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영의 무용읽기_명불허전(名不虛傳)

대구에서 꽃피운 박재희 보유자의 전통춤
국가무형유산태평무전승회, ‘명불허전(名不虛傳)’

이주영 칼럼니스트 승인 2024.07.06 20:46 | 최종 수정 2024.07.07 14:01 의견 0

[댄스TV=이주영 무용평론가] 국가무형유산은 전국 단위다. 그런 연유로 지역마다 무형유산 지회(부)를 두어 춤 유산 전승과 계승에 주된 목적을 두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벽파 박재희 보유자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그 맥을 이어가고 있는 국가무형유산태평무전승회는 가장 모범된 면모를 대내외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현재 전승회는 대구를 중심으로 한 영남지회(손혜영 지회장), 청주를 중심으로 한 중부지회(홍지영 지회장), 서울지회(김진미 지회장)라는 세 축이 무형유산의 트라이앵글이 돼 ‘태평무(太平舞)’라는 고귀한 춤을 발전시켜 나간다. 2024년 5월 29일(수), 대구 아양아트센터 아양홀 객석이 만석을 이룬다. 대구동구문화재단, 아양아트센터, (사)벽파춤연구회가 주최하고, 국가무형유산태평무전승회가 주관한 2024 국가무형유산 태평무 기획공연 ‘명불허전(名不虛傳)’이다. 타이틀만큼 명실상부했다. 보유자를 중심으로 한 전승회 멤버들은 춤이란 이름으로 태평을 그려냈고, 달구벌은 춤의 향연장이 돼 국가무형유산이 지닌 숭고한 미덕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이날 공연은 한성준-한영숙-박재희로 이어지고 있는 다섯 전통춤과 대구 출신 무용가 장유경, 윤미라 교수가 어우러져 춤의 마디는 단단해졌고, 춤의 나이테는 켜켜이 쌓인 무늬에 한 줄기 춤 섬광이 더해져 명징했다.

국가무형유산태평무전승회(박재희 보유자), ‘명불허전(名不虛傳)’

하늘과 땅을 잇는다. 춤의 세월을 노래한다. 60년의 춤빛이 무대 중앙에 선 박재희 보유자에게로 향한다. 세월, 춤, 삶을 길어 올리는 시간이 시작된다. 솔로춤(손혜영)을 시작으로 춤 무늬가 하나씩 아로새겨져 나간다. 1969년도에 지정된 한영숙류 ‘승무’다. 절제와 비움, 엄숙과 고요가 직조된 승무가 4명(류언선, 장윤정, 서보근, 남윤주)이 합류해 울림의 무늬까지 더해진다. 맥(脈)을 부른다. 10명(김나영, 방명희, 조연우, 김하나, 이귀은, 고선옥, 김수진, 김나경, 김민경, 이서현)의 군무진이 어우러져 북의 합창이 거세다. 미래를 부른다. 구성과 전개가 유려해 승무의 춤적 미감이 고양된다.

‘승무’

1930년대 한성준 선생이 학의 생태를 연구해 발원된 ‘학춤’. 한영숙 선생의 손길이 더해지고, 박재희 선생에 의해 재구성된 민간학춤의 대표춤이다. 구름길이 피어난다. 산수를 영상배경으로 해 젓대소리가 두 마리 학을 부른다. 강소정, 최미옥은 학이 돼 조응한다. 편안하다. 민속춤의 가치를 고양한 학춤은 인간과 자연의 조화까지 수용하고 있다. 어우러짐은 결국 삶을 잉태시키고, 영위하는 인생의 기둥이다. 우아한 학의 자태가 주는 고고함은 삶을 성찰하는 묘한 기제로 작동했다.

‘학춤’

부채와 명주 천이 만났다. 직선과 곡선의 절묘한 결합이다. 장유경 교수에 의해 2003년도에 초연된 ‘선살풀이춤’은 2019년도에 재구성 돼 완성도를 높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경쾌한 걸음으로 춤이 시작된다. 객석에 흡입력 있게 빨려 들어간다. 템포 있는 음악속에서 빛어내는 춤은 음양의 조화요, 영남춤의 미래를 열어간다는 느낌마저 든다. 수건춤의 확장이자 융합의 산물이 된 저력있는 춤 콘텐츠다. 선살풀이춤보존회를 중심으로 더욱 확산되길 기대해 본다.

