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영의 무용읽기_걷는다는 것

‘몸’의 본질에 대한 선연한 일깨움
한국소매틱연구원의 ‘걷는다는 것’

이주영 칼럼니스트 승인 2023.07.09 17:18 | 최종 수정 2023.07.17 18:29 의견 0

[댄스TV=이주영 무용평론가] 발을 번갈아 떼다. ‘걸음’, 움직임의 출발이다. 인간은 걸음으로 시작한다. 생명체의 알림이기도 하고,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수단이기도 하다. 인류의 직립보행과도 맞닿아 있다. 인생이란 큰 걸음은 작은 걸음이 이어져 하나를 이루는 걸음의 연속이다. ‘걷는다는 것’(2023.6.27, 금천뮤지컬센터 금천예술극장)이란 무엇인가를 ‘몸’이란 본질적 물음과 움직임을 통해 보여준 한국소매틱연구원(원장 조기숙)의 이번 무대는 몸과 춤, 몸과 삶을 직조해 풀어냈다.

한국소매틱연구원, '걷는다는 것'

이번 공연은 한국소매틱연구원 소마전문가 9기 과정을 공부한 무용수들의 워크숍 성격을 띤다. 이화여대 무용과 석・박사 과정중인 무용수들이다. 워크숍 공연을 표방했지만 예술적 완성도와 춤적 에너지, 춤 철학은 상당했다. 그 기저에 위치한 것이 바로 ‘몸’이다. 몸을 통한 깨달음은 세상을 연결하고, 삶을 연결한다. 국내 무용과에서 테크닉 위주가 아닌 본질적인 몸 사용, 몸이 타자가 아닌 주체가 되는 것에 대한 학습은 부족한 상황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 공연은 포스트 모던댄스 또는 컨템포러리 댄스와 접점을 이룬다는 측면에서 의의가 있다. 소매틱을 그 중심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소매틱(somatic)’은 ‘몸학’을 의미한다. 실존주의 현상학자 토마스 한나(Thomas Hanna)가 제시한 용어다. 한나에 의해 학계에 도입된 소매틱스는 고대 그리스어 ‘소마(soma)’에서 출발한다. 소마는 ‘몸’을 뜻한다. 여기에서의 몸은 물리적 측면에서의 바디(body)가 아닌 총체적인 생명체(the living body in its wholenss)이자 움직임 그 자체다. 소마의 중요성을 환기시킨다. 몸은 통합성의 보고(寶庫)다. 예술지성이 발현되는 출발점이 바로 몸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몸에서 출발하는 무용의 가치는 지대하다고 볼 수 있다. ‘몸이 바로 나’라는 니체의 말을 소환하지 않아도 말이다.

조기숙 안무, '걷는다는 것'

9명의 여자 무용수가 소리지르며 무대에 등장한다. 1명이 그 사이로 들어온다. 객석을 응시한다. “우리는 수억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태어났다.” 나레이션 목소리가 비장하다. 아기 울음소리가 우렁차다. 의상으로 온 몸을 감싼 무용수들의 움직임이 일렁인다. 몸의 시원성까지 느껴진다. 알에서 부화하듯 천천히 긴다. 조금씩 빠르게 길 때도 있다. “수많은 시도 끝에 마침내 섰다.” 나레이션에서 들려오는 음성과 오버랩 돼 한 명이 사선으로 한발씩 걷는다. 위대한 역사다. ‘걷다’에서 ‘걸음’으로 당당히 치환되는 순간이다. 걸음의 다양한 변주가 무대를 누빈다. 때론 비트감 있게 움직인다. 이 공연에서 추구하는 즉흥성, 즉흥춤의 묘미가 몸을 통해 분사되고, 공간을 유영한다. ‘걸음’에 대한 경외심까지 느끼게 하는 순간순간은 서로의 등을 마주하며 함께 걸어가는 모습에서 증폭된다. 혼자 걷기가 아니다. 함께 걷기다. 예술지성이 사회지성으로 이어지는 모습을 목도할 땐 희열감마저 준다. 안고 걷기, 업고 걷기, 홀로 걷기 등 다양한 걷기를 마주할 수 있다. ‘몸성’이 ‘춤성’이 되고, ‘춤성’은 그 이상을 호명한다. 주체로서의 몸이 지닌 몸의 본질에 대한 일깨움이 선연하다.

'걷는다는 것'

한국소매틱연구원 조기숙 원장(이화여대 무용과 교수)는 춤지 ‘이 달의 좌담’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포스트모던에서는 춤추는 몸을 어떻게 보느냐, 그것 자체를 주체로 보는 거예요. 춤추는 몸에서 뭔가를 재현하거나 표현할 필요 없이, 춤추는 몸 자체에 무용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세상을 해석하는 철학이 다 들어있기 때문에 그냥 춤 자체가 의미가 있다는 거예요. 몸에 관한 이해나 몸에 대한 중요성은 누구에게나 다 해당되잖아요. 모두 다 몸을 알고 몸이 착해지고 마음도 건강해지면 이 세상이 정말 변할 거예요. 그래서 다 같이 몸 공부를 하고 춤을 추자는 거죠.” 곱씹어 볼 만한 대목이다.

'걷는다는 것'

무한한 창의성이 들어있는 ‘몸’. 몸에 대한 탐구, 그 탐구의 주체인 무용수가 돼 풀어낸 이번 공연은 걷는다는 것을 통해 몸의 근원성과 확장성을 입증한 무대였다. ‘지금, 여기’의 중요성을 환기시킨 것은 유의미하다. ‘몸’, ‘춤’, ‘삶’이란 삼요소가 교집합되고, 합집합 된 무대다. ‘걷는다는 것’은 걸음과 걷기를 뛰어 넘는다. 출발해야 답이 있다. 실천해야 의미 있다. 무엇보다 몸(soma)에서 출발해 생명력과 자장력이 크다. 다음 발걸음이 기대된다.

이주영(무용평론가・고려대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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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댄스TV= 이주영(무용칼럼니스트)-이주영의 무용읽기_걷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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