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스TV=이주영 무용평론가] 이채로움 가득한 프로젝트가 연말을 화원(花園)처럼 물들인다. 무무 댄스컴퍼니와 공연예술기획 하담의 이수린 대표가 마련한 ‘조각보 프로젝트1’이다(2022.12.29., 서울돈화문국악당). 자투리 천으로 만든 보자기를 의미하는 ‘조각보’. 밥상보, 받침보, 덮개보, 노리개보, 옷감보, 이불보 등 다양하다. 생활 속 지혜의 소산인 조각보는 인테리어 소품이나 예술작품, 공예까지 넘나들며 경계를 넘어서고 있다. 조각보처럼 한국무용과 타 장르와의 융복합 무대를 시도한다는 의미로 명명한 이번 프로젝트는 향후의 콘텐츠까지 미리 점쳐볼 수 있는 무대였다. 이번 공연은 ‘꽃, 마주치다’라는 기태완의 저서가 기반이 되어 ‘춤, 마주치다’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옛그림 속 꽃, 나무와 춤이 일차적으로 만난다. 무대에서는 아홉 명의 서로 다른 춤이 조각보처럼 잇대져 하나의 무대를 이차로 일구어 낸다. 독립작이지만 종합 콘텐츠로서의 결과물로도 손색없다. 인문학과 전통예술, 미디어와 융복합의 교집합을 통해 상승 효과를 냈다. 각 작품 간 등퇴장 연결에 신경쓴 모습도 역력하다.
꽃이 내린다. 비가 된다. 꽃비다. 춤비다. 영상이 오늘의 무대를 꽃과 춤을 자연스럽게 연결한다. 꽃이 춤이 되기 시작한다. 춤에 대한 정신이 꽃 한 겹 한 겹이 돼 생명성을 더한다. 이번 공연의 예술감독이자 호남살풀이춤・동초수건춤 이수자인 이수린의 ‘호남살풀이춤’이다. 집안에 심으면 행복이 찾아온다고 믿어서 즐겨 심는 나무인 ‘회화나무’를 연상시킨다. 바람에 날리는 그리움을 아름드리 피운다. 침잠된 호흡 속 우아함, 엇가락 장단미, 시원스런 수건뿌림 등의 특질을 지닌 이 춤은 조각보의 구심점이 돼 다음 춤들을 자연스럽게 호명한다. 춤의 단단함과 부드러움이 중첩된다.
사시사철 피는 장미처럼 ‘사계화’의 꽃송이는 춤송이가 된다. 애잔한 소리길에 춤빛을 더하며 시작되는 ‘전라교방입춤’을 조은성 호남살풀이춤・동초수건춤, 호남산조춤 이수자가 선보인다. 중후반으로 가며 “해당화야~~”음률속에 춤빛은 사계화 열매처럼 붉은 빛을 더한다. 춤의 의연함까지 보여 준 무대다.
느릿하게 이어지는 춤사위는 달빛의 향기를 머금는다. ‘계수나무’의 기운이 춤 마디에 서린다. 호남살풀이춤・동초수건춤 이수자인 이종원은 ‘황무봉류 산조춤’의 달빛 향기를 산조 가락 하나 하나에 춤을 이입시켜 나간다. 화사하게 그려내는 춤맛이 정답다. 한국춤 어법을 재정립하고, 훈련체계를 다듬는데 기여한 자로 평가받는 황무봉(1930~1995)의 산조춤을 조각보에 담았다.
진송무용연구소 대표인 이은진이 ‘오미자류 장고춤’으로 이어받는다. 능소화의 꿈이 만개하기 시작한다. 옛날 양반집에만 심었다는 ‘능소화’. 무용 작품 모티브로도 종종 활용되는 꽃 중 하나다. 떠난 임금을 그리며 담장 밖 무덤에서 핀 능소화 이야기처럼 사랑 가득한 때의 모습이 아기자기하게 장고춤에 어린다. 춤사위가 춤추는 이의 표정처럼 화사하다. 장고춤에 어울리는 노란 저고리, 붉은 치마도 춤빛을 더한다. 이 작품은 박성옥-오미자로 이어진다. 춤의 여흥 가득하다.
호남살풀이춤・동초수건춤 이수자인 강주형이 무대에서 가벼운 절로 춤예를 표한다. 최선 선생의 ‘동초수건춤’이다. 소리와 어우러져 퍼져 나가는 ‘봉숭아’ 춤 향기가 객석에 온화함을 더한다. 손 끝에 매달린 짧은 수건은 가락과 장단을 타고 넘어 화원에 어느새 자리잡고 있다. 단아함 속 잔잔한 흥을 마주함은 기쁨이다.
호남 기방계의 춤사위를 담지한 ‘호남산조춤’은 수를 놓는 둥근 꽃 ‘수국’과 호응한다. 호남산조춤 이수자인 조용주의 이 춤은 분위기가 웅숭깊다. 때론 정교하다. 내면성을 잘 그려내 춤으로 수를 놓는 느낌을 준다. 춤의 성정(性情)까지 짚어 내 입춤의 특질을 구현했다.
경기도무형문화재 승무・살풀이춤 이수자인 홍모세는 서리에 항거하는 꽃이라 불리는 ‘거상화’와 ‘강선영류 태평무’를 춤으로 매듭짓는다. 왕의 위엄처럼 단단하되 은은한 기품으로 서리를 막아내는 듯하다. 발디딤과 춤의 집중력이 돋보였다. 엄숙함 속 우아함을 지닌 태평무의 기운이 객석에 전달된 순간이다.
봄바람이 불 듯 춤이 순항한다. 편안하게 춤을 담아낸 호남산조춤 이수자인 박영미의 ‘금아지무’다. 자유로움에 바탕한 즉흥성을 담은 이 춤은 꽃의 정승이라 불리는 ‘작약’을 마주하게 한다. 수묵과 수채의 양가성(兩價性)이 조각보에 새겨진다. 은은하게 풍겨내는 춤 매력이 상당하다.
피날레는 화관무 이수자인 강미영이 ‘진도북춤’으로 장식한다. 남국의 나무 ‘파초’를 닮은 이 춤은 두드림을 통해 조각보의 이음새를 단단히 한다. 진도북 특유의 활달함은 춤적 기운을 상승시킨다. 북가락의 역동성과 춤사위의 조화가 ‘울림’이란 단어를 만들며 무대가 마무리 된다.
이번 조각보 프로젝트1은 옛그림 속 꽃과 춤을 조각보 형상처럼 자연스런 이음으로 전통의 이음과 시대의 이음, 춤과 인문학의 이음을 만들어냈다. 다음 조각보의 춤색깔이 기대된다.
이주영(무용평론가・고려대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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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댄스TV= 이주영(무용칼럼니스트)-이주영의 무용읽기_조각보 프로젝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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