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스TV=이주영 무용칼럼니스트] 현대춤 NGF(New Generation Festival)은 춤의 오늘이자 내일이다. 한국현대춤협회(회장 손관중)가 주최한 ‘2022 현대춤 NGF’(2022.8.26.,28, 서강대학교 메리홀 대극장)은 예술감독인 손관중 한양대 교수가 인사말에서 밝히듯 오늘 우리의 춤은 내일의 희망과 삶의 이정표를 세운다는 말에 고개가 저절로 끄덕인다. 젊은 무용수들의 열정과 참신함의 무대는 오늘을 딛고, 내일을 견인하는 춤의 언덕이요. 성전이 아닐 수 없다. 올해의 ‘2022 현대춤 NGF’는 총 8명이 정성스럽게 준비한 춤꽃을 이틀간 각 4작품 씩 무대에 수놓았다. 한마디로 ‘현대춤 NGF’는 춤의 순수성, 확장성, 미학성이란 삼원색을 무대에 채색했다.
26일의 첫 무대는 경희대 출신, 대전예고 강사인 김형민의 ‘oh my 갓’이 열었다. 감탄사‘oh my God’에서 ‘God’이 우리말 ‘갓’으로 치환됐다. 성인 남자가 머리에 쓰던 의관의 하나인 갓을 주 오브제로 사용해 변화의 변곡점으로 설정한 것은 참신하다. 타악 소리와 함께 경쾌한 움직임이 이어진다. 갓을 벗다. 움직임, 밀도, 분사력이 응축됐음이 감지된다. 갓 무덤의 형상을 만들다. 갓 앞에 엎드린다. 앉은채로 작품은 마무리 된다. 오브제인 갓의 적극적인 활용, 군무의 밀도, 응집과 분사가 점철된 무대다.
이어진 무대는 한양대 대학원을 졸업한 가림다 댄스 컴퍼니 소속의 금나현의 ‘overdose’. 제목의 뜻은 ‘과다 복용(과잉 투여)’의 의미다. 개인이든 사회든 다양한 중독에 시달릴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안무자는 ‘멈춤’에 대해 말을 건다. 통제와 제어의 속살을 넌지시 건져낸 것이다. 남녀 2인무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먼저 남자 무용수가 무대 왼쪽 가운데 서 있다. 여자 무용수가 세차게 달려온다. 강한 음악 속의 주문성(呪文性)은 작품의 밀도를 고양하는 기제로 사용되기도 했다. 이 작품은 ‘내면의 유형화’에 성공했다. 움직임을 통한 공간 창출, 효과적인 음악 처리 등이 움직임을 상승시켰다.
세 번째 작품은 한예종 무용원 전문사를 졸업한 배진호의 ‘내장과 가죽’이다. 이 작품은 ‘번제(燔祭)’를 중심에 두되 ‘온전한 제사’에 대한 자신만의 색깔을 덧입힌 무대다. 번제는 내장과 가죽을 뺀 후 제물을 드리는 절대자에 대한 경외의 발로다. 그런 측면에서 내장과 가죽이란 핵심 요소를 소재이자 제재로 잡은 것은 참신하다. 여자 무용수가 공중에 매달려 있다. 남자 무용수가 무대 후방에서 서서히 걸으며 온전한 제사를 향해 이동한다. 움직임과 호흡 좋다. 비트있는 음악 속 격렬한 움직임이 이어지다. 남녀 무용수가 빨간 조명 속 여운을 남기고 마무리 된다. 빼냄은 채움이요, 채움은 비움이란 명제를 번제를 통해 희생과 제물 속 향을 피워냈다.
첫째 날 마지막 무대는 한양대 박사로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발레단 단원 출신 이시연의 ‘내 안의 온도. 따뜻함과 차가움의 정도를 뜻하는 ‘온도(溫度)’는 신체의 온도를 넘어 인간 내면의 형질을 투영한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측면에서 온도는 말그대로 온도계를 오르내린다. 안무자는 인간 내면의 따뜻함과 차가움을 움직임으로 담고자 했으며, 당신 마음의 온도는 몇도 인지를 묻는다. 발레리나 두 명이 서정성 있는 움직임으로 온도를 높이기 시작한다. 솔로춤의 우아미가 더해진다. 남녀 2인무가 이어진 후 아다지오(adagio) 풍의 움직임이 연속된다. 정교한 아라베스크와 듀엣의 매직을 발산한 후, 서정적으로 마무리 된다. 내 안의 온도로 상대의 온도를 높인 작품이다.
