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스TV=이주영 무용평론가] 송년발레 새 레퍼토리 탄생을 알리다. 김순정발레단이 마련한 <눈의 여왕>을 통해서다. 2024년 12월 20~21일(평자 20일 관람), 강북문화회관 강북소나무홀에서 개최된 이번 무대는 송년발레의 대명사 ‘호두까기인형’의 아성을 이어갈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작품이 레퍼토리로 구축되기 위해서는 필자가 연구를 통해 명명한 ‘극장레퍼토리’에서도 적시했듯 3요소인 대표성, 예술성, 지속성이 담보 돼야 한다. 극장과 레퍼토리라는 측면에서도 감지되듯 발레단이 구심점을 확보할 수 있는 공간(극장), 발레의 내재성과 고유성이 수용된 작품, 예술경영과 연결되는 지속과 확장은 중요하다. 향후 이 작품이 수정, 보완을 통해 나갈 수 있는 환경과 미학성 발현이 교집합을 이루면 충분하리라 본다.
이 작품의 원작은 동화의 아버지 안데르센이 1845년에 출간한 첫 동화 ‘눈의 여왕(Th Snow Queen)’이다. 소년 카이(Kai)와 소녀 게르다(Gerda)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선과 악, 모험과 구원 등 다양한 메시지가 이 작품엔 빼곡히 들어가 있다. 문학의 무용화는 콘텐츠 개발이라는 관점에서 많이 적용되고 있다. 발레 ‘눈의 여왕’에서 안무와 연출을 맡은 김순정 예술감독(성신여대 교수)의 경륜과 창작성이 점철돼 12월을 아름답게 수놓았다. 세상을 구원하는 것은 ‘순수한 사랑’임을 역설한 이 작품은 다양한 캐릭터가 무대에서 구현되고, 서사의 발현을 통해 재미와 감동이라는 키워드를 획득한 것은 작품 확장성에 있어 유용하다.
눈의 여왕(정지윤), 게르다(박혜림), 소녀 게르다(주사랑), 소년 카이(김시훈), 악마대장(최재혁), 순록(홍호림), 친절한 까마귀(김민수), 똑똑한 공주(이승민), 상냥한 왕자(신승우), 라플란드 여인(이은비), 요술쟁이 노파(심지민), 나쁜 산적 도둑(김경훈), 친구가 없는 산적의 딸(조윤)을 비롯해 악마트롤, 시간의 요정, 눈송이 요정과 눈의 군사들, 마법 정원의 요정들, 산비둘기와 행인, 나비(조세민), 아이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캐릭터의 풍요로움을 보여준다. 안무자 김순정은 핀란드의 지혜로운 여인 역할로 작품에 생기를 더했다.
눈 내리는 영상이 북유럽으로 순간 이동시킨다. 무대 중앙에 아이들이 무리지어 있다. 거울 앞에 선 악마대장과 악마트롤이 검정 옷을 입고 무브먼트를 보인다. 소녀 게르다와 소년 카이의 듀엣이 사랑스럽다. 무음악 속에 눈의 여왕이 등장한 후, 4인무와 3인무 군무가 이어진다. 눈 내리는 가운데 펼쳐지는 눈꽃같은 춤, 눈의 여왕 솔로춤이 우아미를 한껏 발산한다. 악마의 거울 조각이 카이의 눈과 심장에 박히고, 카이는 심술궂게 변해 눈의 여왕을 따라가며 전개되는 이야기는 흥미와 몰입감을 부여했다.
작품 속에서 게르다는 카이를 찾아 마법의 정원, 친절한 까마귀, 왕자와 공주를 차례로 만난다. 성을 배경으로 한 왕자와 공주의 파 드 되(pas de deux)는 우아하고 정교했다. 숲에서 만난 산적의 딸은 게르다를 순록에 태운다. 라플란드 여인은 게르다를 핀란드로 보낸다. 경쾌한 음악 속에 김순정의 솔로춤이 이어진다. 이 작품에서 중요한 메시지는 카이를 구할 수 있는 것은 모험의 여정을 거치며, 게르다 자신이 느끼는 자신 속에 존재하는 힘이다. 순수와 사랑이다. 순수한 사랑이다. 안데르센이 강조한 동화 속 텍스트의 메시지는 춤을 통해 증폭됐다.
이 작품은 각 장면과 호응하는 영상, 동화성과 환상성이 부여된 발레, 원작에 담긴 일곱가지 이야기의 무대화, 짜임새 있는 서사 구현 등이 작품성을 높이는 데 역할을 했다. 송년발레 레퍼토리 가능성을 높인 출발점을 목도한 시간이다. 작품 내내 눈과 귀를 집중해 객석을 가득 채운 아이들의 눈빛에서 그 확신을 읽을 수 있었다. 이 작품이 더욱 발전할 수 있도록 지원이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하는 이유 중 하나다. 무대라는 숭고한 시간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대장치와 세트, 음악, 의상 등이 안무와 어우러져 공간미, 입체미가 배가된 다음번 ‘눈의 여왕’을 기다려 본다.
이주영(무용평론가・고려대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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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댄스TV= 이주영(무용칼럼니스트)-이주영의 무용읽기_눈의 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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