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스TV=이주영 무용평론가] 아정했다. 아정함은 전통춤의 성정(性情) 중 백미로 볼 수 있다. 그러한 명실상부함을 보여준 무대가 2025년 9월 17일(수), 한국문화의집 KOUS에서 있었다. 국가유산청 국가유산진흥원의 ‘2025년 이수자 지원사업’ 선정작 무대에서 아정 손혜영은 국가무형유산 태평무 이수자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화려함이 아닌 묵직함, 넘침이 아닌 조화로움으로 빛을 발했다.
손혜영아정무용단이 주관한 <손혜영의 춤 ‘태평누리’>는 태평을 꿈꿨다. 태평을 노래하고, 춤췄다. 그 주인공은 손혜영이다. 중요한 것은 ‘세상’을 예스럽게 이르는 말, ‘누리’에서 알 수 있듯 너와 나가 아닌 우리, ‘모두를 향한 춤’이라 울림이 컸다.
태평무 이수자이자 국가무형유산태평무전승회 운영위원인 손혜영은 전승회 지회 중 영남지회를 맡고 있다. 대구를 중심으로 전국을 넘나드는 춤꾼이다. 한영숙춤보존회 상임이사로 한영숙 춤맥을 견고히 발전시키는데도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국가무형유산 태평무 보유자 벽파 박재희 선생은 축사에서 말한다. “춤은 추는 것이 아니라 추어지는 것이다. 마음을 다해 정성껏 추어라!”. 강산이 몇 번 바뀌는 세월 동안 켜켜이 쌓인 사제의 정과 온기가 전달된다. 손혜영은 스승에게서 춤의 기교를 넘어 춤의 정신과 태도, 철학을 오롯이 배웠다. 그 정신과 철학을 춤에서 구현하고, 제자들에게 전하는 무용가다. ‘잘 추는 춤’보다 ‘좋은 춤’ 추기를 희구(希求)하는 그의 춤 정신은 이번 무대를 통해 ‘태평누리’라는 아름다운 춤의 화원을 만들어 냈다.
손혜영의 춤 ‘태평누리’는 한영숙-박재희로 이어지는 춤의 에센스를 주된 레퍼토리로 구성한 무대다. 손혜영은 ‘승무’, ‘살풀이춤’을 독무로, ‘태평무’를 군무로 보여줬다. 태평무 이수자로 자신의 대표 레퍼토리라 할 수 있는 ‘태평무’를 솔로춤이 아닌 군무로 설정했다는 것은 평화와 조화의 정신이 담긴 태평무와 결이 맞닿아 있다. 손혜영 선생의 평소 춤 철학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이번 공연에서 특히 주목할 지점 중 하나는 춤의 재구성이다. 여섯 작품 중 ‘가인여옥’, ‘태평무’를 무대 컨디션과 출연진, 작품 순서 등을 감안해 배치, 재구성한 것은 공연의 예술적 완성도에 기여했다. ‘태평무’와 피날레 ‘태평누리’의 자연스러운 연결, 창작성이 부여된 안무작 ‘산조춤’ 또한 태평의 기운을 북돋우는 역할을 했다.
한 땀 한 땀 빚어내는 춤의 역사가 시작된다. 한영숙제 박재희류 ‘승무’. 손혜영이 독무로 하늘과 땅을 여는 춤의 기도를 드린다. 절제 속 웅숭깊은 맛이 전통춤의 나이테를 하나 더 새긴다. 염불장단에서 당악까지 이어지는 동안 장삼의 날림과 북가락의 이중주는 정화(淨化)의 빛이 됐다.
예술은 자유다. 춤 또한 자유다. 그 자유함이 깊게 스며든 춤 중 하나가 ‘산조춤’이다. 손혜영 안무의 산조춤 ‘죽청난향’이 응축된 자유를 선보인다. 2021년도 초연작으로 한영숙-박재희로 내려오는 춤정서에 기반해 손혜영만의 춤색깔이 가미돼 탄생 된 작품이다. 가야금 연주자 박경소의 현 울림이 무대 왼쪽에서 피어난다. 장윤정, 고선옥, 신지연, 조연우, 김희은 등 다섯 무용수들의 움직임이 서정성 있다. 작품 제목처럼 대나무의 청아함과 난의 깊은 향이 공간을 유영한다. 편안하게 써 내려간 ‘춤 편지’이자 ‘춤의 미풍(微風)’이다.
본격적으로 손혜영의 춤이 이어진다. 한영숙제 박재희류 ‘살풀이춤’이 회한과 정한을 담아낸다. ‘승무’의 정화 기운이 긴 수건 끝에 매달려 치유 속 깨달음과 성찰을 호명한다. 살풀이춤의 미덕이다. 솔로춤으로 보여준 손혜영의 살풀이춤은 내면을 향하되 타자를 위해 올리는 또 하나의 춤 기도가 됐다.
‘옥과 같이 아름다운 여인’이란 의미를 지닌 박재희류 입춤 ‘가인여옥’. 대금 소리에 얹혀 4명(홍지선, 이은진, 김한샘, 서민정)이 절제 속 우아함을 드러낸다. 우아하되 종반부의 신명을 부르는 맵시 있는 춤 기운이 옥과 여인을 하나로 이어준다. 아름다운 여인, 가인(佳人)의 마음빛(心光)이다. 조화의 기쁨이다.
어제를 딛고 일어선 오늘의 춤을 영상을 통해 알린다. 손혜영의 등장에 기원, ‘왕후의 기원’이 일렁인다. 4명의 무용수와 함께 춤향을 피워낸다. 2명이 합류해 7명(손혜영, 장윤정, 서보근, 남윤주, 김세미, 장희정, 고선옥)의 춤이 태평(太平)을 향한다. 한영숙제 박재희류 ‘태평무’다. 재구성을 통해 춤적 활기와 질감이 더해진다.
평화의 세상을 향해 질주한다. ‘태평누리’다. ‘태평무’를 추고 있는 무용수들에 홍지선, 서민정, 신지연, 이은진, 조연우, 김희은, 김한샘 등이 합류해 태평의 물결이 넘쳐난다. 손혜영이 중앙에 위치한 가운데 원무(圓舞)가 이어질 땐 춤의 원심력과 구심력이 교차된다. 춤적 가치가 고양된다.
이번 공연은 정화, 자유, 회한, 정한, 조화, 기원, 태평 등 각 춤이 지닌 내재성을 잘 포착해 구성해 춤의 서사를 쓴 무대였다. 평화의 세상을 노래한 ‘태평누리’다. 평화의 꽃을 피웠다.
이주영(무용평론가・고려대 문학박사・한양대 무용학과 겸임교수)
7dancetv@naver.com
Copyright(C)DANCETV, All rights reserved.
저작권자(c)댄스티브이,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출처/댄스TV= 이주영(무용칼럼니스트)-이주영의 무용읽기_손혜영의 태평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