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스TV=이주영 무용칼럼니스트] 역사, 무용, 인물이 만났다. 무용역사기록학회(최해리 회장)와 시댄스가 공동기획하고, 무용역사기록학회 제작, 한국춤문화자료원이 협력 리서치한 ‘Reconnect History, Here I am’무대다. 2022년 9월 29~30일(평자 29일 관람), 문화비축기지 T1에서 개최된 이번 무대는 렉처와 컨퍼런스, 공연이 혼합된 연구작품이다. 참여 안무가들이 리서치한 내용들은 춤, 토론, 대화의 형식을 지닌다. 개별 작품들은 독립작이지만 군집돼 하나의 퍼포먼스로 수렴된다. ‘춤에게 바치는 춤들’이란 시댄스 카테고리에 부합되는 이번 무대는 학회가 중심에 진행된 프로젝트다. 춤의 기록과 역사를 진중하게 모색하는 학회의 성격이 무대라는 공간성에 연결돼 시너지를 냈다. 춤역사 속 인물과 작품의 탐미는 오늘의 ‘나’를 통해 발화돼 동시대적 가치를 구현했다는 의의가 있다. 7명의 안무가들은 100년간의 춤 역사에 남겨진 무용가들의 족적을 ‘실천적 연구’를 통해 오늘에 이르게 한다. 향후 연구와 무대 현장에서 소환될 일이라 본다. 강선영-김선정, 한성준-김태훈, 최승희-태혜신, 박금슬-김윤수, 피나 바우쉬-김영미, 테드 숀-정은주, 이애주-김연정이 각각 연결되는 춤역사의 숨결은 이번 도큐먼트 퍼포먼스를 통해 춤 공존의 힘을 드러냈다.
‘태평무’의 춤에 담긴 기원을 현대적 움직임으로 표현하는 방안을 안무노트에서 찾은 김선정 단국대 교수는 강선영(1925~2016)에 주목했다. 김선정이 장단을 내며 무대로 들어온다. 태평무의 대표 장단인 터벌림과 올림채를 중심으로 움직인다. 장단 속 춤사위는 ‘발디딤의 발자취’를 따라가는데 부족함이 없다. 춤을 통한 흥(興)의 기운이 태평 기원의 메신저가 된다.
우리춤 역사에 빼놓을 수 없는 한성준(1874~1941) 명무에 대해 김태훈 국립국악원 무용단 안무자는 ‘장단’에 집중해 무대를 풀어낸다. 장단과 박에 대한 설명 후, 실연하는 구조가 중심을 이룬다. 장단에 동작을 얹는 것이 춤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장단은 시간을 청각화하고, 춤은 청각을 시각화하기 때문이다. ‘시간의 무늬-장단’으로 명명된 것처럼 우리춤의 근원성을 장단과 춤의 연결짓기를 통해 관객들에게 쉽게 전달했다. 렉처 퍼포먼스의 면모를 잘 살렸다.
보면대 위에 놓인 최승희의 저서를 태혜신이 매만지며 춤이 시작된다, 안무가로서의 집요함, 숙명이 강하게 느껴진다. 태혜신카르마프리무용단 대표인 태혜신은 최승희(1911~1969)의 삶과 ‘장고춤’을 주제로 composition(구성)했다. composition1에서는 ‘신여성이여, 춤을 춰라’, composition2에서는 ‘무용은 역사적 기록물이다. 사회에 환원하라’, composition3에서는 ‘안무가 최승희를 기리며’라는 메시지를 통해 공감대를 높인다. 미래의 춤꾼들에게 남긴 최승희 말로 퇴장한다. “AI가 할 수 없는...”. 잔향이 크다.
‘춤은 오장육부로 추어야 하고, 단전에서 추어야 한다’라는 레퍼런스에 기반해 김윤수 성균관대 초빙교수는 박금슬(1922~1983)의 춤 기본원리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한국무용가 박금슬이 구체화한 한국춤의 원리인 ‘오장육부’는 생리학적이고 소매틱한 접근에서 비롯된다. 박금슬 춤의 골격이 여기에서 생성된 것이다. 김윤수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대화를 통해 그 가치를 묵직하게 던져준다. 디딤새 시범, 호흡과의 연결성 설명 등은 몸의 감각을 깨우고, 내 몸 안에 있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기회를 부여했다.
20세기 가장 위대한 무용가로 평가받는 피나 바우쉬(1940~2009)가 의미있게 던진 말이 있다. “나는 무용수들을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 보다는 무엇이 그들을 움직이게 하는가에 더 관심이 있다.” 울림이 크다. 김영미 경희대 교수는 ‘무엇이 나를 움직이게 하는가’라는 피나의 주제 의식을 오늘에 입맞춤 한다. 움직임의 정체성과 방향성이다. 무용의 본질에 천착할 수 밖에 없는 무용가들의 숙명을 조용하되 깊게 수면위로 끌어 올린다. ‘인간과의 소통’이란 피나의 주제 의식이 영원히 이어질 수 밖에 없는 이유다. 끌림, 떨림, 울림에 하나의 공명을 더했다. 스민 무대다.
전 리듬체조 국가대표 출신 정은주 헤케이브 소은 컴퍼니 대표는 20세기 초 현대무용의 거장인 테드 숀(1891~1972)이 리본으로 안무한 ‘Olympid’를 출발점으로 삼았다. 리본이라는 공통분모를 단초로 해 서브젝트(Subject)와 오브젝트(Object) 간의 관점을 자신만의 시각으로 담아냈다. 리듬체조 모습도 작품 속에서 보여주며, 수학적, 공간적, 물리적 측면까지 세심하게 풀어헤치는 장면들이 인상적이다. 신체와 리본을 통해 ‘Subject(+-=)Object’이란 타이틀을 이채롭게 전달했다. 철학적 사유 깊다.
마지막 무대는 김연정 이애주한국전통춤회 부회장이 이애주(1947~2021) 보유자를 기리며, 전통춤의 길을 ‘우주를 닦는 몸짓’이란 주제로 담아낸다. 마루를 닦는다. 춤을 추기 위한 환경 조성도 되지만 나를 닦는 또 하나의 일이다. 마루는 터다. 춤의 원리가 거기에서 피어난다. 이애주 선생이 했던 그 모든 ‘변화의 道’에 대해 조용한 웅변을 한 무대다. 스승에 대한 그리움, 기억 등이 스승의 음성이 들려오며 무대를 내려온다.
국내 최대 규모의 무용학술단체인 무용역사기록학회가 마련한 렉처 형식의 도큐먼트 퍼포먼스 ‘Reconnect History, Here I am’은 공연 이상의 의미를 현장에서 보여줬다. 이날의 무대는 내일의 기록으로 남으리라 본다. 이론과 실기의 통섭, 역사와 기록의 통섭을 기반으로 ‘리서치 퍼포먼스’ 작업을 브랜딩하고 있다. 2023년 1월에는 ‘코리아그라피: 우리소리 추어지다’가 공연될 예정이다. 또 하나의 이정표를 기대한다.
이주영(무용평론가・고려대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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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댄스TV= 이주영(무용칼럼니스트)-이주영의 무용읽기_Here I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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