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스TV=이주영 무용평론가] 노들섬이 전통춤으로 물들었다. 복합문화공간인 한강 위의 섬인 노들섬의 장소성을 높이고, 그동안 많이 알려지지 않은 ‘서울 전통춤 문화제’를 일거에 알린 역사적인 무대가 있었다. 서울특별시 주최, (주)예술숲(대표 김면지)이 주관한 <2025 서울 전통춤 문화제>다. 2025년 10월 17~18일 양일간 개최됐다. 총감독은 김면지 대표, 예술감독은 윤중강 평론가, 연출은 차지언 보유자가 맡았다.

화관무

이 문화제는 몇 가지 족적을 남겼다. 첫째, 춤축제의 면모를 보여줬다. 춤을 대상으로 삼되 축제성을 고양하기 위해서는 기획과 프로그래밍, 마케팅 등 제반 요소들이 충족되어야 한다. 철학과 현장을 직조시켜 구현함으로써 춤의 색깔, 축제의 가치를 담아냈다는 점은 유의미하다.

둘째, ‘서울’을 ‘춤’으로 이었다. 축제 콘셉트는 프로그램에 수용되고, 관객들에게 만족감 등 효용성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궁중무용과 민속무용이라는 두 축을 메인 프로그램으로 상정해 춤의 역사와 문화, 춤적 미학을 연결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셋째, 과거-현재-미래를 관통하는 전통춤의 길을 냈다는 점이다. 과거를 딛고, 오늘을 담아 내일을 연 축제였다. 특히 미래세대 무용가 발굴과 육성이란 측면에서 ‘춤을 그리는 젊은이들’ 프로그램은 기획과 결과에서 만족스럽다. 예술숲은 그동안 신진작곡가 발굴 프로젝트, ‘곡 짓는 젊은이들’을 통해 신진 작곡가들을 발굴하고, 그들의 작품을 소개해 창작과 예술세계 확장에 기여한 바가 있다. 향후 ‘춤을 그리는 젊은이들’은 무용 분야에서 그 이상의 역할을 충분히 하리라 본다. 이하에서는 17일과 18일의 주요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다루고자 한다.

퍼레이드

17일의 메인은 개막공연인 ‘궁중에서 이어온 춤’이다. 이 공연은 다음 날의 민속(민중)춤과 연결된 한 짝이 된 무대라 볼 수 있다. 광복 80주년이 되는 2025년. 긴 시간의 터널을 지난 찬란한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미래와도 연결되는 개막공연은 ‘해방의 몸짓’을 역사성 깊은 궁중무용과 교방춤을 소재로 삼아 심연한 미학성을 드리웠다.

포구락
궁중검무

구멍 안에 공을 던져 넣는 놀이를 춤과 음악에 담은 ‘포구락(抛毬樂)’, 전국에 산재한 여러 검무의 전승과 진화에 영향을 미친 ‘궁중검무(宮中劍舞)’, 궁중무용 중 독무의 대표 주자로 인기가 많은 ‘춘앵전(春鶯囀)’, 국가무형유산이자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인 ‘처용무(處容舞)’ 등이 궁중춤의 역사와 문화, 예술을 담아냈다. 한국전통문화연구원 인남순 원장의 역할이 컸다. ‘춘앵전’ 솔로춤을 보여준 탄천초등학교 5학년 황재윤의 춤에서 미래를 확인할 수 있는 시간도 됐다.

춘앵전
처용무

교방의 춤에는 황해도무형유산인 ‘화관무’를 중심으로 ‘입춤’, ‘부채입춤’, ‘해주 수건춤’ 등의 다양한 교방 춤미학을 통해 메인 무대를 수놓았다. 문화제의 연출을 맡은 황해도무형유산 화관무 차지언 보유자의 지도와 출연으로 인해 빛을 더했다.

화관무
입춤
부채입춤
해주수건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번 문화제에서 17일 노들섬 라이브하우스에서 진행된 ‘춤을 그리는 젊은이들’은 신선한 기획이자 특별한 무대다. ‘사람이 춤이자, 춤이 사람임’을 알린 신호탄이라 볼 수 있다. 만 35세 미만의 청년 안무가들이 서울을 주제로 창작한 안무작이 경연 방식으로 진행됐다. 심사를 통해 선발된 1팀에게는 페막 메인무대에서 함께할 수 있는 혜택을 부여했다.

사유(思遊)의 강(江)

강채연의 ‘맥(脈), 서울을 흐르다’, 김예원의 ‘문득’, 송민애의 ‘흑(黑), 흑(黑), 흑(黑)’, 이연정의 ‘사유(思遊)의 강(江)’, 최서연의 ‘도시의 빛, 장삼 자락에 깃들다’, 황예지의 ‘GAT ON STAGE’가 무대에서 각각의 참신성을 드러냈다. 1위를 차지한 ‘사유(思遊)의 강(江)’은 ‘선유락(船遊樂)’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전통 뱃놀이 분위기의 형상성 강화를 위한 파도 모양의 부채꼴 가벽 설치, 네 명의 군무를 통해 배의 움직임과 물결의 흐름을 시각적으로 구현했다. 현대 서울의 강 위에서 펼쳐낸 ‘오늘의 한강 춤풍류’라 할 수 있다.

