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영의 무용읽기_춤의 원류(原流)

춤 原流의 가치를 다시 쓰다
碧史 청아한 기록, ‘춤의 원류(原流)’

이주영 칼럼니스트 승인 2023.04.21 00:10 | 최종 수정 2023.04.21 09:53 의견 0

[댄스TV=이주영 무용평론가] 춤의 가문에서 ‘벽사(碧史)’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정통(正統)’이다. 이는 전통(傳統)을 통해 다져진 뿌리이자 맥(脈)이다. 결국 본줄기나 본래의 바탕을 따지지 않을 수 없다. 원류(原流)란 물음에 답한 공연이 있었다. 벽사춤이 주최하고, 벽사 정재만춤 보존회가 주관한 기획공연 ‘碧史 청아한 기록 - 춤의 원류(原流)’다(2023.3.4, 국립국악원 예약당). 한성준-한영숙-정재만-정용진으로 이어지고 있는 벽사, 벽사류의 춤은 ‘푸른 역사’의 의미를 지닌 ‘청아한 기록’을 늘 새롭게 쓴다. 전통의 가치를 정통으로 이끌어가는 힘, 춤의 원류 덕분이다. 이번 공연은 故 정재만 승무 예능보유자의 생전 생일날, 벽사의 제자들이 하나가 돼 마련한 헌정의 무대다. 춤과 더불어 시대에 따른 의상의 변천사를 보여줌으로써 벽사춤의 정통성과 확장성을 보여준 것은 의미 있다. 예술의 당대적 가치를 묵묵히 무대에서 피워냈다.

벽사의 주요 영상이 배경으로 나온다. ‘춤의 원류’가 ‘청아한 기록’을 부르기 시작한다. 한영숙-정재만-정용진의 모습이 영상에 투영된다. 벽사류 춤의 사군자 중 대나무(竹)에 비유되는 ‘승무’임을 넌지시 알린다. 3명이 먼저 춤춘다. 복식의 차이가 보여진다. 의상에 배인 춤의 시간이 눅진하다. 정용진이 무대에 남은 후, 10명이 무대 상하수에서 등장한다. 장삼자락이 유유하다. 다시 10명이 좌우에서 합류한다. 비례미(比例美) 표출에 압도된다. 무대 후방 단 위에서 정용진의 솔로 북놀음 후 7명의 여자 군무가 이어 받는다. 질량의 확대, 뛰어난 공간 구성, 삼재(三才)사상, 중용성(中庸性) 등을 갖춘 한국춤의 총아라 할 수 있는 ‘승무’가 정재만 선생의 영상을 마주하며 마무리 된다.

‘승무’

인생은 외줄이다. 그 아슬함을 벗어나 신명을 풀어낸 후, 본류인 외줄로 돌아가는 광대의 줄타는 모습을 철학적으로 풀어낸 ‘광대무’. 무용극 <놀당갑사>에서 정재만에 의해 추어진 후, 정용진이 이어받고 있다. 무대 사선(斜線)과 전경(全景)을 넘나들며 작품을 바라봐야 하는 이 춤은 독무 형식에서 탈피에 무용수들의 각자 솔로춤, 군무 등으로 구현됨으로써 입체성을 높였다. 조형성까지 확인가능한 시간이다. 광대의 꿈, ‘예혼의 길’을 바라볼 수 있는 ‘광대무’. 줄에서 내려온 광대의 솔로춤은 힘있되 절제미를 보였다. 무대 중앙에서의 독무 후, 무대 위 군무와 매치될 때는 정점을 찍었다.

‘광대무’

벽사류 춤의 사군자 중 국화(菊)에 비견되는 ‘살풀이춤’. 백색 미학의 정수인 이 춤은 ‘슬픔의 승화’라는 이중 구조를 고도의 예술성으로 집약시킨 춤이다. 영상 후, 스포트라이트 조명이 무용수 각자에게 비춘다. 전은경의 솔로춤은 춤의 원류를 깊이있게 그려낸다. 11명의 여자 무용수가 군무로 춤 출땐 국화 향기가 더해진다. 경륜있는 춤꾼들의 공력이 춤격을 높인다. 마지막 장면에서 흰 의상 입은 무용수들은 흰 물결이 돼 푸른 바다를 건넌다. 청아하다.

‘살풀이춤’

묵직한 ‘선비춤’이 이어받는다. 남자 무용수 1명을 중앙에 두되 좌우 각 4명이 대칭성과 남성성을 고양한다. 거문고 가락과 타악장단과의 어울림은 한국적 춤사위를 명징하게 드러낸다. 선비가 여인을 부른다. ‘산조춤 월하정인’이 이에 화답한다. 달은 춤을 부르고, 여인은 춤에 어린다. 거문고 산조가락과 춤의 조화는 달과 여인을 닮았다. 이 춤은 정재만 원작의 산조춤 ‘청풍명월’을 정용진이 재구성한 레퍼토리다.

‘선비춤’
'산조춤 월하정인'

‘월하정인’의 군무 사이로 박서연이 등장한다. 김종우와 조우하다. '사랑가'는 판소리 ‘춘향가’ 중 사랑가 대목을 춤으로 그렸다. 송범-김문숙, 김현자-정재만에 의해 듀엣 춤으로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이다. 피날레 무대는 벽사류 춤의 사군자 중 난(蘭)에 해당되는 ‘큰태평무’다. 정재만에 의해 의상의 복원을 이루었고, 군무화를 통해 ‘큰태평무’의 아이덴티티는 분명해졌다. 당의입은 군무 행렬이 이어진다. 김미숙의 솔로춤 후, 원삼입은 16명의 무용수가 군무를 통해 위용을 드러낸다. 5명이 복식을 달리해 등장한다. 당의입은 군무진의 밀도감도 상당하다. 왕, 왕비, 전체가 하나돼 태평성대를 알린다.

'사랑가'

정재만 선생의 정신을 계승해 벽사류 춤을 보존하고 발전시키는 벽사춤과 벽사 정재만춤 보존회. 한성준으로부터 시작되는 춤의 원류는 현재까지 꿋꿋이 내려오고 있다. 벽사춤의 전승활동은 1991년~2010년의 (사)벽사춤아카데미, 2010년~2014년 벽사댄스컴퍼니, 2014년~현재 벽사춤을 통해 면면히 춤 전승의 역사를 쓰고 있다. 청아한 기록, 벽사(碧史)는 이번 춤의 원류(原流)를 통해 정통의 춤가문임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적통(嫡統)의 힘이다. 내년 2024년은 정재만 선생 타계 10주년의 해다. 10주기 추모 그 이상이 펼쳐지리라 본다. 이번 ‘춤의 원류’가 의미있는 이유다.

'큰태평무'

이주영(무용평론가・고려대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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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댄스TV= 이주영(무용칼럼니스트)-이주영의 무용읽기_춤의 원류(原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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