‘선살풀이춤’(장유경)

무대 분위기가 화사해진다. 우아미가 발산된다. 옥과 같이 아름다운 여인이란 의미를 지닌 ‘가인여옥’이다. 강유정, 김문영, 김한샘, 유혜리, 장연희, 조유진, 김현결 등 7명 여인은 각자가 가인여옥이 돼 하나 된 가인여옥을 호명한다. 벽파입춤으로 유명한 이 작품은 박재희 선생이 부채를 활용해 안무한 입춤이다. 즉흥성이 담지된 이 춤은 이날 봄꽃처럼 때론 여름숲처럼 다양한 변신을 하며 무태(舞態)를 자랑했다. 은은하게 동여맨 화려함이 흥과 멋을 지닌 여인의 심성까지 담아낸다.

‘가인여옥'

겹쳐진 산자락 마냥 웅숭깊에 들려오는 음악소리에 3명(홍지영, 손혜영, 고수현)이 춤혼을 띄운다. 정중동의 미덕이 강한 한영숙류 ‘살풀이춤’. 이날은 애원성보다는 동행의 연(緣)을 노래한다는 춤적 느낌이 강했다. 침잠된 한의 내적 승화라는 살풀이춤이 지닌 내재미 위에 인연의 숨결이 춤결을 그려냈기 때문이다. 사군자 중 국화에 비유되는 3인이 만들어낸 살풀이춤은 민속춤의 정수를 유감없이 발산했다.

‘살풀이춤’

객석에 조명이 들어온다. 달구벌을 밝힌다. 윤미라 경희대 교수의 등장에 밝아진 객석이 수줍어하듯 어둠이 깔린다. 흩날리는 수건춤과 활기찬 소고춤의 조화미 가득한 ‘달구벌입춤’이다. 달구벌입춤보존회 회장이기도 한 윤미라는 달성권번의 박지홍, 최희선으로 이어지는 춤유산의 가치를 저력있게 보여준다. 여유있되 관록있는 그의 춤을 마주함은 반가움 그 자체다.

‘달구벌입춤’(윤미라)

박재희 선생의 춤이 시작된다. 역사가 빚어 낸 춤 물결이 일렁인다. 잔잔한 울림 속 춤사위는 격에 격을 더한다. 김진미, 유혜리, 조유진, 김희원, 정희담, 김문영, 이은진, 김한샘, 임미례, 강경수, 홍지선, 강윤주, 김현결, 전여경 등 14명의 여자 군무진이 피워내는 우아함과 절제된 춤맛은 태평성대의 본향(本鄕)을 담아낸다. '태평무'다. 솔로춤을 필두로 이어져 하나된 춤의 바다는 명물허전이라는 삶의 대지까지 실어 유유히 흐른다. 하나씩 새겨지는 이름, 바로 춤이다. 태평이다. 박재희다.

'태평무'

지역에서 만나기 쉽지 않았던 박재희 보유자의 춤 레퍼토리가 대구에서 한자리에 모인 이날의 무대는 무형유산의 춤적 가치를 제고했다. 대구를 중심한 영남춤 활성화의 계기를 마련한 것 또한 유의미하다. 대구예총 강정선 수석부회장, 손혜영 전승회 영남지회장을 비롯한 대구지역 무용가와 관계자, 총진행을 맡은 김혜경 선생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손길 또한 한 몫을 했다. 유인상, 이성준 등 쟁쟁한 반주단의 음악적 뒷받침은 춤의 입체성을 높이는 데 일조했다. 무엇보다 보유자를 중심한 전승회 구성원 모두가 하나 돼 우리춤의 정신과 가치를 몸소 실천했기 때문이다. 대구를 시작으로 전국의 공연장에서 소중한 기회들이 이어지길 바란다. 명물허전을 직접 마주할 수 있는 의미있는 시간이 되리라 본다.

이주영(무용평론가・고려대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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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댄스TV= 이주영(무용칼럼니스트)-이주영의 무용읽기_명불허전(名不虛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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