춤을 그리는 젊은이들

18일은 노들섬 잔디마당에서의 특별공연과 폐막공연이 중심 역할을 했다. ‘서울, 춤으로 이어진 백 년의 시간 – 한성준을 기억하다’라는 타이틀로 한국춤사(史)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한성준의 춤맥을 네 명 무용가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오후 5시에서 진행된 이 공연에서는 태평무 전승회의 홍지영, 김진미, 이예윤은 ‘한영숙제 박재희류 태평무’를 격조있게 보여줬다. 숙명여자대학교 차수정 교수는 ‘한영숙제 정재만류 승무’, 국립국악원 무용단 예술감독을 역임한 유정숙 용인시립예술단 단장은 ‘강선영류 태평무’, 서울시무형유산 살풀이춤 이은주 보유자 는 ‘한영숙류 살풀이춤’을 각각의 춤적 특질을 담아냈다.

한영숙제 박재희류 태평무
한영숙제 정재만류 승무
강선영류 태평무

한영숙류 살풀이춤

18일 폐막공연은 삶의 몸짓이 흥과 멋, 풍자를 통해 춤의 서사를 이룬 무대였다. 리틀엔젤스 예술단과 ‘춤을 그리는 젊은이들’에서 우승한 팀의 무대가 미래를 알린다. 이번 문화제에서 높이 평가할 수 있는 것 중 하나는 ‘전통’이란 것 때문에 자칫 과거와 역사에 함몰될 수 있는 것을 벗어나 ‘현재라는 공존성, 내일이라는 미래성’을 함께 담아냈다는 점이다.

흩어진 삶의 무대
사자춤

깊은 구음 속 춤으로 한을 달랜 살풀이성 강한 김리혜 안무, 출연의 ‘흩어진 삶의 무대’, 명인 김덕수의 장구와 연주단의 라이브 연주가 춤에 힘을 보탠다. 객석에서 등장해 함께하는 축제를 알린 (사)북청사자놀음보존회의 ‘사자춤’, 차지언의 안무와 지도로 세종대학교 무용과 9명 무용수들의 ‘진도북춤’과 ‘소고춤’이 민속춤의 가치와 미래를 동시에 고양한다. 판굿이 춤과 어우러져 연희성과 춤성이 동시에 연출돼 축제성을 제고했다.

진도북춤
소고춤

국립무용단 출신 스타 무용수인 최호종은 ‘舞‘VE SEOUL, MOVE KOREA’라는 주제를 담아 주제공연이라는 콘셉트에 맞게 흡입력 있는 솔로춤을 보여줬다. 주제공연에 명실상부한 안무와 춤은 대미 장식에 부족함이 없었다.

舞‘VE SEOUL, MOVE KOREA

축제는 메인 프로그램과 서브(부대) 프로그램 상호 간 시너지를 내는 게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이번 문화제에서 기획, 구성한 각 프로그램들은 각각의 위치에서 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전통춤의 발자취를 따라 걸으며, 전통춤의 서울 접목과 수용이라는 콘셉트 하에 다큐 형식으로 풀어낸 전시 ‘미리 걷는 춤길’, 전통춤 관련 무형유산에 대한 아카이빙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전통춤 무형유산 전시’, 예술가와 시민의 가교 역할을 한 전통 플리마켓인 ‘잇다 마켓’, 의상, 소품 등 전통춤에 대해 가까이 갈 수 있는 ‘체험 부스’, 관객들의 능동적 참여해 기여한 ‘스탬프 투어’ 등이 노들스퀘어 곳곳을 채웠다.

체험 부스

공연(춤)은 경험재(經驗財)다. 직접 경험하기 전에는 평가 내리기 어렵다 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시민들과 함께한 부대행사 프로그램, 특히 양일간 시간대를 정해 사전 및 현장 예약자들과 함께한 ‘노들춤마당: 탈! 춤! 노들!’은 살아있는 춤축제의 현장이라 평가할 수 있다.

노들춤마당: 탈! 춤! 노들!
사자탈 체험

언남초등학교 전통예술단 어린이들의 퍼레이드와 퍼포먼스로 이루어진 ‘미래세대 전통의 길을 걷다!’, 북청사자놀음보존회의 퍼포먼스와 체험이 이루어진 ‘노들섬에 사자가 내려오다!’는 퍼레이드의 속성인 참여를 통한 화합과 연대의 기호성을 충실히 보여줬다.

퍼레이드

<舞’VE SEOUL, MOVE KOREA>라는 주제를 표방한 <2025 서울 전통춤 문화제>는 전통춤 축제의 이정표라 할 수 있다. 춤을 통한 서울의 움직임이 대한민국을 예술로 옮겼다.

이주영(무용평론가・고려대 문학박사・한양대 무용학과 겸임교수)

7dancetv@naver.com
Copyright(C)DANCETV, All rights reserved.
저작권자(c)댄스티브이,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출처/댄스TV= 이주영(무용칼럼니스트)-이주영의 무용읽기_2025 서울 전통춤 문화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