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영의 무용읽기_수건춤 100년

수건 길이는 달라도 ‘춤 길이’는 같음을 보여주다
‘수건춤’이란 하나의 주제로 집약된 전통춤 축제
‘2024 대한민국전통춤문화제, 수건춤 100년’

이주영 칼럼니스트 승인 2024.03.05 13:21 | 최종 수정 2024.03.05 16:31 의견 0

[댄스TV=이주영 무용평론가] ‘수건춤’. 전통춤의 대표 춤이다. 일상에서나 무대에서나 보조재를 넘어 선 필수재로 자리매김한 것이 수건이다. 살풀이춤은 원래 수건춤 등으로 지칭됐다. 1903년 한성준(1874~1942)이 극장공연에서 살풀이란 말을 사용하면서 ‘살풀이춤’으로 명명된다. 수건춤은 긴 역사속에서 한국전통춤의 얼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춤의 오브제로 사용되는 것으로는 부채, 칼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수건은 미적 세계를 극대화하고, 서사성 발현 도구로 안성맞춤이다. 불교, 무속, 재인, 교방(권번) 등 여러 춤의 갈래와 계통, 지역, 춤 속성 등에 깊게 자리잡고 있는 것이 바로 수건춤이다.

전통성에 뿌리를 두고 전통춤 맥의 보존과 계승, 발전을 도모하고 있는 사단법인 한국전통춤협회(이사장 한혜경)의 ‘2024년 대한민국전통춤문화제’의 주제는 ‘수건춤 100년’이다. 협회는 2013년 창립공연을 시작으로 매해 의미있는 무대로 우리춤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2019년부터는 ‘대한민국전통춤문화제’라는 타이틀로 이어오고 있다. 춤의 축제성 부여는 전통춤의 ‘모음’과 ‘이음’이라는 가치 구현에 기여한다. 또한 ‘함께 나아간다’는 주체적 성격도 지니고 있다. 2024년 2월 23~24일,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펼쳐진 이번 무대는 수건춤 100년이란 과거를 넘어 미래 100년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양일간 총 14작품이 수건춤의 역사를 썼다.

첫째 날 첫 무대는 ‘동초수건춤’이 연다. 전북무형문화재 호남살풀이춤(동초수건춤) 전승교육사 최지원은 김희진, 김보람 등 호남살풀이춤 이수자와 전수자 6명과 함께했다. 무대 중앙 앞쪽에 길게 막이 늘어뜨려져 있다. 화문석 위에 최지원이 위치하고 있다. 막이 서서히 올라간다. 굿거리장단이 매력적인 이 춤은 전라도 지역의 권번 또는 기방에서 추어진 춤이다. 중앙에 7명, 좌우에 각 2명 등의 무용수 배치는 안정적인 구도를 유도해 미장센을 높인다. 입에 수건을 무는 동작 후, 쇠소리와 함께 군무의 균질감이 더해진다. 최지원의 섬세한 춤사위와 군무가 조화롭다. 올려진 막이 다시 내려오며 마무리 된다.

최지원, 최선류 ‘동초수건춤’

화사함 뒤 순백의 춤이 드리워진다. 이매방류 ‘살풀이춤’이다. 비장미의 진수라고 일컬어지는 살풀이춤. 하얀 명주수건에 삶도 춤도 살포시 내려앉는다. 한국전통춤협회 이사이자 한국십이체장고춤보존회 수석부이사장인 박은하는 경륜에 여유를 더한다. 편안하게 춤을 이끌어 가며, 살풀이성을 충분히 담아냈다.

박은하, 이매방류 ‘살풀이춤’

살풀이춤 이수자인 이지은의 김숙자류 ‘도살풀이춤’이 뒤를 잇는다. 약 2미터 가량의 수건을 길게 잡고 있다. 수건은 삶의 고개, 고리가 된다. 경기 무속춤 중 난이도 높길 정평이 난 이 춤을 잘 처리한다. 이지은의 도살풀이춤 공식 첫 무대다.

이지은, 김숙자류 ‘도살풀이춤’

맑은 물소리가 넌지시 교방의 분위기를 알린다. 장단 울림이 춤을 부른다. 중앙(고재현)과 4명의 군무진 배치가 조화롭다. 사안 송화영 교방춤 보존회 회장 고재현의 송화영류 ‘교방입춤’이다. 이 춤은 故 송화영 선생이 1982년 구음 춤판을 펼친 이래 여성 독무로 추어지고 있다. 이 날은 군무의 입체성을 더했다. 짧은 수건을 떨어뜨릴 때 흥취가 오른다. 수건을 다소곳이 가슴에 모으며 마무리 된다.

고재현, 송화영류 ‘교방입춤’

무대에 슬픔이 내려앉다. 수건에 동여매진다. 쌍수건의 흩날림과 다소 무심한 듯 툭툭 털어버리는 춤이 인상깊다. 국가무형문화재와 대전시무형문화재 살풀이춤 이수자인 이정애가 춘 김란류 ‘쌍수건춤’이다. 재인 춤꾼들에 전승된 춤인만큼 담백함과 깔끔함이 묘미다.

