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영의 무용읽기_이봉주의 춤

본향의 봄, 평화의 봄, 희망의 봄
서사(敍事)로 구축한 춤성 가득한 무대
이봉주의 춤, ‘이순신 양천에 오다’

이주영 칼럼니스트 승인 2024.04.12 13:16 | 최종 수정 2024.04.13 12:23 의견 0

[댄스TV=이주영 무용평론가] 객석이 꽉 찼다. 객석만큼 공연 또한 풍요로웠다. 이봉주의 개인 춤판이 2024년 4월 2일, 양천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렸다. ‘이순신 양천에 오다’라는 타이틀이 말해주듯 국가무형유산 승전무(勝戰舞)를 중심으로 원향 엄옥자류 작품과 최종실류 소고춤을 연결시켜 춤 스토리화 했다. 서사의 축을 이끌어 가는 역사적 이야기는 탄탄했고, 춤과 음악이 잘 받쳐줬다. 왜군의 침략, 전쟁 속 민초들의 아픔, 이순신 장군의 죽음, 승리, 평화 등이 골격을 이룬다. 총 여섯 파트로 구성된 이번 무대는 충무공 이순신의 호국정신도 되새기며, 전통춤이 지닌 문화예술, 역사, 사회적 의미까지 담지했다.

이봉주, '엄옥자류 수건춤'

이번 공연을 주최한 이봉주는 양천에서 나고 자랐다. 양천문화원 이사, 원향춤보존회 서울지부장, 승전무 전수자로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무용가다. 2000년 수필가로 등단한 작가로서의 면모까지 담아 춤감성으로 유려하게 담아냈다. 양천의 문화예술과 원향춤 발전에 크게 기여하리라 본다.

봄날의 여운이 “지화자~” 소리와 함께 울려 퍼진다. 마을의 평화로움이 ‘통영기방입춤’을 통해 너울댄다. 이 춤은 승전무 시작 전에 몸을 다듬는 역할을 한다. 승전무의 최초 북춤 예능보유자 정순남(1907~1984) 예인의 굿거리장단과 구음에 근간을 두어 기본 동작으로 구성된다. 이봉주, 노희진, 강영숙, 이승희, 이유진, 유현주 등 6명의 원향춤보존회원들의 입춤은 봄날 그 자체였다.

'통영기방입춤'

격렬한 총, 포탄 소리가 무대를 에워싼다. 충무공의 결기 가득한 마음을 담은 내레이션(narration)이 울려 퍼진다. 장영미, 박준희, 백정순, 김현애 4명의 ‘통영칼춤’이 열두 척의 배에 승선한다. 담백하되 힘있다. 구국의 예혼이 담긴 승전무는 경남 통영에서 전승되는 북춤과 칼춤이다.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 이순신이 장수와 병졸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병선에서 추어졌다. 승전 이후에는 축하의 의미로 추고, 충무공의 춘추향사 때와 단신제 등에 헌무되는 대표적인 통영춤이다.

'통영칼춤'

부녀자들의 울부짓는 소리가 넘쳐난다. ‘엄옥자류 수건춤’이 눈물꽃이 된다. 이봉주는 한 떨기 국화로 피어나 진혼(鎭魂)을 알린다. 침잠된 슬픔의 내적 구도가 음(音)의 폐부를 나지막이 찌른다. 짙은 구음 속 넋의 행렬이 수건에 동여매진다. 한 손에 쥔 수건을 강하게 뻗어 올릴 때 정점을 찍는다.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卽生 必生卽死)’의 각오가 메아리 친다.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건 용기다. 날섬무예총림 총재인 하태웅의 ‘날섬도’는 이순신 장군의 무인 정신을 이어받은 민족무예답게 극성(劇性)을 부여했다.

중앙에 놓인 큰 북을 두드린다. 진격의 북소리다. '통영칼춤'이 외적 형식미와 내적 흥취성을 두루 갖추었다면 ‘통영북춤’은 춤새가 곱고, 섬세하다. 이 춤은 원무(4인)와 협무(12인)로 구성된다. 이번 무대에서는 장영미, 박준희, 백정순, 김현애가 4인무로 췄다. 승전의 기원성이 춤에 아롱진다. 4명이 횡으로 두 팔 벌려 출 때 평화의 기운 가득하다. 승리 소리, 만세 소리가 기쁨을 부른다.

'통영북춤'

무대 우측에 이봉주의 스승 최종실 명인과 연주자들이 위치하고 있다. 장고 소리와 함께 이봉주의 소고 걸음이 무대를 천천히 가른다. 악과 무가 하나된다. 태평소 소리가 이를 알린다. 평화로웠던 원래의 봄에서 그토록 기원했던 평화의 봄을 다시 맞고, 희망의 봄을 다시 부른다. 그 봄의 이름이 ‘최종실류 소고춤’이 된다. 빨라지는 장단에 흥취가 무르익는다. 박수소리 높다.

이봉주, '최종실류 소고춤'

이봉주의 이번 춤판은 국가무형유산 승전무의 통영칼춤과 통영북춤, 승전무 보유자 원향 엄옥자 선생의 통영기방입춤, 엄옥자류 수건춤, 최종실류 소고춤, 민족무예 날섬길 뫄한뭐루가 하나 돼 서사(敍事・narrative)를 이루었다. 이를 완성한 것은 각 춤이 뿜어내는 춤성이다. 양천에 온 이순신을 맞은 관객들의 표정에서 충분히 읽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주영(무용평론가・고려대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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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댄스TV= 이주영(무용칼럼니스트)-이주영의 무용읽기_이봉주의 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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