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영의 무용읽기_만.가(滿.歌)

김소희 명창 소리에 춤이 얹히다
장유경의 춤, ‘만.가(滿.歌)’

이주영 칼럼니스트 승인 2023.12.30 17:05 | 최종 수정 2023.12.31 12:03 의견 0

[댄스TV=이주영 무용평론가] 소리가 춤을 부르다. 가득찼다. 만가(滿歌)다. 소리 자체만으로 예술성이 넘친다. 여기에 춤이 얹히니 배가 된다. 장유경무용단이 마련한 ‘만.가(滿.歌)’는 만정 김소희(1917~1995) 선생의 소리에 춤이 더해져 예술적 충만함을 무대에서 피워냈다. 대구문화예술진흥원 지원사업 선정작으로 진행된 이번 무대는 소리와 춤이라는 이체(異體)를 동체(同體)로 만든 의미있는 무대였다. 김소희 명창의 소리에 대한 오마주(hommage)로 춤을 통한 헌정의 시간으로 부족함이 없다.

장유경무용단의 ‘만.가(滿.歌)’

본 공연 전, 오프닝 격으로 ‘선살풀이춤’이 무대를 연다. 장유경 교수에 의해 2003년도에 초연됐다. 2019년에 재구성돼 대구, 서울 등 여러 곳에서 선보인 춤이다. 이날 무대에서는 ‘선살풀이춤’을 공부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군무로 하나 돼 춤의 위용을 드러냈다. 군무가 주는 숭고미가 상당하다. 문화유산적 가치도 큰 작품으로 전승과 창조적 계승으로도 이어져야 할 레퍼토리라 할 수 있다.

'선살풀이춤'

응축된 소리에 하나가 된다. 1장 ‘「뱃노래」 그렇게 세상을 춤추다’가 파도 소리에 실려 나간다. 가슴을 움켜잡는 소리에 서서히 동작이 얹힌다. “어기여차...”. 출항이다. 만선(滿船)이 오는 듯 하다. 중심을 잡아주는 발레 센타와 유연한 폴드브라(port de bras)가 시선을 끈다. 좌우 군무가 이를 단단히 받쳐준다. 심청가 중 ‘뱃노래’로 ‘떠나가는 배’로 명명되기도 한 소리다. 세상을 향해 춤추는 이 노래는 춤의 만가를 자연스럽게 길어 올렸다.

장유경 안무, ‘만.가(滿.歌)’

새들이 날아든다. 김소희 ‘새타령’에 기반한 춤, 2장 ‘「새」 가락이 넘실거리다’이다. “새가 날아든다....”. 소리에 경쾌한 군무와 솔리스트(편봉화)의 우아함이 매달려 있다. 새들의 날아듬 속엔 슬픔과 아픔, 한도 같이 날아든다. 여기에 멈추지 않는다. 슬픔은 흥으로 치환된다. 흥겨움 속 구슬픔이란 결국 세상을 향한 독백이지 않는가? 이 작품은 전반적으로 향토성, 자연성 짙다. 의상, 장신구도 새를 형상화 해 움직임과 톤을 자연스레 맞춰 나갔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김용철이 세월을 짊어진다. 큰 봇짐의 무게가 무대에 내려 앉는다. 삶을 위로한다. 3장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는 스밈의 음악, 스밈의 춤이라 할 수 있다. 메나리제 ‘상주아리랑’의 소리 질감이 춤에 스며든다. 삶의 나이테를 닮듯 세트가 무대 공간에 내려온다. 고음의 아리랑이 깊게 배기 시작한다. 이별의 정한이 발자국 따라 움직인다. 정은혜의 소리, 이준모의 움직임도 감정선을 자극했다.

‘만.가(滿.歌)’

방아소리가 흥겹다. 4장 ‘「방아」 장단으로 노래하다’는 이처럼 장단이 노래가 되고, 춤이 됐다. 나무상자 위에 올라간 김현태 등 남자무용수들의 움직임엔 해학성까지 담지 돼 ‘방아타령’의 매력을 발산한다. 역동적이되 여유로운 움직임 구현은 장유경무용단 남자 단원들의 자산이다.

‘만.가(滿.歌)’

장유경의 춤에 정은혜의 소리로 김소희의 구음(口音)이 무대를 채워간다. 5장 ‘「입」 입소리에 춤을 얹다’는 이처럼 경이롭기까지 한 명창의 구음에 다른 질감의 춤이 더해져 ‘입소리’가 ‘춤소리’가 됐다. 춤을 통해 보이는 소리를 마주한 행복한 시간이다. 심연한 울림 속에 장유경의 춤이 시작된다. 소리와 춤이 하나되는 순간이다. 양팔을 벌려 세월을 담는다. 삶을 담는다. 장단, 소리, 선율이 공존하는 가운데 장유경의 독무는 농익다. 허허하되 유유하다. 황토색 수건을 집어 든 장유경의 춤은 삶의 성찰이자 반추다. 고독과 여백이 점철됐다.

명창 김소희의 입소리 음반에 바탕해 충만한 소리, 충만한 춤을 보여준 이번 무대는 소리와 춤의 연결을 통해 춤미학성을 높였다. 연속해서 시도, 확장시켤 본 만하다. 지속적인 지원과 관심이 이어져야 할 것이다. 만가(滿歌)는 가득찬 노래다. 그 속엔 비움도 수줍게 고개를 내민다. 비움과 채움의 양가성까지 알려준 충만한 춤의 소리가 귓전에 여울진다.

‘만.가(滿.歌)’

이주영(무용평론가・고려대 문학박사)

사진_옥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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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댄스TV= 이주영(무용칼럼니스트)-이주영의 무용읽기_만.가(滿.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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