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영의 무용읽기_피의 결혼

한국적 컨템포러리 댄스의 시금석(試金石)
김복희무용단 우수레퍼토리, ‘피의 결혼’

이주영 칼럼니스트 승인 2024.04.27 22:14 | 최종 수정 2024.04.28 16:00 의견 0

[댄스TV=이주영 무용평론가] 예술은 유구하다. 현재성이 영원성으로 이어지게 하는 힘이 예술에 있기 때문이다. 신체언어가 지닌 고유한 춤적 질감이 기호화되는 무용이라면 두말할 나위없다. 지구의 자전과 공전이라는 천체성이 우주의 원리에 기반한다면 춤의 정체성은 철학이다. 이유있는 철학, 사유하는 철학, 공감하는 철학이 요구된다. 세 요소를 직조한 무대가 있었다. 2024년 3월 9~10일(필자 3월 10일 관람), 아르코예술극장에서 열린 김복희무용단 ‘피의 결혼’이다. 김복희 안무, 손관중 예술감독이 주축이 된 이번 공연은 ‘한국적 컨템포러리 댄스의 시금석(試金石)’이라고 할 수 있다. 1971년 명동예술극장에서의 ‘법열의 시’를 시작으로 2022년 한국-콜롬비아, 한국-룩셈부르크 수교60주년 초청공연에서의 ‘우담바라’, ‘피의 결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의 70여 편 작품이 이를 증명한다. 김복희무용단 우수레퍼토리 시리즈 무대인 이번 무대를 통해 양질의 콘텐츠가 지닌 생명력, 확장성에 대해 곱씹어 볼 수 있었다.

김복희무용단, '피의 결혼'

공연은 두 작품으로 구성된다. 2006년 초연작 ‘다시 새를 날리는 이유’와 1997년 초연작 ‘피의 결혼’이다. 한국성과 현대성의 공존을 보여준 두 작품은 이날 아르코예술극장 무대를 통해 시공간을 유영했다. 유영의 결과는 춤철학의 동시대적 가치다. 전통춤이 전통예술의 수용과 확장이라는 고민이 있듯 현대무용 또한 비슷한 고민을 안고 산다. 하지만 결은 차이가 있다. 그 간극을 정교하게 예술적으로 채웠다는 측면에서 이 작품은 유의미하다.

'다시 새를 날리는 이유'(문지애)
'피의 결혼'(최재혁)

공연이 시작되면, 텅빈 무대에 의자가 놓여 있다. 여자 무용수가 앉아 있다. 탈을 쓴 무용수들이 등장하며, 작품 ‘다시 새를 날리는 이유’가 전개된다. 부용초 숲에 사는 여인, 새가 되어 숲으로 날아간 남자, 소녀의 삼각 관계가 서사의 축이 된다. 삶이 세월 속에서 다양한 지층을 이뤄 나간다. 허물 수 없는 높은 벽을 안고 사는 모습, 차가운 바람을 마주하는 회한과 애욕은 환희와 눈물을 오간다. ‘참(眞)’이라는 한 음절을 서사와 서정의 교집합과 합집합으로 교차시키는 장면들은 긴장감을 불러 일으키고, 때론 이완시킨다. 다시 새를 날리는 이유에 대해 문답한 시간이다.

'다시 새를 날리는 이유'(권재헌)
'다시 새를 날리는 이유'

2부 ‘피의 결혼’ 원전은 스페인의 시인이자 극작가인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Federico García Lorca, 1899~1936)의 3대 비극 중 첫 번째 작품인 ‘피의 결혼(Bodas de Sangre)’이다. 결혼식 날, 옛 연인과 도망친 신부로 인해 피로 물드는 결혼식을 격정적이면서도 시적으로 그리고 있다. 거대한 운명의 힘에 의해 파국을 맞이하는 비극의 정수다. 원전에 기반하되 춤적 메소드와 해석, 구현은 독창적이다. 주인공이 돼 식장을 나서야 할 신부의 길을 은유적으로 때론 내러티브하게 장치했다.

'피의 결혼'(이지희)

여자 무용수가 두 개의 가면을 들고 춤추며 시작하는 이 작품은 여자 주인공이 들려주는 분노, 슬픔 등 다층적인 감정 양상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여운있게 마무리되는 끝장면에서는 숨을 다시 한번 크게 내쉬게 한다.

이번 공연은 가면(탈)을 오브제로 적극 활용한 내면과 외면을 오가는 심적 상태의 반영, 페르소나(persona)적 상상과 실체의 구현이 인상깊다. 또한 결혼, 장례 등 삶의 중요한 전기를 마련하는 포인트를 담아 공감대를 높였다. 무엇보다 이 작품을 통해 거쳐간 많은 무용가들의 세월 속 예술을 반추하고, 미래로 나아가는 춤을 현재에 보여준 것은 미덕 중 하나다. 출중한 춤과 연기, 감정 표현을 통해 작품에 생명력을 더해준 무용수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 주인공들은 문지애, 박종현, 이지희, 김은정, 이예진, 최재혁, 강동희, 권민찬, 차주연, 정윤정, 이은호, 권재헌, 윤혁중, 금나현, 최한슬, 라혜련, 양진석 등이다. 우수레퍼토리는 세월을 거스리지 않는다. 아니 넘어선다. 관련 기관에서도 더 깊은 관심과 지원을 해야하는 이유다.

'다시 새를 날리는 이유'(박종현)

이주영(무용평론가・고려대 문학박사)

사진 : B.H.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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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댄스TV= 이주영(무용칼럼니스트)-이주영의 무용읽기_피의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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