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스TV=이주영 무용평론가] 지역의 역사, 인물, 설화, 자원 등을 발굴, 문화콘텐츠로 창조하는 일은 중요하다. 때에 따라선 사적(史的) 고증도 필요하고, 지역과 문화, 문화예술의 연결고리에 장해가 되는 지점들을 상쇄해야 하는 막중한 일이기도 하다. 서울에서 오랫동안 활동하다 전북 전주에 내려가 5년째 지역 문화예술 진흥에 기여하고 있는 파사무용단(예술감독 황미숙)이 신작을 통해 의미 있는 모습을 보여줬다.

파사무용단 '개남(開男)'

1989년 황미숙무용단으로 시작해 2002년 9월 파사무용단(Pasha Dance Company)로 개명에 현재에 이르고 있는 파사무용단은 현대춤의 대표 단체 중 하나다. 2025년도의 마지막 날인 31일, 전북대학교 삼성문화회관 대공연장에서 역사 속에서 가려질 수 있는 인물, 조선 말기 동학농민혁명의 지도자 김개남 장군을 춤으로 형상화한 <개남(開男)>이다. <여립(汝立)_지워진 이름 정여립(2022, 2023)> 공연을 통해 신호탄을 쏘아 올린 후, 두 번째 여정이라 연속성 측면에서 의의가 있다.

김개남은 1853년 9월 15일, 현재의 전북 정읍시 산외면에서 태어났다. 전봉준이 1894년 동학농민운동을 일으키자 그는 1,300여 명의 군중을 이끈다. 백산에서 동학 농민군과 합류해 전주성 점령 등 큰 역할을 했다. 동학농민군 내에서는 강경파와 온건파의 갈림길에 들어서기도 한다. 작품 5장 ‘외길 혹은 갈림길’에서 구현한 그의 무거운 마지막 행보가 선연하다.

개남 역 오창익

공연이 시작되면, 하얀 의상을 입은 남자 무용수가 무대 위로 걸어 올라간다. 무대 세트가 중앙에 위치한다. 남자 군무 후, 장엄한 음악 속에서 나온다. 결연함 가득하다. 동학농민군 학살에 사용된 우지개가 주는 상징성이 크다. 볏짚의 우지개가 머리에 씌워짐은 세상이 멈춘 것과 비견할 수 있다.

우지개 쓴 장면

물소리 난다. 바닷속 같은 심연함이 깃든다. 탐관오리들의 횡포, 삶의 물길은 막혀버린다. 여섯 무용수들은 각자의 탑조명 아래 움직임을 이어간다. 미니멀하다. 서서히 밀려오는 전율이 긴장을 고조시킨다. 샤막 올라간 후, 남자 군무진의 움직임이 부드럽다.

남자 군무

대나무 영상이 비장감을 부여한다. 무용수들이 일제히 무대에 선다. 두 명의 조용한 움직임이 파동친다. 꿈꾸는 세상을 향한 의지의 천명이다. 김개남은 ‘남쪽에서 밝은 세상을 열겠다’는 의지로 개명했다. ‘개남(開南)’이다.

죽창을 든다. 솔로춤의 기개가 넘친다. 죽창을 든 10명 무용수의 춤이 원을 그려나갈 때는 자신들이 희구하는 세상에 대한 열망이 넘쳐난다. 무대 후방에서 나온 개남(오창익)과 군무진의 춤이 열렬하다.

황미숙 안무 '개남(開男)'

‘개남(開南)’이란 이름이 선명한 영상 후, 혼란스러운 장면이 이어진다. 머리에 우지개를 씌운다. 무수한 별들이 그에게 떨어지며, 공연은 마무리 된다. 이 공연에서 영상의 역할이 컸다. 장면마다의 시의적절한 영상력 발휘는 춤적 미장센 구축에 기여했다.

파사무용단 신작 '개남(開男)'

혁명가, 선구자, 지도자로 역할을 한 김개남의 고뇌, 투쟁, 염원은 멈췄지만 그의 정신은 오늘에 이르러 빛나고 있음을 무대에서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전북특별자치도문화관광재단 무대작품 제작지원사업 선정작인 이번 무대는 전북지역에서 현대춤을 통해 파사무용단의 예술적 저력을 보여준 시간이었다. 우지개에 가려진 세상을 열 듯 춤을 통해 예술 세상을 활짝 열어갈 2026년이 기대된다.

이주영(무용평론가・고려대 문학박사・한양대 겸임교수)

7dancetv@naver.com
Copyright(C)DANCETV, All rights reserved.
저작권자(c)댄스티브이,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출처/댄스TV= 이주영(무용칼럼니스트)-이주영의 무용읽기_파사무용단 개남(開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