가 노가 돼 움직임을 밀고 당긴다. 부채를 접었다 편다. 부채에 가려진 서연수는 그 사이에 작은 부채를 들고서 순식간에 나온다. 대소 부채의 공존이 보여주는 것은 이어질 수 밖에 없는 역사와 삶에 대한 애틋한 고백이라 할 수 있다. 그 속엔 고독의 외침이 내포돼 있고, 젖은 슬픔이 바람처럼 일렁이기도 한다. 안무자는 이를 오브제를 통해 잘 구현했다. 공간에 여백을 전하는 움직임이 잔잔한 음악 속 항해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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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부채를 가슴 앞에 든채 큰 부채로 앞을 가린다. 한 팔로 작은 부채를 든다. 창공에 나부낀다. 앞에 펼쳐져 있던 부채들로 서연수의 몸을 가지런히 가린다. 강요찬은 큰 부채로 머리부터 서서히 씌운다. 서연수의 머리에 얹혀지다. 머리에 얹힌 큰 부채, 손에 든 작은 부채, 놓여진 부채들이 묘한 합을 이룬다. 강요찬이 다시 북을 친다. 치다가 북 모서리를 북채로 돌린다. 처음 장면과 오버랩되는 수미쌍관(首尾雙關)을 이룬다. 큰 부채를 벗기며 마무리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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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요찬이 입은 흰 옷, 하얀 부채는 초록색 의상을 입은 서연수의 색감과 어우러져 백(白)의 의미를 더한다. 숭고다. 블랙(Black)을 통해 흰옷의 의미를 담은 아이디어가 참신하다. 공연 제목도 ‘블랙’이다. 역설적으로 블랙은 강한 화이트(white)다. 색감의 공감각적 처리는 안무 밀도를 높이고, 주제 의식을 선명하게 했다. 성공한 연작이다. 역사와 삶, 그리고 여성까지 담아낸 안무철학를 보여줬다. 석유기지가 문화기지로 바뀌듯 블랙을 통해 화이트를 역설(力說)하고, 역설(逆說)함은 이 작품의 포인트다.

출처/ 댄스TV= 이주영(무용칼럼니스트・고려대 문학박사)-이주영의 무용읽기_서연수, Black Vol.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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