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영의 무용읽기_지젤(Giselle)

발레 춤 영역을 확장하다
인천시티발레단의 ‘지젤’

이주영 칼럼니스트 승인 2022.12.31 12:54 의견 0

[댄스TV=이주영 무용칼럼니스트] 공연예술마다 장르 속성을 잘 드러내는 대표작들이 존재한다. 발레하면 떠오르는 상징성이 큰 작품 중 하나가 발레 ‘지젤(Giselle)’이다. 1841년 파리 오페라극장에서의 초연 이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뜨거운 사랑을 이어가고 있다. 그 힘은 음악, 대본, 안무 등 콘텐츠를 이루는 근간이 탄탄하고, 테크닉과 예술이 미학적으로 연결 돼 완성도를 십분 발휘하기 때문이다. 공연예술 현장이 늘 그러하듯 어느 발레단이, 어느 장소에서 어떤 관객과 만나는지는 그날의 공연 분위기를 좌우한다. 2003년 창단돼 국내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전문예술법인단체인 인천시티발레단(예술감독 박태희)은 2022년 11월 24일(목), 평택남부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원전의 힘과 인천시티발레(Incheon City Bllet)만이 지닌 춤적 에너지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문예회관과 함께하는 방방곡곡 문화공감’ 사업의 일환으로 발레단은 충주시문화회관(10.21~22), 공주문예회관(11.4~5)의 여정을 지나 종착역인 평택에서 관객들의 춤 니즈를 충족시키며 투어를 마무리했다.

인천시티발레단, ‘지젤(Giselle)’

‘사랑’은 영원은 예술의 주제다. 그것이 슬프도록 시리다면 두말 할 나위가 없다. 감정선을 교차시키는데는 이만한 드라마성이 없기 때문이다. 전체 투어의 주역으로는 지젤 역에는 Silva Mazoco Virginia, 김나연, 최지호, 알브레히트 역에는 Christopher Robin Andreason, 김경원, 박제현, 힐라리온 역에는 Storozhuk Aleksandr, Michael Wagleyrk가 참여했다. 이번 평택 무대에서는 Silva Mazoco Virginia(지젤), Christopher Robin Andreason(알브레히트), Storozhuk Aleksandr(힐라리온)의 삼각편대가 호흡을 맞췄다. 그 외 윌프레드(황상일), 미르타(김승연), 두 윌리(하소영, 이은비), 지젤 엄마(박정온) 등 기량이 출중한 멤버들이 솔리스트, 앙상블, 군무를 이뤄 ‘하나의 지젤’을 만들어냈다.

‘지젤(Giselle)’

1막이 시작되면 목가적 분위기가 지젤 공간을 형성한다. 시골 처녀 지젤과 귀족 청년의 만남과 사랑, 사냥꾼 힐라리온의 질투, 충격으로 인해 죽음을 맞이하는 지젤의 모습 등이 시간을 잃어버리게 몰입도를 높여 전개된다. 군무 속 지젤과 알브레히트의 2인무는 경쾌함과 우아감을 동시에 안겨준다. 파드되(pas de deux)는 정교했고, 앙상블의 호흡 또한 탄탄했다. 1막 마지막은 알브레히트에게 약혼자가 있다는 사실에 놀란 지젤이 슬픔으로 인해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이다. 심리 표현이 중요하다. 지젤은 내면 연기를 충실히 보여줌으로써 극성(劇性)은 높이고, 춤성은 더했다.

‘지젤(Giselle)’

달빛 배경 하에 백색의 솔로가 2막을 연다. 슬픔을 머금은 처녀귀신 윌리들의 춤이 펼쳐진다. 지젤의 백미인 군무는 우아미를 넘어 숭고미와 비례미를 점철시켜 춤 미학을 고양하는 역할을 했다. 윌리의 여왕 미르타의 춤, 미르타의 명령에 따라 유혹의 춤을 추는 지젤, 지젤과 알브레히트의 2인무 등은 각 장면에서 요구되는 지점들을 정확하게 포착해 춤을 전개한다. 서정성과 서사성을 직조시키는 모습에서 발레 ‘지젤’이 지닌 콘텐츠의 힘은 다시 한 번 환기된다. 알브레히트가 지켜보는 가운데 지젤의 명장면 중 하나인 지젤의 솔로춤은 강력한 방점을 찍는다. 지젤과 알브레히트의 2인무는 신체언어가 지닌 순수함이 영롱하게 빛났다. 공기를 가르는 이들의 환상적인 춤은 객석의 시선을 단박에 이끌어 낸다. 완벽한 2인무 후, 윌리들의 군무가 이어진다. 무대를 떠나는 지젤을 그리며, 알브레히트는 꽃을 들고 한 걸음씩 물러난다. 진정한 사랑의 가치를 깨닫는 알브레히트의 마음은 이미 지젤의 가슴속에 스며들고 있었다. 2시간의 ‘지젤’ 공연은 아돌프 아당의 음악 속에 춤 여운을 남긴 채 막을 내린다.

‘지젤(Giselle)’

이번 무대는 전국의 문화예술회관과 문화재단, 극장 등이 예술단체와 협업하는 구조다. 발레단은 사업의 목적지에 안착함으로써 취지를 분명히 살렸다. 인천시티발레단은 양질의 레퍼토리를 보유한 단체다. ‘콩쥐팥쥐’, ‘심청’, ‘춘향’, ‘흥부와 놀부’, ‘지젤’, ‘호두까기 인형’, ‘미녀와 야수’, ‘알라딘’, ‘장화신은 고양이’, ‘신데렐라’, ‘성냥팔이 소녀’, ‘빨간모자’, ‘신들의 산책’ 등 다수의 콘텐츠를 확보하고 있다. 이는 극장, 관객, 시기 등 제반 요소에 따라 풀어낼 수 있는 자산이 많음을 방증한다. 국가 및 지자체, 문화재단, 극장 등에서 더욱 큰 관심을 가져 발레미학의 확장성을 도모하는 데 역할을 해주기를 바란다.

‘지젤(Giselle)’ 커튼콜

슬프도록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춤으로 담은 발레 ‘지젤’의 막은 내렸지만 작품이 추구하는 심연한 주제 의식은 11월의 밤을 더욱 웅숭깊게 만들고 있었다. 2023년에는 어떤 레퍼토리가 관객을 마주할지 기대된다. ‘지젤’을 통해 발레의 춤 확장을 고대하는 날이다.

이주영(무용평론가・고려대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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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댄스TV= 이주영(무용칼럼니스트)-이주영의 무용읽기_지젤(Gisel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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