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영의 무용읽기_2024 현대춤 NGF

‘새로움’이란 동인과 ‘춤’이란 콘텐츠의 공존 무대
나, 사회, 미래, 희망을 말하다
한국현대춤협회, ‘2024 현대춤 NGF’

이주영 칼럼니스트 승인 2025.01.05 16:19 | 최종 수정 2025.01.05 21:31 의견 0

[댄스TV=이주영 무용평론가] 한국현대춤협회(회장 손관중・한양대 교수)가 주최한 ‘NGF(New Generation Festival)’는 공연 전부터 설렘이 존재한다. ‘새로움’이라는 동인(動因)과 ‘춤’이란 콘텐츠가 공존하기 때문이다. ‘2024 현대춤 NGF’(2024.8.23~25, 서강대 메리홀)의 안무작들을 종합해보면, 몇 가지 주요 키워드로 귀결된다. ‘나(我)’, ‘사회’, ‘미래’, ‘희망’ 등이다. 각각의 단어가 지닌 기본적인 의미도 있지만 춤을 통해 증폭된 기호성은 머리와 가슴에 울림으로 다가왔다.

23일 첫 무대는 문영철 발레 뽀에마 수석무용수인 한승호가 열었다. 박혜민, 박세현, 한승호 등 세 명의 무용수를 한 명씩 조명으로 비춰주며 시작된다. 경계의 시작을 알린다. 고글(Goggle)을 쓰고 표류하는 듯한 남자무용수의 모습이 작품 ‘Boundary : 경계’를 상징한다. 무대 공간의 상・중・하 분할, 보임과 안보임의 탐색 등이 좋은 움직임으로 구현됐다. 후반부 댄스플로어에 번진 무늬가 주는 아련함, 경계의 완성을 위한 비완성의 속살을 2인무로 보여줬다. 한승호의 솔로춤 장면은 메시지와 감성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아냄으로써 안무와 춤을 아우를 수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 굳게 닫힌 세상을 향해 또 하나의 세상을 열었다.

한승호 안무 ‘Boundary : 경계’

김규림, 김태형, 양진석, 정인하, 라혜련 등 5명의 무용수가 현대사회의 군상을 만들고 있다. 가림다무용단 준단원인 라혜련 안무 ‘피로사회’다. 양진석, 라혜련의 2인무가 이어진다. 짐을 내려놓듯, 때론 위로하듯 담담하다. 치밀한 안무 속 다섯 명이 풀어내는 군무는 각 개체가 전체를 대변할 수 있음을 웅변한다. 자기 자신에 대해 엄할 수 밖에 없는, 아니 스스로에게 몰아붙일 수 밖에 없는 심리와 사회환경 등 무수한 시선과 짐의 멍에는 작품으로 이어진 배경이다. 무용의 사회학적 관점에서 볼 때 현대사회의 현상학적 측면을 심리, 양상 등을 잘 수용해 풀어낸 의의가 있다. 피로사회에 대한 안무자의 시선이 날카롭다.

라혜련 안무 ‘피로사회’

판소리 ‘심청가’는 효를 근간으로 한다. 근간에는 공연예술에서 심청에 대한 해석도 다양하다. 인간 심청, 소녀 심청 등 그 자체에 집중하는 모습이 잦다. 상하이국제무용콩루르에서 창작부문 금상을 수상한 바 있는 김세원의 안무작 ‘海’. 젊음을 바다에 던진 심청의 모습을 청년의 오늘에 오버랩시켰다. 자신과 사회를 아우른다. 공연이 시작되면, 징소리가 바다로 안내한다. 소리(김민지)는 바람이 돼 춤이란 배를 밀어낸다. 김세원의 솔로춤 후, 김주은, 박수아, 김세원 등 세 명이 함께 춤출 땐 격랑이 일어나는 듯 하다. 몰아치는 파도와 거센 바람을 오히려 전진하는 에너지원으로 삼고자 하는 모습이다. 어둠을 밝히는 등을 든 3명의 손짓이 숭고하다. 소리와 춤의 어우러짐, 구성미가 안무를 드러내는 역할을 했다. 해(海)가 해(日)를 호명한 시간이다.

김세원 안무 ‘海’

머리에 바지를 씌운 채 1명이 걸어간다. 4명(김민서, 백서현, 정지은, 박지희)의 무용수가 공의 핀이 된 듯 부딪힌다. 형상력 좋다. 독무, 2인무, 3인무 등의 다양한 대형 변화와 구도 등은 마치 삶이란 만화경(萬華鏡) 같다. LDP무용단 단원인 박지희의 안무작 ‘Spare’는 우리네 삶을 공을 레일에 굴려 핀을 쓰러트리는 것에 견주었다. 공과 핀이 부딪힐 때의 스파크(spark)는 삶이 지닌 음양(陰陽)의 속성을 동시에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후반부의 리드미컬한 움직임이 거세다. 마지막에 1명이 쓰러지며 마무리 된다. 핀과 같은 삶이다.

