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스TV=이주영 무용평론가] 미학의 중심축은 미(美)와 추(醜)다. 대립적일 수 있지만 양자는 미의 바다를 오간다. 상승과 확장을 시도한다. 현대무용가 김성훈이 무대 위에 ‘폭력’을 올렸다. 표피가 아닌 내면을 들여다보고자 숭고한 춤의 메스를 꺼내 들었다. 세종문화회관의 ‘Sync Next(싱크 넥스트) 25’에서다. 싱크 넥스트는 ‘무경계’를 지향한다. ‘경계 없는 무대, 한계 없는 시도’라는 슬로건에 부합하는 김성훈 안무 <pink>가 2025년 8월 28~30일,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진행됐다. 평자는 28일 프레스 시연회에 참석했다.

김성훈 안무 'pink'ⓒ세종문화회관

‘아르토 기법을 활용한 현대춤 표현 확장성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김성훈의 이번 공연은 연구와 실연이 조응된 무대라 할 수 있다. ‘폭력’, ‘잔혹’ 등을 언급할 때, 프랑스의 시인이자 연출가인 앙토냉 아르토(Antonin Artaud)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잔혹 연극론’이 핵심으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잔혹 연극론은 전통적인 연극의 형식을 넘어 관객의 감각과 심리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극단적이고 혁신적인 예술 형태로 풀이된다. 김성훈 박사는 논문에서 아르토의 잔혹연극 기법 4대 핵심 요소인 ‘형이상학’, ‘치유’, ‘이중성’, ‘폭력’을 현대춤과 연결시켰다. 감정의 해방, 내면의 노출, 신체의 극한 표현, 원초적 움직임 등 다양한 지점들이 춤과 호응 된다. ‘본질’, ‘정화’ 등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방법론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pink', 가장 부드럽고 잔혹한ⓒ이주영(필자)

작품 <pink>의 부제가 ‘가장 부드럽고 잔혹한’이다. 극한의 대립성을 지닌 명제에 수용된 이항대립(二項對立)은 무대에서 ‘폭력’이란 프리즘을 통과해 정화의 눈물을 쏟아낸다. 이 작품이 지닌 가치이자 무용사회학적 역할이라 할 수 있다. 폭력과 억압으로 억눌린 감정과 본능이 몸을 통해 재탄생된 이번 작품은 폭력의 흔적과 잔상이 지울수록 더 짙어지고, 감추려 할수록 더 명징해졌다.

남자 무용수들이 붉게 물든 무대의 3면을 닦기 시작한다. 무거운 음악이 무대에 내린다. 바닥을 닦는다. 작품의 키워드 중 하나인 ‘흔적’ 지우기다. 비트 있는 음악 속 기괴스럽고 때론 분절된 움직임의 솔로춤이 분위기를 알린다. 군무가 속도감을 더한다. 무용수들의 신체성이 부각된다. 이 작품에서는 고동훈, 배현우, 송승욱, 양승관, 이창민, 정재우, 정종웅, 홍성현 등 남자 무용수 8명이 등장한다.

세종문화회관' Sync Next 25'의 'pink'ⓒ세종문화회관

크고 둔탁한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두 남자의 거친 싸움이 시작된다. 밟고 찬다. 내동댕이쳐진다. 스모그 분사 후, 무대 위에서 무용수 1명이 칼을 뽑아 입에 넣는 모습을 보인다. 또 다른 1명이 얼음을 들고 등장한다. 과감히 던진다. 산산이 부서진 얼음 파편이 보여준 물성(物性)의 심성(心性) 치환이다. 현상이 본질을 향해 포효한다.

온몸이 핏빛으로 물든 무용수의 모습이 힘겹다. 2명이 닦아 준다. 한 남자가 무대 위 의자에 앉아 있다. 팔의 혈관을 묶는다. 주사기로 찌른다. 말림과 저항이 거세다. 무대 중앙에서 부드럽게 춤출 땐 서서히 죽어가는 듯 하다.

'pink'ⓒ세종문화회관

무용수들이 벽으로 향한다. 무대 후방 벽면에 등을 대고 움직인다. 균질된 움직임이 보여준 ‘집단성’은 폭력과 억압이란 수갑을 찬 콘크리트 같은 사회를 되돌아보게 한다.

안무자는 감각을 일깨우는 무대를 보여주고자 했다. 폭력은 단순히 물리적 차원에서 멈추지 않는다. 감정과 정서 등 내면까지 이어진다. 핑크(pink)는 아름답다. 하지만 억압 속에선 유사하지만 이질적인 핏빛으로 이동될 수 있다. 색감의 유사성과 춤의 기호성이 충돌되고, 해체돼 또 다른 핑크를 만들어 냈다. 김성훈표 ‘pink’다.

김성훈의 'pink'ⓒ세종문화회관

이주영(무용평론가・고려대 문학박사・한양대 무용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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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댄스TV= 이주영(무용칼럼니스트)-이주영의 무용읽기_김성훈의 ‘pi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