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스TV=이주영 무용평론가] 무형유산(無形遺産)의 존재 가치를 명확하게 알린 시간이었다. 보존, 전승, 활용 등 무형유산이 지닌 함의는 고금(古今)을 막론한다. 어제의 시간을 담아 오늘을 딛고, 내일을 여는 것이 바로 무형유산의 숭고한 미덕이다. 2025 벽사춤 기획공연 하늘의 춤 <승무 완판>은 공연이라는 하나의 시간을 뛰어넘었다. 그 주인공은 4대 벽사 정용진 국가무형유산 승무 이수자다.

정용진 국가무형유산 승무 이수자

작년 5월 2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의 <재회(再會)>는 벽사 정재만 서거 10주기를 맞아 추모의 의미를 넘어 새로운 시작을 알렸다. 평자는 해당 공연에 대해 ‘고인과의 재회, 춤역사와의 재회, 이별과 만남의 재회’임을 언급했다. 무엇보다 한성준-한영숙-정재만-정용진으로 이어지는 벽사춤 전승은 지금이 중요하다. 무형유산 ‘승무(한영숙류)’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사람이 답이다. 국가무형유산 승무의 전승과 보급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그 역할을 담당할 자는 세 요소를 갖추어야 함을 주창(主唱)해 왔다. 바로 ‘적통(嫡統), 전통(傳統), 정통(正統)’이다. 필자는 이를 ‘무형유산 전승 리더의 삼통(三統)’이라 재언하고 싶다. 2025년 3월 4일(화), 국립국악원 풍류사랑방에서의 ‘승무’ 완판 무대가 이에 답했다.

벽사춤이 주최하고, 벽사정재만춤보존회가 주관한 이번 공연은 정용진 벽사춤 대표이자 벽사정재만춤보존회 회장을 맡고 있는 정용진 이수자가 故 정재만 승무 예능보유자의 생일에 맞춰 무대를 올렸다. 2018년 3월 4일 ‘승무 완판’ 이후, 7년 만의 춤 여정이다. ‘하늘의 춤’이란 부제가 알려주듯 이날의 승무는 하늘에 닿았다. 커튼콜에서 보여준 정용진이 아버지에게 표한 헌정(獻呈)의 모습은 뭉클하다.

공연 전, 영상이 10분 가까이 상연된다. 정재만 보유자가 스승 한영숙의 묘에서 춤추는 장면, 정재만-정용진으로 승무가 이어짐을 공식적으로 알린 ‘내림춤판’, 부자지간을 넘어 사제(師弟)로서 승무를 지도하는 모습 등이다. 공연의 프롤로그 역할을 했다.

2025 벽사춤 기획공연 하늘의 춤, '승무 완판'

탑조명 아래 징의 울림이 하늘로 향한다. 장삼이 머금은 공기가 승무의 시작을 숭고하게 알린다. 느릿함이 퍼져 나간다. 정(精)에 성(誠)을 더하고, 예(藝)에 예(禮)를 더한 순간이다.

공연은 염불을 시작으로 반염불, 타령, 빠른타령, 굿거리, 잦은굿거리, 굿거리, 북, 당악, 굿거리 순으로 이어진다. 이날 무대는 벽사 한성준의 승무 중 45분 정도 소요되는 ‘승무원본’을 오른쪽, 왼쪽 양쪽 대칭으로 췄다. 벽사(碧史)류 춤이 지닌 맥과 혼을 담아 승무와 33년 춤길을 걸어온 정용진의 또 한 번의 도전이자 이정표라 할 수 있다.

객석에서 여러 차례 중간 박수로 화답하며 함께한 관객들, 처음부터 끝까지 완판 무대에 연주로 함께 춤을 춘 악사들의 하나 된 힘 또한 춤꾼의 버팀목이 됐다.

4대 벽사(碧史) 정용진 벽사춤 대표

벽사(碧史)류 승무는 기원의 성격을 띤 제의의 춤이다.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 사상이 담겨 있다. 벽사류 춤의 사군자 중 대나무(竹)에 비유된다. 공연 후반부에 도드라지게 보여 준 춤적 의식성(儀式性)은 춤의 생명력 발현 그 자체였다. 응축된 품격의 잔향이 깊다.

벽사춤은 기원의 춤, 삶의 춤, 해탈의 경지에 이르는 춤이다. 이날 무대는 무용가 정용진 혼자만 춘 것이 아니다. 벽사 전체가 춘 것이다. 역사의 춤 무대요. 미래를 여는 오늘의 춤 무대다. 하늘에 닿고, 땅을 울린 시간이다. 2003년 12월 21일자로 발급된 승무 이수증 제1호가 묻다. 2025년이 답할 때다.

이주영(무용평론가・고려대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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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댄스TV= 이주영(무용칼럼니스트)-이주영의 무용읽기_정용진 승무 완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