박지희 안무 ‘Spare’

25일의 첫 문을 피수현 안무 ‘Self portrait’이 연다. 자신이 넘을 수 없는 어떠한 벽을 새끼 코끼리 발목에 묶인 하얀밧줄 비유로 가져와 자신과 삶에 대해 질문하는 사유깊은 작품이다. 속박과 한계를 춤으로 구현해 자유에 대한 희구를 모색했다. 공연이 시작되면, 묶인 듯한 모습이 한 줄기 빛 사이로 투영된다. 독무에서 군무로의 확장 구조가 점층성을 높인다. 김효리, 심은지, 이아라, 이려경, 정다현, 피수현이 출연한 이 작품에선 특히 군무 사이에 홀로 서 있는 모습 속에서 자유의 길을 향하고픈 갈망이 오롯이 새겨진다. 오늘의 자화상이다.

피수현 안무 ‘Self portrait’

춤은 호흡이다. HEYYEH 아티스트 크루 예술감독 최지원의 ‘습-하’는 호흡과 신체 움직임을 연결시켰다. 호흡을 통해 인간의 내재적 모습을 탐구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무대 공간을 이사랑, 장인회, 오수희, 김노연, 최지원 등이 빙그르 돈다. 응시와 탐색, 관조가 이어진다. 소용돌이 치는 장면에선 분열까지 보여진다. 천천히 그려내는 움직임 속 습의 온도가 오르락내리락 한다. 종반부에서 숨을 희구(希求)하는 모습이 공간을 채워나간다. 호흡과 신체, 행동과 감정까지 이어낸 이 작품은 느릿함의 찬연함이 안무자만의 색깔로 드러낸 작품이다.

최지원 안무 ‘습-하’

독일 드레스덴 팔루카 국립 무용대학 졸업 후, 한양대 박사과정 중인 김보성의 안무작 ‘미친 사람만 볼 것’은 한마디로 ‘춤의 철학서’다. 헤르만 헤세(Herman Hesse)의 소설 ‘황야의 이리’(1927)에 나오는 하리 힐러 이야기를 단초로 작품을 풀어냈다. 이리와 인간, 두 개의 자아를 가진 하리 힐러. 솔직함이 미덕이 아닌 불편함을 야기할 수 있는 사회구조와 관계 속에서 자아(自我)의 홀로서기는 녹록지 않다. 충돌도 발생한다. 정신분열증이라고 불리는 이 현상은 작품 제목이 주는 힘과 맞닿아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에토스(ethos), 파토스(pathos), 로고스(logos)의 교차와 중첩, 분열과 분리까지 이어질 수 있는 대목이다. 작품에서 두 명과 한 명의 배치가 자주 일어난다. 주체(subjct)와 객체(object) 측면에서 볼 때 상호성까지 엿 볼 수 있다. 김시현, 성민정, 김보성이 호흡을 맞췄다. 두 자아, 다중 자아가 존재하는 사회 속에서 진정한 자아찾기에 대한 탐색이 무대에서 보여 성스러운 순간이었다. 미쳐야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역설(逆說)이 정설(定設)이 될 수 있음을 웅변했다.

김보성 안무 ‘미친 사람만 볼 것’

피날레 무대는 최현 춤원 이사인 김연진의 ‘찔레꽃’이 장식했다. 공연이 시작되면 찔레꽃을 우측에 내려 놓는다. 감성적인 음악 속에 한지혜, 김연진의 2인무가 이어진다. 꽃잎이 떨어진 자리엔 열매의 속살이 돋아나는 것처럼 이 작품은 희망이란 꽃을 춤의 정원에 심었다. 찔레꽃 노래와 함께 붉게 떨어지는 낙화(洛花)의 정경이 나로, 우리로 이어짐을 보여줬다. 한국적 색채와 감성을 담아 서정적으로 풀어낸 무대였다.

김연진 안무 ‘찔레꽃’

‘2024 현대춤 NGF’는 철학이 있는 무대였다. 폭과 깊이를 떠나 사유와 화두 제시는 무용예술이 지닌 숭고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창작에서 길어올린 사유의 진폭은 나와 너, 우리를 넘어선다. 춤의 대지에 다다른 숭고한 여정이었다.

이주영(무용평론가・고려대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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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댄스TV= 이주영(무용칼럼니스트)-이주영의 무용읽기_2024 현대춤 NG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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