이정애, 김란류 ‘쌍수건춤’

한국전통춤협회 이사인 김진원은 이매방류 ‘살풀이춤’을 자신의 스타일을 담아 담담하게 풀어낸다. 이미숙 의정부시무형문화재 경기수건춤 보유자의 솔로춤이 먼저 시작된다. 군무가 뒤를 잇는다. 짧은 수건 꺼내들 때 구음 또한 깊다. 군무진이 춤의 기운을 북돋는다. 밀도있다. 감정의 전이와 고양이 좋다. 한성준-강선영으로 이어지는 ‘경기수건춤’이다.

김진원, 이매방류 ‘살풀이춤’
이미숙, ‘경기수건춤’

첫째 날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둘째 날 수건춤 무대가 펼쳐진다. 첫 문은 달구벌입춤보존회 회장이자 경희대학교 무용학부 윤미라 교수가 연다. 최희선류 ‘달구벌입춤’, 대구 달성권번의 박지홍-최희선으로 이어지는 교방놀이 춤이다. 산뜻한 입춤이 병풍 앞에서 이루어진다. 예악당의 널찍한 공간을 안방같이 모아주는 효과를 냈다. 꺼내든 수건 사이로 춤향이 더해진다. 전반부의 여성적인 수건춤과 후반부의 소고놀이 허튼춤이 대조적이되 조화롭다. 이 춤의 매력중 하나다. 마지막 수건춤으로 마무리 한다. 무형유산(無形遺産)적 가치가 높다.

윤미라, 최희선류 ‘달구벌입춤'

구음이 무대에 깔린다. 수건의 들어올림과 동시에 춤이 어우러진다. 한 음 한 음 밟아간다. 정교하다. 단단하다. 대전광역시무형문화재 살풀이춤 전승교육사 채향순의 김란류 ‘살풀이춤’에 대한 단상이다. 단아함 속 우아함의 겸비는 이 춤이 지닌 미덕이다.

채향순, 김란류 ‘살풀이춤’

세월을 머금은 듯 느릿하게 수건이 흩날린다. 선운임이조춤 보존회 권영심 회장의 임이조류 ‘교방살풀이춤’. 1978년 초연작이다. 수건을 통한 이완과 긴장의 교차가 감지된다. 춤 후반부 양손으로 부여잡은 수건에 신명이 아롱지다. ‘쾌(快)’다.

권영심, 임이조류 ‘교방살풀이춤’

1993년 강선영 무용 55주년 기념무대에서 초연된 ‘즉흥무’. 한성준-강선영으로 이어지는 한과 조응하는 포용성을 지닌 맵시있는 춤이다. 이날은 전 대전대학교 임현선 교수의 무대로 선보였다. 짧은 수건만큼 가볍고 산뜻하게 출발한다. 음악에 노닌다. 경쾌하다. 기본춤인 입춤의 성정을 연륜을 담아 풀어냈다.

임현선, 강선영류 ‘즉흥무’

현(絃)의 울림 속에서 세월을 낚기 시작한다. 짙은 현마디처럼 감정도 깊어진다. 청어람우리춤연구회 문숙경 회장의 솔로춤 후 군무진 나와 춤깃을 넓힌다. 9명이 동시에 수건 떨어뜨릴 때 정점을 이룬다. 비움과 채움이 교차된 순간이다. 여백미와 시리도록 슬픈 정제미가 왜 이매방류 ‘살풀이춤’인지를 증명한 시간이다.

문숙경, 이매방류 ‘살풀이춤’

마음을 읽어 춤을 그린다. 드라마성 강하다. 김경란류 ‘논개별곡’은 창안된 춤이다. 논개제가 그 출발이다. 김수악 선생의 유작을 받들어 김경란이 창작성을 더했다. 수건을 떨어뜨린 후 춤의 독백은 울림이 크다. 마지막에 수건을 단단히 부여잡을 때 논개의 결기까지 느껴진다. 25현금의 연주는 춤의 긴장감을 더하는 역할을 했다.

김경란, 김경란류 ‘논개별곡’

9명이 하나 돼 춤의 합을 이뤄낸다. 시나위의 힘을 부여한다. 경기도무형문화재 경기시나위춤 예능보유자 이정희의 김숙자류 ‘도살풀이춤’. 경기무속 특유의 호흡과 춤사위, 행복을 기원하는 염원성 강한 춤의 묵직함이 공간을 넘나든다. 긴 수건을 어깨에 메고 서서히 무대 밖으로 나간다. 영원성이다.

이정희, 김숙자류 ‘도살풀이춤’

수건의 길이는 달라도 춤의 길이는 같음을 보여준 ‘수건춤 100년’. 그 이름이 바로 ‘전통춤’이다. (사)한국전통춤협회의 이번 무대는 단체가 지향하는 우리춤의 계승과 발전, 저변확대, 한류 속 한국춤 고양이라는 다양한 면모를 보여줬다. 주제가 있는 이런 무대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전통춤맥을 탄탄히 이어나가길 기대한다.

이주영(무용평론가・고려대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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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댄스TV= 이주영(무용칼럼니스트)-이주영의 무용읽기_수건춤 1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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