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스TV=이주영 무용평론가] 춤은 흐른다. 하지만 그 사이에는 춤이 머물기도 한다. 흐름 속 멈춤, 멈춤 속 흐름이 춤에는 고요하게 침잠되어 있다. 춤단아 대표 유진주 선생이 마련한 <유진주의 춤 ‘사이, 춤이 머물다’> 공연이 2025년 8월 27일, 서울남산국악당에서 개최됐다. 시공간에서 치열한 미학적 분사가 이루어지는 춤. 유진주는 이번 공연에서 여섯 가지 춤의 숨결을 가져왔다. 빛, 선, 멋, 흥, 숨, 춤이 그것이다. 여섯 작품에서 담지된 상징 코드는 춤으로 기호화되어 무대와 객석을 유영했다.
영상 속 길을 따라 다다른 곳, 궁궐이다. 유진주가 무대 우측에서 나온다, 솔로춤이 시작된다. 이어 4명(강주희, 이예도, 이민지, 김민채)이 합류한다. 한영숙-박재희로 이어지고 있는 한영숙류 ‘태평무’가 빛이 되는 순간이다. 그 중심에 유진주가 서다. 찬란하다.
‘살풀이’는 그리움의 고향이다. 그리움은 한과 승화라는 이중주를 무한 반복한다. 그 사이를 연결하는 것은 ‘선(線)’이다. 춤의 선이다. 눈 내리는 영상 속 아쟁소리에 실려 유진주가 등장한다. 춤의 마디마디에 아로새긴 무늬는 수건 끝에서 피고 진다. 춤이다. 삶이 된다. 유진주는 이날 ‘살풀이춤’을 통해 마음의 춤을 제대로 보여줬다.
한국춤에서 ‘멋’은 빼놓을 수 없는 미학이다. 멋이 한량이란 이름을 호명한다. 이날 김진우의 ‘한량무’는 기술적인 것보다 여유, 공력으로 멋과 품격을 담아냈다.
소리에 실린 ‘흥’, 바로 ‘진도북춤’이다. 춤의 기품을 갖춘 안상화의 솔로춤으로 시작된 진도북춤은 정지수, 이민지가 더해져 트리오의 두드림으로 울림이란 흥을 깨운다. 흥과 신명의 가치를 보여준 진도북춤 무대였다.
숨과 함께 춤이 피어난다. 춤 여정의 시작이다. 유진주의 안무로 7명의 군무가 풀어낸 ‘초무’. 장단, 박, 호흡 등 한국춤 제반요소를 수용해 창작성을 부여했다. 춤길의 염원을 담은 이 작품의 여운이 웅숭깊다. 다시 한번 숨을 내쉬며 마무리된다.
춤은 마음이다. 유진주 안무 및 독무로 보여준 피날레 무대 ‘산조’는 춤과 마음을 오간다. 움직임을 넘어선 춤, 춤을 대하는 마음, 춤추는 마음, 춤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고자 했다. 이 작품은 ‘나다움’에 대한 탐색이자 여정이라 할 수 있다. 남성적 매력, 다소 거친 듯한 거문고 소리와 우아한 춤의 앙상블은 이질감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질감 속 동질감을 불러낸다. 이 작품의 매력이다. 거문고 산조에 피워낸 마음의 춤이 의미있는 이유다.
‘춤에 만족이란 없다’라는 철학을 지닌 유진주는 최현 선생에겐 한국춤의 예술성, 김문숙 선생에겐 한국춤의 세련미, 전황 선생으로부터는 한국춤의 흥, 최선 선생으로부터는 한국춤의 따뜻함, 박재희 태평무 보유자에겐 한국춤의 깊이를 배웠음을 역설한다. 예술적 가치관 정립에 도움을 준 스승들이다. 이 스승들과 여타 스승들의 가르침은 유진주 춤의 오늘과 내일을 여는 길이 됐다. 그 길을 이제 유진주가 걸어가고 있다.
국가무형유산 태평무와 진주검무 이수자, 전북무형유산 호남살풀이 이수자 유진주 선생은 국가유산청과 국가유산진흥원이 후원하는 ‘2025년 이수자 지원사업’인 이번 공연을 통해 이수자로서의 길을 묵묵히 춤으로 답했다. 춤이 머문 순간이다. 그 사이로 춤을 바라본다. 유진주의 내일이 기대되는 이유다.
이주영(무용평론가・고려대 문학박사・한양대 무용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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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댄스TV= 이주영(무용칼럼니스트)-이주영의 무용읽기_유진주의 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