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스TV=이주영 무용평론가] 핫하다. 요즘 무용계에서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윤별발레컴퍼니(대표 윤별)의 ‘갓(GAT)’의 열풍 때문이다. 창작발레 <갓>은 한국의 전통 관모(冠帽) 갓과 발레의 운명적 만남을 이뤄냈다. 신분과 격식, 상황에 따라 색깔과 형태, 이미지 등이 다른 것이 갓이다. (재)예술경영지원센터 2025 공연예술 지역 유통지원사업 선정작인 이 작품은 지원작 토대 위에 지자체, 문화재단, 극장 등과 기획적 유기성을 획득해 2025년 5~6월을 갓의 세계로 물들이고 있다. 5월 안동 공연을 시작으로 서울, 여수, 6월엔 광명, 대전, 전주 등지에서 투어 중이다.
필자는 2025년 5월 17~18일(17일 관람), 강동아트센터 대극장 한강에서 진행된 서울 공연을 중심으로 평하고자 한다. 창작발레 <갓>은 2021년 트라이아웃을 시작으로 2024년 6월 초연, 2025년 전국 투어를 통해 발레 대중화에 기여하고 있다. 매 공연 매진행렬의 힘은 무엇일지, 콘텐츠의 힘은 어떠한지 등 여러 시사점을 안기기에 충분하다. 작년 창단공연 이후, 전국 투어로 발레단을 브랜딩하는 힘은 ‘작품’으로 수렴된다. 오브제 ‘갓’이 주는 다채로운 이미지는 한국문화를 추동하는 힘을 부여했다. 다양성은 흥미를 유발한다. 이는 관객을 소구하는 힘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기 때문이다. 공연 시작 전, 로비에 모인 관객들을 보게 되면 전공 영역 외 일반인들이 대부분 차지하고 있음이 한눈에 들어온다. Mnet ‘스테이지 파이터’ 출연자 등 인지도 높은 무용수 참여는 극장을 찾게 한 요인 중 하나다.
<갓>은 총 10개 작품이 옴니버스(omnibus) 형태의 구조를 지닌다. 중요한 점은 갈라 느낌은 있지만 안무의 흐름, 움직임의 연결 등이 음악, 의상, 무대 등을 통해 편안하게 이어져 ‘서사(敍事) 없는 서사’를 이루어 낸 무대였다. 작품별 갓 이미지를 통해 관객은 쉽게 유추할 수 있고, 잘 구성된 안무와 좋은 움직임이 발레라는 형식미를 통해 예술성을 증폭시켰다.
작품의 첫 시작인 ‘Intro’는 작품의 안무자인 박소연이 출연했다. 공연이 시작되면, 무용수가 천천히 갓을 쓴다. 과거와 역사를 길어 올리는 구도자의 모습 같다. 이 작품에서 큰 역할을 한 작곡가 최민지의 음악이 묵직하게 다가온다. 박혜민 등 여자 군무 속 갓의 떨림이 발끝에서 멈춘다.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다. 한국적 예(禮)가 살아난다. ‘女흑립’은 옛날 남성들만 쓸 수 있었던 갓을 여성 군무를 통해 강함과 멋이라는 두 키워드를 각인시키는 역할을 했다. 강인함 속 절제미가 돋보였다.
여자 무용수(박지수)가 쓴 붉은 색 갓이 강렬하다. 무사적 기운이 넘친다. ‘주립’은 네 명의 남자 무용수가 춤적 코러스 역할을 담당해 절도와 위엄을 담아냈다. 여장군의 위엄과 고독, 내면의 감정선까지 이끈다. 한눈에 심술궂은 놀부를 떠올리게 하는 ‘정자관’. 윤별 등 남자 무용수 세 명이 곰방대를 물고 시작한다. 피루엣(Pirouette) 후, 스며드는 한국적 음악이 분위기를 상승시킨다. 세 명의 춤이 조화롭다.
바람소리가 공간을 가로지른다. 유유자적하는 음유시인의 서정성이 남민지의 ‘삿갓’에 가득하다. 아라베스크(Arabesque)로 깔끔하게 마무리 된다. 객석에서 지게를 지고 패랭이를 쓴 남자 무용수(이은수)가 등장한다. 보부상의 춤판 ‘패랭이’다. 징, 꽹과리, 퍼커션이 어우러져 민속적 느낌을 물씬 풍긴다. 흥이 넘친다.
족두, 족관 등으로 불리는 족두리. 세 명의 여자 무용수가 족두리를 쓰고 있다. 작품 제목 ‘족두리’처럼 예식을 앞둔 여성들의 단아함, 수줍음 등이 보인다. 남자 무용수 세 명이 합류해 조화로움을 더한다. 강경호, 김유찬 등 다섯 명의 남자 무용수들의 부드러운 춤으로 시작된다. 각자의 점프 등 공간을 크게 쓴 ‘男흑립’은 솔로부터 2, 3인무 등 확장성 있는 안무와 움직임이 정교하다. 강한 에너지 속 부드러운 선이 선비의 지조와 멋을 담아낸다. 다섯 명의 균질감 있는 춤으로 마무리된다.
수묵과 모란으로 구성된 ‘문인화’. 먼저 윤별과 박소연의 2인무가 달빛 속 절제와 절도, 부드러움을 동시에 담아낸다. 여자 무용수 다섯 명이 피워내는 꽃춤은 앞 파트 수묵의 분위기를 일순간 수채 분위기로 전환시킨다. 이 작품은 두 파트가 지닌 고유성이 하나로 연결돼 분위기와 감흥을 배가시켰다. 전 출연자가 함께한 피날레 ‘갓일’. 다섯 명의 여자 무용수 춤으로 시작된다. 여러 한국춤이 수용된 이 작품은 세계화라는 측면에서 가능성을 보여줬다. 군무 상태에서 무대 배튼에 달린 갓이 순차적으로 내려온다. 갓의 이미지를 다시 한번 보여줌과 동시에 합일(合一)된 갓의 상징성을 집약한 노련한 연출이다.
지난해 창단공연에서 첫선을 보인 <갓>. 올해는 더욱 보강된 레퍼토리로 투어를 통해 자리매김한 해가 됐다. 옴니버스가 지닌 파편성을 유기적 연결과 연출을 통해 극복했다. 안무와 연출, 음악과 의상, 무대 등 무대표현요소를 해당 작품의 톤과 결부시키되 전체적으로는 춤적 톤앤매너(Tone & Manner)를 갖추어 갓의 예술적 정체성을 이끌어냈다. 75분의 ‘갓 미학’을 성공적으로 보여준 윤별발레컴퍼니의 핫한 내일이 더 기대된다.
이주영(무용평론가・한양대 무용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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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댄스TV= 이주영(무용칼럼니스트)-이주영의 무용읽기_윤별발레컴퍼니 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