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영의 무용읽기_윤미라무용단 춤・작가전

철학에 기반한 안무, 춤적 개성과 창작성을 높이다
윤미라무용단의 ‘춤・작가전’

이주영 칼럼니스트 승인 2023.12.31 14:06 | 최종 수정 2023.12.31 14:13 의견 0

[댄스TV=이주영 무용평론가] 강수인, 정유림, 이혜인, 천성은, 강지혜의 ‘춤・작가전’은 춤작가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한국창작춤 3편, 전통춤 1편이 함께한 2023 윤미라무용단의 춤시리즈 ‘춤・작가전’은 각 작품이 지닌 춤개성을 무대에 드리웠다. 2023년 12월 9일(토) 양재 M극장은 1, 2층 자리를 꽉 메운 열기만큼이나 작가정신을 구현하기 위한 안무자와 출연자들의 열정이 넘쳤다.

첫 문은 강수인 안무의 ‘Ánimal Fàrm ver.2’ 가 연다. 경희대 강사인 강수인은 ‘방랑’, ‘생zone’, ‘주지화’, ‘완전하지 못한 자’, ‘사공의 섬’, ‘Ánimal Fàrm’ 등 다수의 작품을 안무했다. 이번 작품은 영국의 소설가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소설 ‘동물농장(Animal Farm)’에서 착안했다. 우화 형식의 이 소설은 러시아 혁명과 스탈린의 배신에 바탕을 두고 있다. 소설에서는 존스 농장의 동물들이 인간의 수탈을 참지 못해 혁명을 일으킨다. 인간의 착취가 없는 이상사회를 건설하고자 한다. 그러나 돼지의 독재체제가 강화되면서 혁명 이전보다 더 심각한 전체주의적 공포사회로 바뀐다. 이러한 이상사회의 전체주의화는 권력을 장악한 돼지 계급의 타락 때문이다. 동물농장의 돼지들은 권력을 장악해 가는 과정에서 점차 전체주의적 특권계급으로 변모한다는 내용이다. 안무자는 인간사의 ‘약육강식(弱肉强食)’에 저항하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다. 약한 자를 동물에 비유한다. 인간 외 다른 모든 것들은 지상낙원을 찾아간다. ‘약한 자들의 지상낙원’은 이 작품이 추구하는 핵심 명제다.

강수인 안무, ‘Ánimal Fàrm ver.2’

공연이 시작되면 동물 캐릭터 무용수들의 등장한다. 각 캐릭터보다는 연합을 통해 수렴시키는 전개 방식을 취했다. 갈등보다는 에너지의 파동이 작품을 풀어내는 원천으로 작용했다. 류지수, 김미소, 김시형, 박효빈, 최지유, 강수인이 출연한 이 작품은 편안하게 읽힌 작품이다. 설득력 높다. 공감대 크다. 특히 시점(視點) 변화를 통해 관찰과 객관성을 동시에 높인 것은 고무적이다. 동물을 통한 우화성, 놀이성을 춤적 조형성으로 연결시킨 점은 작품의 성과 중 하나다. 후반부 음악적 경쾌함 속 유유한 동화성은 지상낙원을 풍요롭고 재치있게 담아내는 역할을 했다. 다양한 오브제 활용은 안무의 입체감을 높였다. ‘Ánimal Fàrm’ 3탄도 기다려진다.

창작 공간에서 전통 공간으로 이동한다. 단순간에 몰입도가 높아진다. 경희대학교 일반대학원 박사과정에 있는 정유림의 최희선류 ‘달구벌입춤’이다. 좋은 춤태와 깨끗한 이미지가 춤의 성정으로 작용해 장단과 가락속을 거닌다. 대구 달성권번의 명인 박지홍(1889~1959)으로 시작해 최희선(1929~2010)으로 이어지는 이 춤은 달구벌입춤보존회(회장 윤미라)를 통해 전승의 길을 열어가고 있다. 전반부의 수건춤과 후반부의 소고놀이 허튼춤이 조화롭다. 우아하다.

정유림의 최희선류 ‘달구벌입춤’

파도소리에 양손에 든 부채 움직임이 밀도를 높여간다. 몰아(沒我)와 물아(物我)를 생성, 변주시킨 작품이다. 이혜인, 천성은의 안무와 출연작 ‘학이가’. ‘학이가’는 서원을 창시한 조선의 학자이자 문신인 주세붕(1495~1554)의 시조다. 유학에서 말하는 공부의 목적은 도학(道學)이다. 안무자들은 학문의 학과 두 마리 학(鶴)을 잇댔다. 그 잇댐은 새소리가 내 몸을 감싸고, 때론 자유로움을 동경한다. 높이 날기를, 또한 바람이 멈출 때까지 날아 내려가기도 한다. 지성적인 안무다.

이혜인, 천성은 안무, ‘학이가’

윤미라무용단 대표를 맡고 있는 강지혜는 ‘사과’, ‘이방인’, ‘홀로추는 춤’, ‘숭고한 입맞춤’, ‘나를보다’ 등 다수의 안무작을 낸 무용가다. 최지원, 이화연, 김민아, 변지원, 신애린, 이진아, 이현서, 추한율, 이채연 등이 작품 ‘氷:빙’에 함께했다. 기후변화는 인류의 문제 중 하나다. 생태계를 교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해양 쓰레기 배출은 바다를 파괴한다. 바다가 병들어 간다. 생명의 근원이 무너질 수 있는 상황이다. 안무자는 환경, 트렌디한 이슈 등을 선점해 지연과 인간의 공존이란 숭고한 길을 춤으로 탐색했다. 화두는 답을 열고 푸는 실마리가 된다. 춤예술이 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무용의 사회학적 관점에서도 긴요한 지점 중 하나다.

강지혜 안무, ‘氷:빙’

공연이 시작되면, 무대 왼쪽에 봉지를 든 물고기가 시선을 끈다. 오른쪽 군무와의 대화가 이어진다. 천천히 유영하는 춤들이 묘한 미적 충돌을 일으킨다. 관조와 응시다. 세찬 빗소리에 춤비가 여울진다. 솔로춤은 여유있다. 사이렌 소리속에 여러 빛깔의 비닐봉지가 무대에 쌓여져 간다. 세찬 움직임 이후, 파도소리와 어우러진 군무가 주목도를 높인다. 작품 ‘氷:빙’은 얼고 녹는 얼음의 속성이 바다와 자연스럽게 호응된다. 주제 의식을 담고 있다.

총 4작품으로 진행된 이번 ‘춤・작가전’은 춤적 개성과 창작성을 발현한 무대다. 전통춤을 제외한 세 작품 모두 적극적인 오브제(objet)의 활용이 있었고, 철학에 기반한 안무를 했다는 점은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2024년 ‘춤・작가전’이 기대되는 이유다.

이주영(무용평론가・고려대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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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댄스TV= 이주영(무용칼럼니스트)-이주영의 무용읽기_윤미라무용단 춤・작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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