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영의 무용읽기_2023 평남수건춤 ‘한순서의 춤’

전승이란 이름으로 쓴 홀춤의 군무(群舞) 확장 무대
한순서-이주희의 2023 평남수건춤
‘舞・道를 알리는 전승, 한순서의 춤’

이주영 칼럼니스트 승인 2023.10.21 10:37 | 최종 수정 2023.10.21 10:40 의견 0

[댄스TV=이주영 무용평론가] 전승(傳承)은 맥(脈)이다. 춤의 맥은 춤정신의 구현과 춤의 실체로 본연의 가치를 드러낸다. 평남수건춤보존회와 이주희무용단이 주최, 주관한 2023 평남수건춤 무대는 명실상부했다. ‘전승(傳承)’은 이어 받되 공손히 받드는 마음인 ‘공경(恭敬)’이 자리잡지 않는다면 무의미하다. 전통춤은 우리네 삶속에 침잠된 공경의 가치와 맞닿을 때 그 가치가 상승되기 때문이다. 이번 평양수건춤 2023 정기공연 ‘한순서의 춤’은 예도(禮道)를 눅진하게 길어 올렸다. ‘舞・道를 알리는 전승’이라는 타이틀이 주는 힘이 춤으로 치환 돼 무대와 객석을 처음부터 끝까지 팽팽한 밀도로 녹여냈다.

평남무형문화재 제4호 ‘평남수건춤

2023년 9월 22일,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의 이번 무대는 60년간 춤에 매진해 온 명인 한순서의 원숙한 춤 무대이자 다양한 빛깔의 춤맛을 지닌 레퍼토리로 구성됐다. 올해는 평안남도무형문화재 제4호 평남수건춤이 문화재 종목으로 지정된지 5주년이 되는 해여서 그 의미도 한몫했다. 햇수를 넘어선 세월의 궤적 속 춤빛깔은 전통의 가치, 전통춤의 본연성에 미래와 확장이라는 내일의 문을 마주케 했다.

이번 공연은 한순서의 홀춤을 군무(群舞)로 확장해 전승이란 이름을 새롭게 썼다는데 의의가 크다. 대표 춤은 이번 무대가 초연인 ‘오북춤’이다. 군무로의 확장은 단순히 인원수라는 물리적 차원이 아니라 춤의 대형, 구성, 움직임, 표현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하지 않으면 완성이란 탑을 쌓기가 쉽지 않다. 이번 무대에서는 전반적으로 안정감있게 전개하되 독무가 지닌 집중성이 군무가 지닌 입체감에 수용돼 춤 이음의 소리를 들려줬다.

첫 문은 한순서의 독무로 ‘화관무’가 연다. 절제미와 양식미의 춤격에 동적이고 화려한 구성미, 복식미까지 더해진 화관무는 반주에 맞춰 춤의 예를 올렸다. 무・도(舞・道)의 길임을 알린다.

‘화관무’

흑백 장삼을 날리며, 춤이 시작된다. 열림과 닫힘, 상승과 하강, 내면과 외면의 양가성(兩價性)이 2인무를 통해 숨을 내쉰다. 호흡의 주인공은 이주희와 이애현이다. 고깔, 장삼을 벗고 북으로 향하는 모습, 두드림의 고양력은 바닥에 놓힌 장삼을 메고 나갈 때 참았던 숨을 내쉬게 만든다. ‘강태홍류 한순서제 승무’는 피난처인 부산에서 한순서가 스승 강태홍에게 사사했다. 해탈의 경지에 이르기까지의 서사적 구조는 이 춤이 지닌 매력이다. 쌍승무를 통해 각각의 주체가 해탈에 이르게 함으로써 둘이 하나가 되고, 하나가 둘이 될 수 있는 유연성까지 확보했다.

‘ 승무(강태홍류 한순서제)’

남자무용수 1명과 여자무용수 10명의 섬광이 ‘쌍검대무’의 기치를 발한다. 취타의 용고는 쌍검대무의 춤적 질감을 드러내는 선봉장 역할을 한다. 이 춤은 절도 있고, 당당함이 포인트다. 장검의 의연함이 절제된 춤사위와 어떻게 조화되는지가 관건이다. 양서윤을 비롯한 하나된 군무진은 다양한 대형 변화를 안정적으로 처리했다. 춤폭의 활달함은 위엄과 비장함 속 절제된 춤사위를 놓치지 않는다. 한순서의 장검무를 바디로 이주희에 의해 재구성된 쌍검대무는 전국에 산재한 여느 검무 못지않은 개성미를 갖추고 있다.

'쌍검대무’

홀춤인 오북가락의 긴장감을 군무로 확장해 영역 확장을 성공적으로 이끈 ‘오북춤’은 이주희와 8명의 한국문화재재단 예술단이 함께해 상승효과를 냈다. 양쪽으로 막이 열린다. 이주희의 카리스마 있는 두드림이 시작을 알린다. 두드림이 주는 긴장과 이완은 퍼포먼스성까지 가세해 오북춤의 밀도를 높인다. 대한무용협회 2021년도 지정 ‘명작무 쌍검대무’는 개인무 전승에서 ‘오북춤 군무’라는 주춧돌을 성공적으로 놓았다. 장단에 춤이 얹혀진 춤성, 타악성의 시청각적 효과는 대중성과 맞닿을 수 있는 요소를 담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북춤’

5명의 어린이가 제목 ‘알쏭달쏭’처럼 여자와 남자의 모습을 번갈아 가며 등장한다. 춤추는 모습이 앙증맞다. 순간적으로 변하는 남녀의 모습과 그에 따른 동작 변화, 탈춤적 요소는 춤적 재치와 은유를 동시에 제공했다.

평남무형문화재 제4호인 ‘평남수건춤’. 이번 무대는 군무 형식을 통해 이 춤이 지닌 고유성을 증폭시켰다. 중앙에 위치한 한순서를 중심으로 여자 군무진은 상호간 춤적 대화를 나누길 주저하지 않는다. ‘상호텍스성(intertextuality)’ 강하다. 서도의 애절한 선율 속 서사적 구조미를 갖춘 이 춤은 독특한 착복 형식, 발놀음, 상향성 강한 춤사위, 폭넓은 수건사위라는 평남수건춤만이 지닌 내재성을 풍요롭게 객석에 전달했다.

‘평남수건춤’

두드림 강하다. 울림도 그에 비례한다. 이주희의 리드에 따른 8명의 남성 풍물패와의 호흡은 놀이성에 연희성을 더한다. 핵심은 장고의 ‘춤성’이다. 작품 ‘상장고’는 2002년 한순서의 설장고를 이주희가 재해석에 탄생됐다. 20여 년의 세월속에 숙성된 춤맛은 타악성을 넘어선 자유로운 에너지 분출이란 예술적 속성을 드러냈다. 그 자유로움은 조화라는 바탕위에 이루어졌다. 전달력 강하다.

‘상장고’

舞・道를 통해 전승의 가치를 알린 ‘한순서의 춤’은 한순서-이주희로 이어지는 춤길의 힘을 명징하게 보여줬다. 무엇보다 홀춤의 군무로의 확장은 단순한 물리적 변화가 아니라 춤의 연속성, 영속성을 담보할 수 있는 기제로 작용했다. 춤의 예(禮)로 무(舞)와 도(道)를 말한 뜻깊은 전승의 시간이다.

이주영(무용평론가・고려대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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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댄스TV= 이주영(무용칼럼니스트)-이주영의 무용읽기_2023 평남수건춤 ‘한순서의 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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