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영의 무용읽기_홍은주의 ‘IN & OUT’

철학적 탐미 가득한 ‘넥타이 살풀이춤’
안과 밖, 비움과 채움의 현대적 조형성 돋보여
홍은주의 ‘IN & OUT’

이주영 칼럼니스트 승인 2024.03.31 13:33 | 최종 수정 2024.03.31 19:33 의견 0

[댄스TV=이주영 무용평론가] 춤은 공연예술에서 미학의 정점에 있다. 은유(隱喩)라는 미적 심상이 단단히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메타포(metaphor)의 가치 발현이다. 선택의 연속인 삶을 자신만의 춤언어와 철학으로 안무한 홍은주의 ‘IN & OUT’. 2024년 3월 21일, 포스트극장에서의 이번 공연은 메타포와 알레고리(allegory)를 넘나들었다. 이성과 감성의 은유를 모두 관통했다. 근간에 접한 창작무용 중 단연 으뜸이다.

홍은주 안무 ‘IN & OUT’

(사)리을무용단 단장, 울산시립무용단 예술감독을 역임한 댄스플랜 홍은주무용단 대표인 홍은주 안무자는 이번 작품에서 몇 가지 키워드를 상정했다. ‘삶’, ‘시각’, ‘선택’, ‘경계’ 등이다. 삶에 대한 관조와 응시가 묻어난다. 그 시선은 춤의 바다에 깊게 스며들어 침잠된 메시지를 수면 위로 너끈히 길어올렸다. ‘넥타이 살풀이춤’이다. 전통 살풀이춤을 모티브로 한 이 작품은 삶에서 시시각각 변하는 행동과 선택이라는 경계의 접점을 치밀하게 접근해 풍요롭게 풀어냈다. 살풀이춤의 핵심 오브제인 수건이 넥타이로 전환됐다는 일차적 변용만으로 말하기엔 부족하다. 다양한 매듭과 컬러로 옷매무새의 정점을 찍는 기능적 측면을 넘어 살풀이춤이 지닌 풀림과 맺힘이라는 양가성을 현대적으로 담아냈다. 넥타이라는 물성이 작품을 통해 감성으로 치환됐다. 혜안과 통찰력이 돋보인다. 기저의 철학성 때문이다.

‘IN & OUT’은 안과 밖(공간), 속과 겉(심리), 비움과 채움(인생)을 담지한다. 작품의 풍요로움은 논리와 감각의 직조가 교집합을 이룰 때 상승작용이 일어난다. 그런 면에서 공간의 개념뿐 아니라 심리와 인생까지 넘나드는 깊이는 박수 받을 만하다. 작품은 총 3장으로 구성된다. 행도, 금도, 심도다. 경계의 이중적 자아를 담은 ‘행도’, 경계에서 드러나는 욕망의 ‘금도’, 씻김과 풀이의 ‘심도’다. 아(我)와 비아(非我)간 투쟁의 연속인 삶. 다시 한번 플라톤의 이데아(idea)를 떠올리게 한다. 이데아의 의미처럼 본질과 진실이 중요하다.

‘IN & OUT’(홍은주, 박종원)

공연 전, 무대 중앙에 사각형의 흰 천이 깔렸다. 비움과 채움의 여정이 시작된다. 천 뒤에 홍은주가 무릎을 나지막이 꿇고, 넥타이를 매고 있다. 연속 가뿐 숨을 내뱉는다. 중앙 일자형 종대 불빛을 따라 나선다. 옅은 구음이 발자욱을 새긴다. 발로 천을 나이테 좁히듯 모은다. 소우주다.

복면을 쓴 무용수(박종원)가 등장한다. 홍은주와 박종원의 조응(照應)은 의도와 비의도의 경계적 줄타기다. 아와 비아, 자아와 타자의 ‘경계 바라보기’이자 ‘경계 넘기’다. 중력과 무중력을 넘나드는 공간의 염탐성이 숙제를 풀듯 답을 하나씩 써 내려간다. 철학적 탐미다.

여자 무용수 세 명이 넥타이를 매고 날렵하게 들어온다. 한 명을 둔 채 빠져나간다. 의상을 바꿔입은 세 명이 무언가를 찾듯 연신 공간에 손을 들여놓기 시작한다. 빠른 현(絃) 가락이 움직임에 가속도를 붙인다. 거친 현의 울림과 큰 울림이 자유함을 부여한다. 놀이성 좋다. 승화의 미덕 높다.

홍은주의 ‘IN & OUT’

홍은주가 등장한다. “너무 기뻐서 황홀하게 만들었어...”. 독백이다. 파도소리 부서진다. 무대 위 파란색 테두리를 따라 대사와 함께 움직인다. 홍은주의 말은 세 명의 춤이 된다. 춤의 대화다.

‘in & out’의 오감이 반복된다. 형상성 강하다. 무용수들이 요일을 반복해서 외친다. 두 손을 귀에 댄 채 파워풀한 움직임을 보인다. 흰 의상을 입은 홍은주의 내적 외침이 잔잔한 음악과 함께 발산된다. 타악소리와 함께 모두의 발구름이 커진다. 세 명이 춤 출 때 홍은주가 무대 테두리의 파란색 줄을 힘을 다해 떼네기 시작한다. 경계의 무너짐이자 새로운 이음이다. 네 명이 각자의 넥타이를 푼다. “덩 기덕 쿵...” 소리가 전율을 준다. 자유롭다. 편안하다. 춤이다. ‘풀림의 춤’이다.

댄스플랜 홍은주무용단 대표 홍은주

2023년 ‘사이의 온도’ 듀엣 무대에서 단초를 마련해 2024년 ‘내일을 여는 춤’ 무대에서 만개한 이번 작품은 홍은주 안무자의 춤 미래를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내일은 오늘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이주영(무용평론가・고려대 문학박사)

사진 : 박상윤

7dancetv@naver.com
Copyright(C)DANCETV, All rights reserved.
저작권자(c)댄스티브이,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출처/댄스TV= 이주영(무용칼럼니스트)-이주영의 무용읽기_홍은주의 ‘IN & OUT’

저작권자 ⓒ 댄스TV ,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