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스TV=이주영 무용평론가] 전통춤은 근간(根幹)이다. 뿌리와 줄기가 되는 자양분을 운초(運初) 김은희 선생은 원리(原理)에 두었다. 오랜 세월동안 연구하고, 구축한 ‘움직임 원리’가 그 중심에 있다. 중요한 것은 춤의 맥(脈)과 혼(魂)에 기반한 원리여서 유의미하다.
춤 인생 65주년을 맞이해 춤이 곧 자신이었음을 천명한 무대, 6월 ‘일무지관(一無之貫)’의 춤 잔향이 가시기도 전에 2025년 7월 27일, 서울돈화문국악당에서 스승 이매방의 사방춤 재현 무대 <운초 김은희의 춤>이 개최됐다. “내 춤은 사방춤이야”라는 스승 이매방의 음성이 무대에서 들리는 듯 함께 춤춘 시간이었다.
김은희 선생은 박금슬 선생에게 1967년 입문해 1983년 작고하실 때까지 사사했다. 84년부터 86년까지 삼년상(三年喪)을 치르듯 매해 추모공연을 가졌다. 스승에 대한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이후 이매방 선생에게는 1987년에 입문해 2015년 작고하실 때까지 사사했다. 국가무형유산 승무(1997), 살풀이춤(2002) 두 종목 이수자다. 스승의 춤을 뿌리에 두되 근원적 가치와 미학을 탐미한 연구자로서의 집념과 열정은 이론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닌 무대 현장과 교육 등 춤을 매개로 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적용되게 하는 것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연구와 실연의 이중주는 춤의 중심축이자 삶의 좌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2006년 강습회를 중심한 우리춤 움직임원리 연구과 교육, 십여 회가 넘는 무악캠프를 통한 사방춤 원리 연구와 훈련, 2024년 우수 이수자 선정 및 지원을 통한 ‘살풀이춤의 움직임 원리에 관한 교수 지도안 제작’ 등 우리춤 움직임 원리와 본질에 대한 탐학(貪學)과 탐무(貪舞)는 누구와 견줄 수 없을 만큼 상당하다. 70세에 이룬 박사학위 취득은 사표(師表) 삼기에 충분하다.
1988년 밀양검무보존회를 발족해 매년 정기공연을 비롯한 제자 양성 등을 통해 밀양검무 전승에 힘쓰고 있다. 현재 밀양검무보존회 회장을 맡고 있다. 앞서 언급한 우리춤 움직임원리 연구 및 강습은 2004년 우리춤움직임원리연구회 발족을 통해 박금슬 춤동작 기본, 이매방류 승무와 살풀이춤 강습회 및 연수회 등을 진행하고 있다. 결국 두 스승의 춤 연구와 창조적 계승이 방점이다. 이번 공연의 주최와 주관도 김은희우리춤움직임원리연구회임을 상기해 볼 때 그 시작과 끝이 무엇인지는 분명하다.
이번 공연은 ‘입춤’, ‘승무’, ‘살풀이춤’의 완판 무대다. 스승을 기리며, 스승의 춤세계에서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사방춤’에 대한 직설적이되 현학적(衒學的)인 무대라 할 수 있다. 재현을 넘어선 무대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 우봉 이매방 선생의 서거 10주기를 맞이한 해여서 의미도 더한다.
공연은 이매방 선생의 영상으로 시작된다. “내 춤은 흙 묻은 춤”이란 거장의 말씀이 주는 함의는 울림 컸다. 현대춤의 극장 양식화, 무대화 특성에 대비되는 말이자 전통춤, 특히 사방춤이 지닌 원리와 특성을 간명하게 풀이해 준 말이다.
김은희 선생의 이날 입춤은 초심(初心)의 결기와 정신이 무대에 오롯이 투영됐다. 솔로춤으로 무대에 오른 것이 이날이 처음이여서 의미를 더했다. 굿거리 장단의 기경결해(起景結解)에 음양의 순환과 태극 곡선이 빚어내는 춤길의 본향(本鄕)은 몸과 마음을 곧추세우기에 충분했다.
승무를 통해 신비로운 우주 자연의 이치를 간파할 수 있고, 춤의 시작과 끝이라 생각하는 운초 선생은 유인상 등 7명의 반주자의 악에 하나가 돼 집중력과 공력을 동시에 발휘했다. ‘승무’ 작품을 통해 무극(無極), 태극(太極), 호흡(呼吸), 음양(陰陽), 순환(循環), 우주(宇宙) 등 거대 담론을 이루는 말들이 춤으로 치환되는 생생한 판의 여닫음은 숭고함 그 자체였다. 한국전통춤에 담긴 본원의 숨길을 찾아 몸길, 춤길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모습을 마주한 것은 이날의 보람이자 행운이다.
‘김은희 춤이야기’ 후, 피날레는 ‘살풀이춤’이 장식했다. 이매방 선생은 ‘자신의 춤은 방안 춤으로 모든 방향을 향해 춘다’고 했다. 사방으로 돌며, 원으로 회전하는 원리다. 점·선·원으로 구성된 우리춤의 움직임 원리는 김은희 선생의 살풀이춤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춤 전개에 따른 움직임을 주의 깊게 따라가 본 필자는 ‘살풀이춤’에서 춤적 요소와 원리가 특히 수용됐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원리는 본질이고, 그 본질을 재확인한 것은 발명과 발견이 교차하듯 의미있다.
40여 년간 이매방류 춤에 대한 연구를 통해 우리춤의 움직임 원리를 정립, 발전시키고 있는 운초 김은희 선생의 노력과 열정이 살아 숨 쉰 이번 무대는 춤의 도서관, 박물관을 다녀온 듯 지적 희열을 주기에 충분했다. 무엇보다 ‘입춤’, ‘승무’, ‘살풀이춤’ 완판 무대를 통해 온전한 춤의 깊이를 마주함은 우리춤의 전승과 맥이란 측면에서 기억해야 될 대목이다. 운초 선생은 우리춤의 현재진행형 아키비스트(archivist)라 말할 수 있다.
이주영(무용평론가・고려대 문학박사・한양대 무용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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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댄스TV= 이주영(무용칼럼니스트)-이주영의 무용읽기_운초 김은희의 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