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스TV=이주영 무용평론가] ‘오늘의 춤’을 말하고자 기획된 ‘신전통’ 시리즈는 올해도 어김없이 무대에 올려졌다. 다년간 해당 공연을 보면서 ‘신전통(新傳統)’이 주는 의미, 역할, 가치, 확장 등에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전통춤’과 ‘신전통춤’에 대한 개념, 범주 등에 대한 학술과 현장에서의 논의가 여전히 있는 상황이지만 ‘신전통 무대’를 통해 보여주고자 한 것은 ‘오늘의 춤’이라는 사실이다. 공연을 주최한 (사)배정혜춤연구원 배정혜 이사장은 “한국무용계의 미래를 바라보며, 신전통 공연을 고집한다”라고 힘주어 말한다. 방점은 ‘신전통 공연’에 있다. ‘전통 기반 재창조’의 숭고함과 엄중함이다. 당대적 가치를 가진 창작춤에 대한 거장의 숨결이 우리춤의 내일을 비춘다.
2025년 8월 1~3일, 포스트극장에서 3일간 공연이 진행됐다. 평자는 일정상 3일 공연만 함께했다. 이 글의 대상은 3일 공연으로 한정하고자 한다. 1일은 김현미, 홍정아, 이경숙·정혜원·박은경, 한지혜, 김용철·박선영, 곽시내, 정은숙이 출연했다. 2일은 김세령, 김정민, 심숙경, 김유진, 이진원, 홍은주, 김수현, 이희자 등이 무대를 빛냈다. 3일은 조윤아, 두은숙, 최은규, 보연, 김용철, 태혜신, 장래훈, 전진희, 김지은 등이 참여해 피날레 공연날을 장식했다.
배정혜 선생의 ‘바기본’으로 유명한 ‘배정혜메소드’는 독창적인 춤 방법론이자 훈련법이다. ‘메소드(method)’라는 말에서 쉽게 유추된다. 전통춤 호흡을 근간으로 한 한국춤 호흡원리와 움직임 등에 대한 이 메소드는 우리춤의 교육과 현장에서의 일익을 담당해 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번 <신전통Ⅷ>은 ‘메소드’에만 함몰하지 않는 것이 핵심이다. 메소드에 근간을 두되 춤추는 자의 스타일과 개성, 작품의 내재성과 고유성 등을 발현시켜 ‘춤’으로 구현하는데 핵이 있다. 이번 공연에 참여한 무용가들은 오랜 세월 동안 자신만의 춤세계를 구축하는데 정진한 자들이다. 전통춤과 창작춤을 아우른다. 배정혜 메소드 원리 적용의 강도와 범주가 문제가 아니다. 3일 전체 공연의 출연자들 면면을 보자면, 각자가 해온 춤 여정의 폭과 깊이가 어떠한지 어렵지 않게 간파된다. 메소드의 직·간접 적용 여부도 중요하지만, 배정혜메소드를 학습, 활용하고 있는 무용가들의 수고 또한 동일하게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조심스럽다. 해당 작품이 해당 무용가의 전부를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하에서 필자는 3일 공연을 중심으로 평하고자 한다.
바람과 춤이 교차된다. 무풍(舞風)이다. 그 중심에 삶이란 기둥이 서 있다. 강물의 유유함처럼 인간의 내적 감정을 감성적으로 담아낸 ‘연산조’. 리틀엔젤스예술단 무용 교사 조윤아가 첫 문을 세련되게 열었다.
(사)배정혜춤연구원 이사인 두은숙이 우물가 처녀가 된다. 물을 길어 나온 처녀의 마음이 투영된 ‘우물가에서’다. 이 작품은 시대성과 민속성이 잘 드러난다. 재치와 익살에 감성이 더해져 소녀의 설렘과 천진난만함이 배가 된다. 배정혜 안무를 재구성해 움직임과 무브먼트로 적절하게 처리했다.
이매방, 배정혜 안무의 ‘심살풀이’. 아라무용단 최은규 대표가 춤춘다. 살풀이춤의 대표 류인 이매방류와 한영숙류와 뚜렷한 차이를 보인 살풀이춤이다. 최은규는 중량감 있게 무대를 담았다.
