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영의 무용읽기_소월의 꿈
김소월 詩가 춤추다
아내 홍단실의 시각으로 풀어낸 창작발레 ‘소월의 꿈’
이주영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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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31 14:40 | 최종 수정 2022.07.31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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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스TV=이주영 무용칼럼니스트] 김소월의 시가 춤추다. 창작발레 ‘소월의 꿈’(2022.6.3~4, 도봉구민회관 하모니홀, 6월 3일 관람)이다. 댄스시어터샤하르 대표인 지우영 안무의 이번 신작은 문학의 정수인 시에서 시어의 맛을 노래로 담아내고, 춤으로 한번 더 시를 완성한 무대다. 문학의 공연예술 수용은 여러 의미가 있다. 텍스트가 무대 언어로 치환되는 변용의 의미도 있지만 춤 언어로 생명력을 부여받고, 확장성을 더한 것은 문학과 공연예술의 아름다운 조우이자 융합이기 때문이다. 등단시인인 필자로서는 김소월과 그의 시가 무대예술의 시격인 무용과 만나는 것 자체만으로 설렘과 기쁨 그 자체였다. 결과는 ‘감동’으로 압축된다.
1902년 평안북도 태생으로 33세라는 짧은 생을 마감했지만 김소월(본명 김정식)을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임을 첫 손으로 꼽는데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가 남긴 150여 편의 주옥같은 시들은 암울했던 시기에 피어난 별과 같이 빛난다. 이번 작품은 안무자가 시인 김소월의 아내 홍단실의 시각에서 작품을 풀어냈다. 소월의 짧은 삶 속에서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홍단실의 마음을 발레로 담고자 한 혜안이 돋보인다. “김소월 후손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안무했어요.” 공연 전 무대에 선 지우영 안무자의 말에서 이 작품에 대한 애정과 고민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그 고민은 ‘진달래꽃’이 되기고 하고, ‘초혼’으로, 때론 ‘오시는 눈’이 돼 관객과 시적 교감, 춤적 교감을 나누었다.
작품은 총 8장으로 구성된다. 꿈속에서 나타난 아버지가 일본인에게 폭력을 당해 정신이상자가 된 1장, 어린시절의 기억으로부터 숙모 계희영에 의해 문학적 영감을 받는 2장, 홍단실과의 결혼 장인 3장, 시대의 아픔을 담은 4장, 시작(詩作) 노트가 압수돼 끌려간 남편을 풀어달라고 애원하는 홍단실의 모습이 인상깊은 5장, 진달래꽃의 시어들이 유일한 위로가 된 6장, 소월이 죽음을 맞이하는 8장, 그리고 마지막 9장에서는 김소월의 시어들과 진달래꽃같은 마음들이 처연하게 분사되는 홍단실이 소월을 떠나 모내는 장면이 담겼다. 구성이 탄탄하고, 서정성과 서사성을 동시에 충족시킨다.
발레 ‘소월의 꿈’은 역사를 따라가기 보다는 김소월의 시, 그의 곁을 끝까지 함께한 아내의 마음이 춤 마음으로 연결된 것이 포인트다. 핵심을 더욱 단단하게 묶어준 것은 김소월의 증손녀인 소프라노이자 CCM가수인 김상은의 노래다(작곡 이권희). 호소력 있는 노래는 마치 한 편의 뮤지컬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입체성을 높인다는 것은 춤의 시각화에 매우 중요한 덕목이다. 김소월 역의 발레리노 정민찬, 홍단실 역의 스테파니는 잊을 수 없는 앙상블을 보여줬다. 발레 ‘레미제라블’에서도 각각 젊은 자베르와 코제트 역으로 호흡을 맞추었다. 시의 정령을 맡은 군무, 어린 소월 역까지 소홀함 없이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함으로써 작품 완성도를 높였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장면은 소월의 책상이 관(棺)으로 바뀌는 부분이다. 소월과 아내의 교감의 장이기도 하지만 책상을 누이고 접으니 관으로 변한다. 추모의 의미와 소월의 후손들이 그를 잊지 않겠다는 의지도 동시에 담고 있다. 착상과 구현이 인상깊다.
도봉구민회관 첫 상주단체로 선정된 댄스시어터샤하르의 앞으로의 공연 제작도 기대된다. ‘잊힐 날 있으리라’라는 자막이 가슴속으로 들어와 울림을 선사했다. 눈 내리는 영상을 배경으로 순백의 이별을 숭고하게 그리며 막은 내린다. ‘진달래꽃’에 담긴 이별의 정한이 이 무대에서는 축복의 이별로 새롭게 피어났다. 소월의 꿈을 이루다.
이주영(무용평론가・고려대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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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댄스TV= 이주영(무용칼럼니스트)-이주영의 무용읽기_소월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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