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스TV=이주영 무용평론가] 기억이 몸짓으로 살아나다. 그 몸짓은 결을 이루다. 평인(平人) 이승주의 춤, ‘기억의 몸짓, 결’이 2025년 9월 18일(목),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진한 그리움을 피워냈다.
이화숙 (사)우리춤협회 이사장, 김영숙 국가무형유산 종묘제례악 일무 전승교육사 등의 스승들이 이승주 선생에 대해 말한다. “전통이 깊다. 춤에 대해 진정이다. 이 시대의 춤과 교감하기 위한 노력과 열정이 상당하다” 등이다. 언급했던 것처럼 포천시립민속예술단 예술감독을 역임한 평인댄스컴퍼니 예술감독 이승주는 머물지 않은, 멈추지 않는 힘을 지닌 무용가다. 국가무형유산 종묘제례악 일무 이수자, 승무 이수자, 태평무 전수자 등 궁중무와 민속무를 비롯해 다수의 창작 작업을 통해 창작무까지 아울러 무용 스펙트럼이 넓다.
이번 공연의 모티브는 부정(父情)이다. 떠난 자에 대한 그리움은 남은 자의 몫이다. 남겨진 자의 기억 속 단상의 순간들이 마음의 춤으로 탄생 됐다. 1장 ‘의식의 문’, 2장 ‘기억의 결’, 3장 ‘송신의 춤’으로 구성해 안정적인 구조 속에서 춤의 결을 마음과 몸으로 담아냈다.
국립국악원 우면당 무대 위가 부채꼴 형태를 이룬다. 영상 속 비가 내린다. 무대도 젖어 든다. 비가 눈으로 바뀌며, 시간의 흐름을 알린다. 의식의 문이 열린다. 하얀색 의상을 입은 무용수 4명이 ‘일무’로 예를 드린다. 잔잔한 여운이 퍼진다. 발레리노 김유찬이 등장한다. 그리움까지 동반된다.
무대 후방 직사각형 형태의 ‘문(門)’이 설치돼 있다. ‘기억의 문’이자 ‘의식의 문’이다. 문 장치는 단순한 세트 역할을 넘어 철학과 미학을 담았다. ‘통과’라는 행위를 통해 경계를 알 수 있고, 기억이 교차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영민한 처리다. 기억, 공간, 시간 등의 다중적 키워드가 이 문을 통해 발산된다. 이승과 저승, 현실과 기억, 과거와 현재가 무용수의 넘나듦을 통해 춤의 몸짓으로 부활된다. 영상과 무대와 어우러져 미장센 구현에도 큰 역할을 했다.
팔풍(八風)의 장단 위 ‘춘앵전’ 솔로, 피리 소리에 맞춰 시작된 2인 ‘검무’가 이어진다. 집박(執拍)이 준 묵직함도 또 하나의 의식처럼 다가온 순간이다.
의식의 문을 열고 들어오니 이름 없는 기억들이 새로운 이름을 쓰기 시작한다. 혼잣말 같은 독백이지만 민요와 함께 시작된 ‘장고춤’, 신명을 고조시키며, 기억과 추억을 다채롭게 불러내는 역할을 한 5명의 ‘부채춤(부채입춤)’은 슬픔보다 기쁨이 크다. 소중한 기억들이 영상 속 꽃잎처럼 휘날린다.
나지막한 첼로 소리에 발레리노의 춤이 시작된다. 깊이 파고드는 아쟁소리에 보내는 춤과 닫는 숨이 서로를 향한다. 검정 의상에 하얀 수건이 대조를 이루며, 송신(送神)의 살풀이춤이 구음, 아쟁소리와 하나 된다. 영상 속 꽃송이가 내리며, 공연은 마무리된다.
무대와 춤의 교차, 변화되는 무대 공간과 더불어 이 공연에서 음악의 역할을 컸다. ‘여백(餘白)’에 방점을 두었다. 전통음에 근간을 두되 덜어낸 소리는 ‘절제(節制)’라는 선물을 객석에 선사했다. 전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예술감독 김영길의 아쟁, 음악감독과 장단을 맡은 박범태 등의 연주자들은 춤의 결을 살리는 데 기여했다.
결을 기억의 몸짓으로 승화시킨 안시향, 안영숙, 김경진, 주진희, 허여진, 강민재, 최우민, 최은빈, 방재윤 등의 무용수들과 찬조출연으로 부(父)와 녀(女) 그 이상의 느낌을 잘 살려준 김유찬의 역할도 기억할 만하다.
‘보내는 마음이 된 춤, 기억으로 쓴 마음의 춤’을 펼친 이승주의 춤이 준 기억의 몸짓은 결이 고왔다.
이주영(무용평론가・고려대 문학박사・한양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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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댄스TV= 이주영(무용칼럼니스트)-이주영의 무용읽기_기억의 몸짓, 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