28일의 첫 무대는 최한슬. 가림다무용단 단원인 한양대 최한슬은 ‘개인 공간’ 또는 ‘개체 공간’이라 지칭되는 ‘퍼스널 스페이스’를 타이틀이자 제재로 설정했다. 개인의 심리적 공간이자 사회적 거리와 경계를 두는 퍼스널 스페이스(personal space)는 안무자가 밝히고 있듯 타인에게 침범받고 싶지 않는 일정한 물리적 공간이다. 개인과 사회, 심리와 물리의 경계를 이지적으로 넘나들며 퍼스널 스페이스는 극장 공간을 유영했다. 공연이 시작되면 크고 흰 볼을 중앙에 두고 남녀 무용수가 공간적 사유를 취한다. 2인무의 역동성이 스페이스를 말한다. 조명, 음악이 공간에 투사돼 춤의 중력은 공간과 조우된다. 미니 볼이 떨어지며 작품은 마무리 된다. 남녀 무용수의 유사 동작이 퍼스널 성을 높이는 기제로 작용한 공간. 특히 개인 공간을 통해 자아와 타자, 내적 자신과 외적 자신 등 ‘경계의 미학’을 이채롭게 다루었다.
연세대 교육대학원을 졸업한 예원학교 강사인 경제향은 ‘_하다’라는 흥미로운 타이틀로 관객과 마주했다. 미처 말못하고 삼켜진 단어들은 온 몸에 스며들어 자신의 자리를 차지하고 싶은 욕구가 누구나 존재한다. 미 규정된 텍스트에 온기를 더하고픈 안무자의 의지는 몸짓이라는 신체언어의 옷을 갈아 입으며, 본연의 소리를 소담스럽지만 적실하게 들려주었다. 무대 막 앞에서 여자 무용수가 서서히 춤춘다. 다른 여자 무용수가 여기에 합세한다. 무대 앞으로 나와 비닐 의상을 벗기 시작한다. 바닥에 깔린 천을 접는 행위도 이어진다. 평온한 분위기 속 군무가 말과 글의 맞춤법을 교정하는 듯하다. 이 작품은 솔로춤, 여자 군무의 활용, 오브제 처리, 특히 춤의 상승과 하강 곡선미가 어우러져 밑줄에 들어갈 메시지를 품기도, 발산하기도 했다.
한예종 출신 LDP 단원인 장지호의 ‘팝콘 브레인’. 짧고 강한 자극에만 반응하는 팝콘 브레인(popcorn brain)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자 미디어의 발달로 현실에는 무감각해진 현대인들의 모습을 압축적으로 담고 있다. 화면이 아닌 현실에서의 강렬한 자극을 탐미한 이 작품은 순차적으로 한 명씩 등장하며 팝콘의 행렬을 보여준다. 발레 영상들이 나오기도 한다. 영상, 움직임, 군무 등이 조화롭게 안무 포맷을 여민 무대다.
둘째 날 마지막 무대는 엄예나의 ‘어느덧나무’가 장식했다. 한예종 전문사 출신으로 국고 전임인 엄예나는 나무를 통해 삶을 관조하는 풍요로움과 춤적 밀도를 동시에 보여줬다. ‘어느덧 나무’와 ‘어느 덧나무’라는 말의 교차성은 더 큰 그늘을 가지고 싶은 나무의 마음을 바라보는 듯하다. 사유(思惟) 좋다. 구음 속 여자 무용수가 무대 중앙에서 춤을 피어낸다. 정가풍 음악 속에 꽃이 된다. 춤꽃이다. 5명의 여자 군무는 라이브 연주에 맞춰 춤적 기운을 더한다. 10개의 흰꽃이 공간을 채운다. 비움과 채움이다. 정가소리에 어우러진 솔로춤은 더없이 풍요롭다. 구성미 좋다. 산조 느낌도 구현된다. 소리에 춤을 입혀 공간에 힘을 불어 넣었다. 여성성, 회화성이 무대에 채색된 이 작품은 어느덧 나무가 되었다. ‘홀로서기’가 아닌 ‘함께서기’라는 이름으로.
오늘과 내일을 마주한 무대, 한국현대춤협회의 ‘2022 현대춤 NGF’는 참신성에 확장성을 더한 시간이었다. 다음 춤 내일을 기다려 본다.
이주영(무용평론가・고려대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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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댄스TV= 이주영(무용칼럼니스트)-이주영의 무용읽기_2022 현대춤 NG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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