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스TV=이주영 무용평론가] 동해로 가는 길은 숭고했다. 동해 무악(巫樂)과 무무(巫舞)에 바탕한 ‘동해굿춤’ 무대다. 부산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강주미 춤패바람 대표가 주최한 ‘동해로 가는 길2’은 2022년 12월 27일(화), 금정문화회관 은빛샘홀에서 개최됐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때에 역사적, 문화적, 미학적 분위기가 팽팽하게 공간을 맴돌았다. ‘굿과 춤’, ‘연구와 연행’이라는 대칭적 구조가 ‘춤’에 담지 돼 강주미 표를 채색했다. 일곱 작품 중 공연 의도에 부합되는 핵심 콘텐츠는 ‘동해 삼오장춤’, ‘동해 신태집춤’, ‘동해 쇠춤’, ‘동해로 가는 길’ 이다. 나머지 ‘동해안 무속사물’, ‘태평무’, ‘정윤화류 영남북춤’은 전체 공연 구도속에서 윤활유 역할을 했다. 레퍼토리지만 각 피스(piece)가 지닌 고유성을 춤판의 질서 속에 수용하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강주미 춤꾼은 연구와 연행이라는 두 키워드를 직조시키려는 노력을 그간의 춤 무대를 통해 보여줬다. 이번 무대 또한 맥락은 같이 하되, 맥락 속 질감을 한층 높이려는 고유성이 침잠돼고 분사됐다. 2022년 ‘팔일(八佾)’ 무대에서는 ‘강태홍류 산조춤’을 선보인 바 있다. 이 춤은 동래권번 예능사범 강태홍(1893~1957) 선생이 그의 가야금 산조가락에 춤을 얹어 김온경 선생에게 전승한 춤이다. 방안춤과 덧배기 호흡이 농축돼 있다. 그날 공연에 대해선 ‘미세한 춤의 감각을 들추어 냈다’라고 평하고 싶다. 2020년의 ‘동해 비나리’ 무대는 이채로움 그 자체다. 부산문화재단 지원 사업으로 진행된 해당 공연은 동트는 시간, 시원성 강한 무대와 연출로 미장센을 보여줬다. 솔로춤이지만 군무 이상의 응집력을 표출한 것은 춤 공력이 있었기에 가능하다. 출렁이는 파도를 안은 바다와 널찍이 바라보는 모래사장은 이분화된 경계가 아니라 하나가 돼 춤을 맞이했다. 춤의 바다를 만든 무대다. 파도에 자신의 몸을 맡기며 춤 출 땐 떠난 자와 산 자의 혼이 만나는 듯한 감흥까지 더했다.
이번 공연을 준비할 때 강주미 선생의 스승인 김온경 동래고무 예능보유자는 “절제 안에서 자유하라”라고 말했다. 절제와 자유, 그 간극을 춤적으로 승화하기는 여타의 예술도 마찬가지지만 신체언어인 무용의 특성까지 담아내기 위해서는 기술과 예술, 여기에 더해 철학이 없으면 실체를 보여주기 어렵다. 이번 무대는 두 개의 감각을 길어올려 춤 나이테를 그려냈다. 핵심은 ‘굿적 감각’과 ‘몸적 감각’이다. 관점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양가성(兩價性)이 수반된다. 문제는 수렴이다. 수렴의 지난함을 문답(問答)한 이번 무대는 ‘동해굿춤’이란 콘텐츠를 제시하고, 길을 보여준 무대다. ‘동해로 가는 길’이 숭고한 이유다.
강주미는 2010년 9월, 강주미의 첫 개인발표회 ‘몸소리, 마음소리’를 시작으로 지속적으로 춤 무대를 통해 자신의 춤적 아우라를 다져왔다. 실연(實演)이란 춤의 종착역을 제반 춤의 연구를 통해 자양분을 공급해 온 것은 박수받을 만한 일이다. 미학자 채희완 선생의 영향도 크다 할 수 있다.
2020년 11월 24일, 공간소극장에서 선보인 ‘동해로 가는 길1’은 주제가 있는 60분 분량의 작품이다. 로컬리티 춤 미학을 기치로 내건 무대로 기장 오구굿, 동해안별신굿 장단, 쾌치나 칭칭 등의 음악적 정서에 바탕해 구성된 창작춤이다. 혼종의 바다에 띄운 감감적 무대였다. 이번 ‘동해로 가는 길2’은 ‘동해’라는 이정표는 같으나 차이를 보여준 무대다. 각각의 춤 콘텐츠를 개발하고자 하는 분명한 의도다. 그 주인공은 ‘동해 삼오장춤’, ‘동해 신태집춤’, ‘동해 쇠춤’이다. 이들을 중심으로 판을 구성해 동해로 가는 길의 여정을 보여주고자 했다.
공연이 시작되면, 강주미가 무대 우측에서 등장한다. ‘동해로 가는 길’의 첫 출발을 알린다. 철현금의 떨림 속에 춤길을 서서히 낸다. 악사들이 한 명씩 무대에 나와 객석에 인사 후, 반주석으로 이동한다. 춤터를 닦는다. 인트로 격으로 구성한 이 춤은 ‘동해로 가는 길1’ 중 솔로를 가져와 확장했다. 최경철 철현금 연주자의 길게 늘어뜨린 의상 속으로 강주미가 들어갔다 나오는 퍼포먼스도 구현된다. 춤터의 신성성이 더해진다. 잔잔함과 휘몰아침이 교차된다. 풍류전통예술원의 ‘동해안 무속사물’의 두드림은 영혼 고양에 이바지한다. 고조시키는 연주가 어느듯 동해에 이르게 한다.
