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스TV=이주영 무용평론가] 춤이 생명의 씨앗이 돼 세상을 밝혔다. 2025년 1월 16일, 한국문화의집(KOUS)에서 진행된 <‘한밝춤’ 생명의 물결로> 무대다. 한영숙류 이애주 춤맥을 잇고 있는 춤꾼 권효진(고전문화예술연구회 대표, 승무 이수자)이 마련한 이번 공연은 철학서를 마주하는 듯 심오했다. 깊음 속에 시원함도 있는 것은 콘셉트가 명확하고, 춤의 주인공인 권효진 선생이 지나온 춤의 세월과 미래를 향한 염원이 그 속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춤판은 영가무도를 시작으로 승무가 중심을 잡고, 태평을 향해 달려갔다.
권효진의 스승 故 이애주 승무 예능보유자는 “춤이란 생명을 다하는 몸짓, 유·무정의 살아 숨쉬는 생명의 몸짓”임을 역설했다. 이번 공연의 키워드 중 하나인 ‘한밝춤’은 밝고 따뜻한 빛의 춤이다. 특히 스승은 춤의 사회적 기능을 몸소 실천했던 바, 제자 또한 춤과 사회라는 관점에서 춤을 정의하고, 풀어내는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2025 권효진춤판’은 그 의미를 충분히 아로새긴 무대라 할 수 있다. 임진택 이애주문화재단 상임이사가 ‘우주생명을 본받아 마음과 몸, 정신을 통합해 깨우쳐 밝아지는 춤’(이애주)에서 ‘생명물결의 춤’(권효진)으로의 복원과 전승에 대한 언급은 한밝춤이 지닌 전승 재창조라는 측면에서 기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오행의 상징이자 하늘의 별이라 할 수 있는 ‘영가무도(詠歌舞蹈)’가 첫 문을 연다. 권효진의 소리가 공간에 퍼져 나간다. 소리춤의 몸짓이다. 김항-김일부-박상화-이애주로 이어지는 영가무도는 길게 읊는 ‘영(詠)’의 울림, 공명이 연결된 ‘가(歌)’, 몸의 율동과 흥이 저절로 일어나 몸 장단을 쳐 신명이 발현되는 ‘무(舞)’, 저정거리며 나아가 땅을 밟고 구르는 ‘도(蹈)’로 이어진다. 작위가 아닌 생명의 자연 발로라는 측면이 있다. 권효진의 춤에 반주가 울림과 떨림을 더해줬다.
영가무도의 파동은 구음과 만나 생명의 물결을 하나씩 채워 나간다. 구음과 만난 ‘한밝+덩~기덕 합 궁~’이다. 세상에 전하는 울림이다. 조화와 질서를 위한 외침이기도 하다. 쌓인 덕은 복으로 나눔의 미덕을 실천케 한다. 형이상학적이나 땅을 향하는 춤 구도적 실천사상이 자리잡고 있다.
이번 무대의 절정은 완판으로 춘 ‘승무’에서 절정을 이뤘다. 승무 보유자였던 이애주 선생은 우주자연과 춤의 이치에 근간해 승무 정신과 춤의 연결을 통해 생명철학의 경지를 이룬 업적이 있다. 권효진은 승무 완판을 통해 한성준-한영숙-이애주 춤맥을 확인시켰고, 마음-몸-정신의 합일점을 생명춤으로 꿰어 냈다.
공연이 시작되면, 영상 속 물소리가 세차다. 심연하다. 하나하나 새기는 춤, 근본을 깨우는 춤, 승무는 이번 무대에서 민속무 차원을 넘어 의식무 느낌마저 부여했다. 숭고의 자리 잡음이다. 무악(舞樂)이 연결돼 또 하나의 무(舞)를 만든 시간이다. 특히 땅을 밟고 있으나 하늘을 바라보는 듯한 지향성, 몸을 움직이지만 그 속에서 숨 쉬는 정신의 요동침은 이번 춤판에서의 포인트라 할 수 있다.
유인상, 고령우, 박주홍, 정부교 등 4명의 장구가 하나 돼 ‘판의 울림’을 만든다. ‘영가무도’부터 ‘승무’까지 축적된 기운, 한밝의 정신을 응축하고 확장하는 과정이다. 구음의 실체인 장구장단이 호남우도가락의 섬세하고 부드러운 면모를 잘 살렸다.
생명에서 태평으로 나아간다. 한성준 선생이 굿춤으로 체계화하고, 한영숙 선생의 춤맥에 바탕해 이애주 선생이 구성한 ‘태평춤’이다. 평등과 평화에 대한 염원이 ‘태평(太平)’이란 단어 속에서 자신의 이름이 온전히 빛나길 희구(希求)한다. 생명에 대한 존중과 일깨움 가득하다. 춤꾼의 사회적 역할까지도 웅변한다. 작품 속에서 권효진이 솔가지, 꽹과리, 지전 등을 순차적으로 들고 추는 모습에서 각 소품은 오브제가 지닌 상징성을 넘어선다.
‘한밝춤’을 통해 생명의 씨를 뿌리고, ‘승무’를 통해 완성한 권효진의 이번 춤판은 생명춤의 재탄생을 알렸다.
이주영(무용평론가・고려대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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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댄스TV= 이주영(무용칼럼니스트)-이주영의 무용읽기_2025 권효진춤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