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스TV=이주영 무용평론가] ‘풀이의 춤판’이 10월의 첫날을 물들였다. 박영미 선우예술단&푸리무용단의 <강구연월(康衢煙月)>이다. 2025 모든예술31 경기예술활동지원 ‘부천예술찾기 미로(美路)’ 선정작 무대가 2025년 10월 1일, 부천 오정아트홀에서 개최됐다.
번화한 네거리에 달빛이 연기에 비치는 풍경을 의미하는 ‘강구연월(康衢煙月)’. 태평성대의 풍요로운 세상을 뜻한다. 슬픔과 고통을 치유하고, 희망을 염원하는 ‘풀이 춤판’으로 제격이다. 국가무형유산 이수자들이 중심이 돼 구성된 이날 프로그램은 ‘정화’로 시작해 ‘평화’로 마감했다. 각각의 춤이 지닌 특질을 반영하되 하나로 이어진 춤 구성과 전개는 강구연월의 의미를 담아내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박영미 선우예술단의 '강구연월'(상생과 평화_화선풍류)
이번 공연을 기획·연출한 선우예술단 박영미 대표는 국가무형유산 살풀이춤 이수자이자 승무, 학연화대합설무, 진주검무 전수자로 ‘정화’와 ‘풀이’라는 두 축을 직조해 풀어내는 춤꾼으로 정평이 나 있다. 2024년 9월, 국립무형유산원 예능풍류방 레지던시 기획공연에서 영산재의 ‘관욕의식’과 살풀이춤의 ‘씻김’이 연결된 ‘관욕푸리’를 통해 삶과 죽음, 인생의 희로애락을 정화의 빛으로 승화하는 여정을 보여준 바 있다. 박영미에게 있어 ‘풀이’와 ‘정화’는 이제 그를 대변하는 말이라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이번 ‘풀이 춤판’의 의미는 크다.
8개 작품은 7개의 춤과 1개의 연주로 구성됐다. 공연을 본격적으로 알리기 전, 자연재해, 어지러운 사회 모습이 담긴 영상을 통해 태평을 간절히 기다리는 마음을 읽을 수 있다. 강구연월을 위한 감성적, 논리적 장치다. 매 작품과 어우러진 영상은 이번 공연에서 리얼리티를 상승시키는 역할을 했다. ‘화선풍류’를 춤춘 윤채은의 디자인 감각이 영상에 잘 담겼다.
씻김은 정화(淨化)에서 출발한다. 진주검무, 부산시 동래고무, 대구시 살풀이춤 이수자인 송선숙, 송임숙이 ‘푸리_정화의 땅’을 밟기 시작한다. 위로와 정화, 안정과 평화가 지전에 실린다. 이번 공연은 ‘벽사진경(辟邪進慶)’의 의미가 큰 축을 차지한다. 액과 역병을 쫓아내고, 복록(福祿)을 기원하는 춤으로 처용무는 제격이다. 국가무형유산 처용무 이수자 강영미, 이경진은 화합과 상생의 의미를 담은 ‘쌍처용무’를 격조있게 처리했다.
‘월하(月下)의 춤’이 이어진다. 박영미의 독무 ‘교방살풀이춤’을 통해 어려움을 이겨내는 내적 본산인 흥을 풍류성 있게 풀어냈다. 처용무와 더불어 가장 오래된 연원을 가진 ‘검무’. 진주검무 이수자 네 명(송선숙, 송임숙, 이정희, 노유나)의 칼끝이 액운을 물리치고, 염원을 노래한다. ‘염원의 끝_구국의 검무’가 섬광을 번쩍인 순간이다.
국가무형유산 거문고산조, 심청가 전수자 한승호와 전북도 무형유산 판소리 수궁가 이수자 이세영이 합을 맞췄다. 적벽가 중 ‘조자룡 활 쏘는 대목’이다. 신쾌동류 거문고병창에 얹힌 용의 활은 태평을 깨우기에 충분했다. 젊은 예인의 패기 또한 한몫했다. 이번 공연의 주제가 강하게 담긴 ‘강구연월_풀이춤’을 박영미가 살풀이춤을 통해 선보인다. 염원은 위로가 됐고, 희망은 푸리와 풀이를 넘나들었다.
천지의 울림이 시작된다. 평화의 북소리다. 윤명화무용단 대표이자 (사)박병천류 진도북춤보존회 부회장 윤명화의 ‘진도북춤’이다. 솔로춤이지만 아우라가 상당한 그의 춤은 잔향 깊다. 피날레 무대는 태평성대를 꿈꾸는 오늘과 내일이 담긴 ‘화선풍류(花扇風流)’다. 박영미, 윤채은(처용무 이수자), 이석원(승무 전수자), 송재이가 함께했다. 여성춤 ‘화선무’와 남성춤 ‘한량무’를 재구성해서 만든 선우예술단의 대표 레퍼토리 중 하나다. 화합과 상생을 담은 평화의 춤이다.
‘강구연월(康衢煙月)’의 의미를 담은 이번 공연은 국가무형유산 전승자들의 예술적 기량이 부천 무대에서 승화된 풀이의 춤판이었다. 다음 판이 기다려 진다.
이주영(무용평론가・고려대 문학박사・한양대 무용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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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댄스TV= 이주영(무용칼럼니스트)-이주영의 무용읽기_강구연월(康衢煙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