공연이 시작되면 사찰에 온 듯하다. 법화경(연화경)의 춤적 상징이 명징하다. Artlab-Boeon 대표 보연은 연화의 숨결을 노래하고 춤춘다. ‘연화경 승무’는 붉은색 장삼이 주는 강렬함처럼 작품의 톤 또한 강렬했다. 깨달음의 연꽃이 피어난 순간이다.
1일 박선영과 듀엣으로 ‘대구살풀이춤’을 보여준 김용철(前 부산·천안시립무용단 예술감독)의 ‘소고춤’이 시작된다. 도입부에서 그가 취한 포즈는 시선을 단박에 이끈다. 김용철이 지닌 춤적 아우라(aura)의 발산이다. 김용철 작(作) 소고춤은 대구와 영남지역의 명무 권명화 선생의 춤을 근간으로 한다. 중요한 것은 김용철 고유의 예술적 창작성이 잘 수용됐다는 점이다. 대구무형유산 살풀이춤 이수자이기도 한 그는 영남 춤 특유의 질박미와 자신의 춤적 감성을 재치있게 풀어내 소고춤의 창작성을 고양하는 데 기여했다. 그의 소고춤 세 번째 버전이다.
배정혜 원작을 재구성해 ‘풍류장고’를 춘 태혜신카르마프리무용단 대표 태혜신이 소녀로 분한다. 명작무 ‘배정혜 장고춤’에 기반하되 개인 서사에 초점을 둠으로써 재구성의 면모를 보여줬다. 빛바랜 흑백사진을 마주하듯 1900년대 꿈 많은 소녀의 심경이 서사를 이뤄 춤적 심상을 그려냈다.
부산시립무용단 수석을 역임한 장래훈은 춤 역량과 재치가 있는 무용가다. 이번 무대에서는 김진홍류 ‘한량무’를 선보였다. 춤적 내공을 바탕으로 자연스럽게 춤의 색깔과 톤을 조율하는 힘을 보여줬다.
전진희(서울시무용단 단원)는 캐릭터 댄스에 능하다. 지난 신전통춤 무대에서의 ‘우물가에서’ 작품은 그를 각인시킨 중 레퍼토리 중 하나다. 이번 무대에서는 수건을 잡았다. ‘흥푸리’다. 수건을 오브제로 적극 활용해 해학성을 몸짓으로 담아냈다.
3일간의 전체 공연이자 이날 공연의 피날레를 김지은(아트컴퍼니사이 대표, (사)배정혜춤연구원 이사)이 마무리한다. ‘품바북춤’이다. 2021년도 12월, 솔로 ‘북춤’에 대해 평자는 ‘신명성, 연희성, 연극성, 놀이성 등을 춤에 담아내 북춤의 영역을 확장했다’라고 평한 바 있다. 이번 무대는 최초 3인무로 구성했다. 김지민(리을무용단 단원)과 김혜선이 함께한다. 여기에 초기부터 함께한 조정근(타악, 소리)의 가세는 무용극을 보는 듯 서사성을 부여했다. 등장부터 재치있다. 세 명이 번갈아 얼굴을 내민다. 객석은 릴렉스 된다. 품바 특유의 해학성과 서민성은 북춤과 만나 화학적 결합을 이뤄낸다. 기존 작품명 ‘북춤’에서 새롭게 옷을 갈아입은 ‘품바북춤’으로의 전환이 자연스럽다. 전개가 단단하다. 대중성과 예술성을 겸비한 이 작품은 배정혜메소드에 충실하되 창작성을 담아 ‘신전통춤’, ‘신전통 공연’의 의미를 명징하게 하는데 일조했다. 창작은 자신의 색깔이다. 예술성이 담보된 춤적 정체성은 춤의 고귀한 본질이다. ‘품바북춤’이 김지은의 시그니처 레퍼토리로 자리매김한 것을 다시 한번 목도했다.
3일간의 신전통 무대, 마지막 날을 중심으로 글을 마무리하며 드는 단상이 있다. 창작(創作)의 가치다. 그 속에 자리잡고 있는 전통(傳統)이다. 신전통 무대가 이를 매해 이뤄나가는 것은 한국창작춤 발전의 견인체(牽引體)가 된다는 점이다. 출연한 모든 무용가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이주영(무용평론가・고려대 문학박사・한양대 무용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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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댄스TV= 이주영(무용칼럼니스트)-이주영의 무용읽기_신전통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