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스TV=이주영 무용평론가] 한국춤이 지닌 내재성 중 서정미의 춤적 발현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춤의 특성과 춤추는 이의 성정이 만날 때 극대화된다. 한국춤에 대한 바른 전승과 올곧은 방향을 추구하는 한국무동인회(박시종 예술감독 및 안무자)는 한국적 정서를 서정미있게 담아내 ‘그리는 춤’의 면모까지 보여줬다. 서정(敍情)에 서사(敍事)를 입혀 춤의 풍경을 이룬 ‘박정선의 춤, 緣’이 2024년 2월 17일, 포스트극장에서 진행됐다. 지난 2022년 ‘청청청(淸靑請)’ 무대에서 보여준 한국무동인회(韓國舞同人會)의 맑고 푸른 청함의 여운같이 이번 무대 또한 예술단체가 지닌 춤결과 숨결을 직조해 한국춤이란 바다를 유영했다.
‘박정선의 춤, 緣’의 주인공, 박정선은 현재 한국무동인회 및 박시종무용단 회장을 맡고 있다. 12살에 한국무용을 시작한 그는 승무 이수자로 숙명여자대학교 무용학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당시 스승은 故 정재만 교수다. 삼성무용단 주역 활동이 말해주듯 전통과 창작을 넘나든다. 제33회 서울무용제 여자연기상, 제18회 KBS 국악대경연 무용부문 장원 수상 등 다수의 상을 수상한 역량있는 무용가다. 이러한 바탕에는 스승 박시종과의 30여 년을 넘어선 끈끈한 사제의 인연이 자리잡고 있다. 공연 출연자들 또한 박정선과 오랜 인연을 맺고 있다. 공연 타이틀 ‘緣’이 주는 인연의 미덕은 세월 속 삶의 동행으로 찬연하다. 미송 박시종의 예술감독 및 연출, 박정선의 재구성이 만난 여섯 빛깔 춤 마디는 연(緣)을 오마주(hommage)했다.
공연이 시작되면, 5명(박정선, 송효산, 이세이, 김태희, 허이진)이 정중한 예를 올린다. 한성준-한영숙-박재희로 이어지는 ‘태평무’다. 무대 중앙에 위치한 박정선을 중심으로 춤꽃을 피워낸다. ‘연’이 ‘태평’을 만난다. 무향(舞香) 가득하다. 장단 변화에 따른 춤사위, 극장 공간 운용을 극대화 한 구성미가 돋보인다. 전통의 두터운 지층에 춤나이테를 하나 더 그려낸 시간이다.
무대 왼쪽 후방에 학(전건호)이 위치하고 있다. 부채를 들고서 꽃(남하연)을 피워 나간다. 꽃과 새의 대화가 이어진다. 부채춤 ‘화조(花鳥)’가 이루어 낸 ‘조화(調和)’다. 산뜻하고 잔잔한 여운이 스며든다. 박시종 안무의 이 작품은 꽃과 새를 통해 자연을 읊고, 꽃(여인)을 통해 서정적 아름다움을 탐미적으로 보여줬다.
깊은 구음이 춤을 부른다. 춤이 화답한다. 김지성이 춘 ‘진주교방굿거리춤’이다. 전통과 창작을 넘나드는 춤꾼 김지성은 섬세한 손놀림, 교방성 등을 명징하게 드러냈다. 소고의 맑은 두드림으로 마무리 된다.
현의 울림속에 흰 의상을 입은 박정선이 춤을 그리기 시작한다. 서정성 강한 음악과 어우러진 춤의 노래가 귓전을 울린다. 시선을 부여잡다. 삭힌 슬픔, 불어오는 그리움. 연의 노래이자 연의 춤이다. 잔잔함에 스며든 울림 큰 춤적 대화다. 달과 여인의 대화이자 때론 독백인 박시종 안무의 ‘월하(月下)’는 호소력 짙게 한국여인의 아름다운 자태를 달빛속에서 길어올렸다.
염원의 춤이 웅장한 사운드와 함께 시작된다. '대바라춤'의 서막이다. 박정한의 양손에 든 바라의 마찰음이 공간에 퍼져 나간다. 큰 움직임과 작은 움직임의 교차가 소리와 춤을 동여맨다. 바라춤이 지닌 자비와 덕이 풍겨내는 정화의 울림이다.
피날레는 박시종 안무 ‘춤아리랑’이 장식했다. ‘아리랑 살풀이’인 이 작품은 서사의 응축인 ‘아리랑’에 대한 헌무(獻舞)라 할 수 있다. 모든 이에게 바치는 진혼의 노래다. 수렴과 확산이란 양가성을 균형감있게 담아내 삶의 줄기인 인연을 소중하게 끌어안았다. 하늘의 뜻인 천무(天舞), 땅의 정기인 지무(地舞), 인간의 마음인 인무(人舞)가 융합돼 삶을 반추한다. 미래를 다시 연다. 천지인(天地人)의 실체와 이면을 아리랑에 수용해 풀어 낸 수작(秀作)이다. 작품을 확장해 K-Dance의 브랜드 콘텐츠로 이어나가도 좋을 듯 하다.
6명의 군무진이 정지 상태에 있다. 느린 아리랑 소리에 김지성의 움직임이 천천히 일렁인다. 세월을 보듬는다. 삶을 담는다. 아리랑이 살풀이 소리에 매달려 있다. 아리랑 계단을 오른다. 짧은 수건에 매달린 영원한 세월, 아리랑이라 불리기에 족하다. 그 이름이 춤으로 드러난다. 높아지는 사운드와 군무의 대결 속에서 박정선이 무대 우측에서 등장한다. 느릿한 선율과 춤이 만나 아리랑의 힘을 증폭시킨다. 천・지・인으로 세상을 연다. 슬픔의 정한 가득해진 가운데 박정선이 천천히 수건을 들어올린다. 아리랑의 미학성이 태산에 다다른다. 대지같이, 어머니같이 끌어안는 그 마음을 담은 솔로춤이 경이롭다. 8명(전건호, 김지성, 윤미라, 남하연, 김민화, 송효산, 이세이, 김태희)의 군무진이 박정선과 대칭을 이룬다. 삶의 이질감이 동질감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어우러짐’, ‘하나’라는 이름을 호명한다. 다시 느릿하게 퍼지는 아리랑 소리에 춤이 여울진다. ‘춤아리랑’이다. ‘아리랑 살풀이’다.
시적 춤 언어가 각 작품에 투영된 이번 무대는 한국적 정서와 서정에 기반해 춤적 서사성까지 이끌어 낸 춤의 인연이었다. 緣의 향기 가득하다.
이주영(무용평론가・고려대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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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댄스TV= 이주영(무용칼럼니스트)-이주영의 무용읽기_박정선의 춤 ‘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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