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스TV=이주영 무용평론가] 소소함을 울림으로 공명시킨 무대였다. 성균관대 무용과 선, 후배가 함께한 공연, SKKU버선의 <소소한 서사 – 사이의 이야기>다. 평범 속 비범을 무용으로 담아낸 것은 사유에 기반한 창작성 발휘 때문이다. 마소정, 최희아, 한지혜, 조성민 안무자가 그 중심에 섰다. 2025년 1월 3~4일(평자 3일), 포스트극장에서 진행됐다.
SKKU버선의 '소소한 서사 – 사이의 이야기'(조성민 안무작)
첫 문은 마소정 안무 ‘단정의 이름으로’가 연다. 긴장 어린 표정으로 옷매무새를 연신 단정하게 한다. ‘단정하게’, ‘바르게’, ‘착하게’ 등은 사회적 규율 중 하나다. 의미 있는 사회적 기제이자 개인 이미지와도 연결된다. 안무자는 ‘단정(端正)’에 주목했다. 이는 굴레이자 규율이 돼 때론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지 못하게 한다. 소리 없는 저항으로 나아갈 수 있다.
한지혜, 곽승주, 유혜승, 마소정은 규율에 억눌린 몸에 대한 단상을 장단에 따른 서사로 담아내고, 마음과 인식의 변화를 기민하게 주파수를 맞췄다. 3, 2, 1인무 등 다양하게 변화하는 단장의 울타리는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가 언급한 ‘중심부와 주변부’의 경계선을 오르내리게 한다. 근간 일련의 마소정 안무작을 볼 때 사유의 진폭이 큰 무용가임을 알 수 있다.
무대 왼쪽에서 남자 무용수가 숨을 반복해서 들이마신다. 여자 무용수가 몸을 상하로 움직여 제자리에서 걷듯 서서히 이동한다. 흡입력 있는 음악과 움직임이 일렁인다. 최희아 안무 ‘air.log’다. 수면 아래에 있는 진동과 파동은 호흡을 통해 생명을 알린다. 안무자는 공기, 숨, 호흡 등 춤에서 중요한 지점을 움직임과 연결해 ‘춤의 자유함’으로 상승시켰다. 레이저 불빛이 공간에 분사될 때 보이지 않는 존재들의 무형성이 유형성으로 전환된다. 재치 있다. 김응민, 김범수, 최혜린, 최희아가 공기 속 주인공들이다.
2025년 8월의 ‘영(影), 生’에 대해 필자는 ‘미니멀하되 진중한 사유의 무대’라 평한 바 있다. 당시 한지혜, 곽승주 두 명이 출연했다. 이번 무대에서는 곽승주, 곽승린, 한지혜가 출연해 보다 깊어진 한지혜 안무 ‘영(影), 生 ver.2’로 돌아왔다. 작품에서 ‘의자’는 오브제로 삶과 죽음을 경계짓는 중요한 장치 역할을 했다. 생(生)의 강을 건넌다. 물소리 날 땐 폐부를 찌르는 강렬함이 전달된다. 삶이 끝난 뒤 남겨진 짙은 그림자는 음영을 넘어 그리움, 기억, 흔적 등 여러 삶의 편린들을 남긴다. 떠난 자와 남겨진 자의 숨죽인 대화를 차분하게 그려낸 이 작품은 ‘위혼무(慰魂舞)’의 가치를 창작적 순도 높여 구현했다.
피날레는 조성민 안무 ‘너를 위한 D단조 ver.2’가 마무리한다. 다소 거칠고 어두운 음색이 공간에 투사된다. 무용수들의 힘겨움이 어리기 시작한다. 조성민이 수건을 들고 등장한다. 살풀이춤은 모던하다. 바닥을 닦는 모습에서 삶과 죽음이 교차된다. 진혼가(鎭魂歌) 레퀴엠(Requiem)의 전주다. 무용수들이 무구같은 소품을 흔들 땐 잔잔한 슬픔이 배어 나온다. 슬픔, 서정성이 담긴 D단조가 주는 조성(調聲)은 춤을 통해 무성(舞聲)으로 치환된다.
김혜선, 한지혜, 이연지, 박혜연, 임주은, 한정효, 조성민이 몸으로 불러낸 한국적 레퀴엠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조성민이 유해를 묻혀 자신의 가슴을 칠 땐 먹먹함이 증폭된다. 누구나 마주하게 되는 가슴 시린 시간이 가루가 되어 분사된다.
SKKU버선의 <소소한 서사 – 사이의 이야기>는 네 명의 대학 동문 안무자들이 각자의 삶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독창성 있게 풀어냈다. 서사(敍事)에 서정(抒情)을 더한 무대였다. 2026년이 밝다.
이주영(무용평론가・고려대 문학박사・한양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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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댄스TV= 이주영(무용칼럼니스트)-이주영의 무용읽기_소소한 서사-사이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