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영의 무용읽기_춤방가는 길
여덟 무용수가 피어낸 비례미 가득한 무향(舞香)
댄스오리진의 ‘춤방가는 길’
이주영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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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02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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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스TV=이주영 무용칼럼니스트] 춤방가는 길은 아름다웠다. 우리춤이 지닌 고유의 춤적 질감, 여섯 작품 속 여덟 무용수가 피어낸 무향(舞香)은 지나가는 길이 아니라 멈추고 싶은 길이기 때문이다. 댄스오리진 주최로 2022년 11월 12일(토), 서울돈화문국악당에서 진행된 ‘춤방가는 길’은 춤의 다양성과 조형성, 내면성을 입체적으로 제시했다.
첫 문은 ‘정재만류 태평무’가 열다. 삼성무용단 단원을 역임한 이남경이 격조있는 솔로춤으로 리드한 후, 숙대 무용학과를 졸업한 이시은과 박슬기가 등장해 우아하게 받쳐준다. 한성준-한영숙-정재만으로 이어지는 이 춤은 경기도당굿 장단, 발디딤 등을 소화해 나가는 것이 관건이다. 세 명은 태평무가 지닌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 사상의 내재성까지 무대로 끌어올려 안정된 호흡으로 춤을 전개한다. 단아함과 세련됨은 복식(服飾)의 이채로움과 깊이만큼 도드라졌다.
태평무에 이어 김화미 동국대 외래교수는 ‘황혼’을 통해 예술가의 삶을 사색적으로 풀어낸다. 이 작품은 초대 국립무용단장을 역임한 송범의 1965년 작품, ‘인생’을 1982년 김향금 전 창원대 교수가 ‘황혼’이란 작품으로 재안무했다. 공연이 시작되면 무대 우측에서 천천히 무용수가 등장한다. 회상, 추억 등이 아로새긴 황혼의 춤줄기는 김화미의 섬세한 춤사위에서 풀어진다. 내적 강함을 우아미가 은은하게 감싼다. 음악과의 하모니가 요구되는 춤을 안정감있게 처리한다. 서정과 낭만이 고독과 사색으로 치환되고, 교차되는 독무다.
허리격인 세 번째 무대는 상명대 박사이며, 전북무형문화재 수건춤 이수자인 박윤미의 ‘신관철류 수건춤’이 중심을 잡았다. 이 춤은 한성준-김보남-신관철에 의해 전승되고 있다. 박윤미는 절제됨에 수용된 춤결을 하나씩 길어올리는 힘을 보여줬다. 후반부의 춤적 자유함은 율(律)에서 추출된 자유(自由)가 넌지시 고개를 들며 알린다. 수건을 살짝 쥔 채 떨어트리며 마무리 된다.
춤의 여인이 일렁인다. 편지를 쓰는 듯, 사랑을 전하는 듯 산조풍의 춤사위는 가을날의 정취를 고즈넉하게 안는다. 숙대 졸업 후, 상명대에서 박사를 수료한 황은진의 ‘낙화무언’이다. 이 작품은 정재만의 산조 ‘청풍명월’을 윤세희가 재안무한 것이다. 자유함과 승화, 여성성과 고풍의 수수한 맛이 수미쌍관(首尾雙關) 구조로 처리 돼 여닫는 맛이 제격이다.
북채를 든 양손의 미학 구현이 특징인 ‘진도북춤’은 전통무용그룹 ‘춤판’의 대표인 구명서가 진도북춤이 지닌 고유성에 자신만의 색채를 더해 무대에 울림을 준다. 울림과 떨림의 조그만 간극도 없이 시간과 공간을 직조시켜 흥취를 더했다. 운동성과 확장성을 동시에 보여준 무대다.
이번 공연의 대미는 댄스오리진의 대표인 윤세희 상명대 박사의 ‘THE살풀이’다. 정관사 ‘THE’가 지닌 무게감을 알기에 독창성 발현에 시선이 갈 수 밖에 없다. 무대 앞 바닥에 수건이 깔려 있다. 살풀이 수건에 나비가 찾아든다. 바닥의 수건을 서서히 올릴 때 나비도 춤을 따라간다. 살풀이춤에 프로젝션 맵핑(Projection Mapping) 기술을 접목해 동작과 해석을 풍요롭게 했다. ‘THE살풀이’의 의의를 상쇄시킬 수 있는 지점 중 하나다. 춤의 표현성이 의미있게 제시된 피날레 무대다.
이번 공연은 여덟 무용수가 지닌 춤적 기량과 함께 각 작품에서 요구되는 춤의 고유성 발현이 질서있게 구현된 무대다. 다음 춤방가는 길을 하루빨리 마중하고 싶다.
이주영(무용평론가・고려대 문학박사)
7dancetv@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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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댄스TV= 이주영(무용칼럼니스트)-이주영의 무용읽기_춤방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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