반주가 시작되며 강주미가 등장한다. 힘을 빼고 풀어내는 춤사위가 서서히 시선을 끈다. 빠른 장단의 맹렬함이 더해질 때 춤꾼의 움직임도 호흡을 같이한다. 긴 장삼을 입고, 소매를 돌리며 추는 ‘동해 삼오장춤’은 세존굿에 나온다. 삼오장 장단이 함께한다. 장단에 맞추어 추는 이 춤은 동해안별신굿의 김석출 선생이 잘 추었다. 자손발복(子孫發福)을 비는 기원성 강한 춤이다. 이 작품은 2019년 12월 19일, 국립부산국악원 대극장에서 ‘삼오장’이란 제목으로 초연됐다. 이후 2022년 부산시민회관 대극장에서 재공연됐다. 이번 무대에서는 ‘동해 삼오장춤’이란 타이틀을 달고, 재구성과 창작을 통해 새로운 얼굴을 알렸다. 공간을 충분히 활용해 신명과 승화의 이중주까지 느낄 수 있는 무대다.
이어진 무대는 ‘동해 신태집춤’. 무구를 양손에 들고 춤길을 떠난다. 호소력 있는 구음(정효선)과 함께한 춤은 삶을 바라보게 한다. 구음을 타고 춤의 호흡이 넘실댄다. 조상굿에 나오는 신태집춤은 초망자거리의 무가 후에 나온다. 이번 무대에서는 신태집이라는 무구와 춤사위의 조화를 통해 보이는 자와 보이지 않는 자 사이의 의미를 탐미한다. 좁은 굿터에서 추던 짧은 동선을 확장하고, 사방위의 에너지를 중앙으로 모아 넋을 모시는 장면이 하이라이트다. 바라지와의 듀엣 구성은 강주미와 부산시무형문화재 부산농악 예능보유자인 박종환 선생이 호흡을 맞췄다. 굿 형식에서 사용되는 것을 그대로 가져와 굿춤의 의미도 살렸다. 김석출 선생의 학습 그대로 보여준 동살풀이 장단도 춤의 맛을 더한다. ‘동해 신태집춤’은 이번 공연의 신작(新作) 의미가 있다.
동해안 오구굿에 나오는 쇠춤의 고형을 활용한 ‘동해 쇠춤’이 단단함과 부드러움을 직조시킨다. 춤은 반주를 리드하고, 반주는 춤을 에스코트(escort)한다. 악(樂)을 쪼개고, 분절한다. 이를 다시 춤으로 엮어낸다. 2018년 11월, 부산문화회관에서의 강주미의 개인공연 ‘화풍’에서 ‘진쇠춤’이란 이름으로 발표한 것을 다듬어 ‘동해 쇠춤’으로 변모를 꾀했다. 다양한 굿가락을 직접 연주하며 춘 무속악춤의 내재성 발현이다.
태평무 전수자이자 비선무용단 대표인 정은주는 ‘태평무’로 분위기를 전환시킨다. 태평성대를 기원하는 ‘태평무’가 지닌 고유의 춤적 질감을 ‘안녕’이라는 키워드를 팬데믹 시대에 고한다. ‘안녕’은 ‘굿’의 다른 이름이다. 전체 구성과 레퍼토리 간 접점을 이루는 대목이다. 음악, 복식, 춤 등 다양한 춤 요소가 결부돼야 가능한 이 춤을 정은주는 자신의 춤색깔을 담아 그려냈다.
피날레는 ‘정윤화류 영남북춤'이 장식한다. 부산아미농악 초대 보유자이자 영남북춤의 연행자인 정윤화의 북춤을 전수받은 박종환과 강주미가 풍류전통예술원 반주 속에서 조화롭게 펼쳐낸다. 북춤의 고장인 영남의 함성을 들려주고자 한 의지가 수용된 이 작품은 이번이 네 번째 무대다. 향후 횟수를 거듭해 영남북춤이 지닌 울림의 의미가 더 울려지길 바란다.
강주미의 열 번째 개인공연인 이번 무대는 동해 무악과 무무에 바탕해 춤사위를 보여줬다. 동해굿에서 추어지는 춤을 엮어 무대화하겠다는 의지도 설득력 있다. 특히 창작성을 가미해 ‘동해굿춤’의 길로 향함은 지역을 넘어선다. 타악기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동해안별신굿의 반주 음악은 범접하기가 쉽지 않다. 음악과 춤의 연결성, 창작 시 요구되는 미학성, 문화콘텐츠로서의 확장성까지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풀어나가야 춤길이다. 동해로 가는 길에서 그 춤꽃을 마주한 날이다.
이주영(무용평론가・고려대 문학박사)
사진_윤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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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댄스TV= 이주영(무용칼럼니스트)-이주영의 무용읽기_동해로 가는 길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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