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극단초인 신작 <베니스의 상인>

집단 이성을 믿는 사람들의 집단 광기에 관한 보고서, 400년 전 이야기.
16세기 베니스를 살았던 사람들, 그리고 지금 서울을 살아가는 사람들.
그때도 지금처럼.

댄스TV 승인 2022.10.05 06:00 의견 0

초인이 오는 10월 21일부터 30일
세종문화회관 꿈의숲아트센터

<베니스의 상인>


[댄스TV=김아라 기자] <베니스의 상인> 희극으로 볼 것인가, 비극으로 볼 것인가?

많은 경우, <베니스의 상인>을 로맨틱 코미디로 포장해 ‘포샤와 밧사니오’, ‘네릿사와 그라시아노’ 두 커플이 악당 샤일록을 응징하고 사랑에 성공하는 권선징악의 희극 구조를 선택한다. 또 많은 경우, 소수자의 이야기, 즉 이주민과 여성의 인권 문제로 재해석하기도 하는데 안토니오를 성소수자로 설정하여 기독교 사회의 폐쇄성을 부각하기도 하고, 법정에서 모든 문제를 말끔히 해결하는 여주인공 포오샤를 통해 페미니즘 연극으로 이끌기도 한다.

또 현대사회의 법과 계약 문제에 집중할 수도 있다. 법은 대체로 권력의 그림자를 따르고 권력은 돈의 그림자를 따르지 않는가. 가난한 자에겐 한 치의 틈도 허락하지 않는 법이 권력자에게는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준다. 여기서 이 작품의 비극이 탄생한다. 베니스 토착민들과 대적하는 이주민 샤일록은 돈이라는 권력을 쥔 인물로 베니스 법은 샤일록을 마음대로 유린할 수가 없었다. 공개 법정에서 편법을 쓴다면 베니스의 정의가 의심받을 것이다. 그래서 셰익스피어는 베니스 사람이 아닌, 벨몬트 사람 포샤로 하여금 모든 문제를 해결하도록 만든 게 아닐까? 제등 제가 못 긁으니. 그러나 사실 우리는 충분한 권력을 가진 포오샤가 토착민들의 여론을 등에 업고 돈 많은 이주민을 응징할 그럴듯한 논리를 설파할 때, 그녀의 주장이 비논리적이고 억지스럽다고 느낀다. 객석에서 <말도 안 돼> 라는 외침이 터져 나오길 바라고 법정 장면을 쓴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왜 포오샤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억지 논리로 샤일록을 응징하려 했을까? 그리고 왜 작품의 절정에 모든 우주의 기운이 한곳으로 모이듯 모든 인물이 포오샤의 집으로 모인 걸까?

항성의 힘으로 정해진 궤도를 도는 행성들처럼 모든 복수는 정의라는 궤도를 따라 돌고 돈다는 것을 보여주려 한 걸까? 정의는 인간의 법, 자비는 신의 법이란다.

정체성이란 무엇인가. <연출가 박정의>

장점이 집단 이성의 힘이라면 단점은 집단 광기일 것이다. 오래된 고전 <베니스의 상인>에서 보이는 집단 광기, ‘한 인간을 경제적으로 몰락시키고 그의 정신세계마저 강제로 부정’하게 만드는 힘의 근원은 무엇인가?

삶은 어쩌면 끊임없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확인하는 과정이 아닐까? 자신의 정체성이 스스로에게도 명확하게 느껴지고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고 있다고 인식될 때 안정된 삶, 보람있는 삶을 살 확률은 높아지는 것 같다.

작품을 통해 던지고 싶은 질문은 ‘정체성이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이다. 스스로 ‘내가 누구인지’ 정의 내리지 못할 때, 타인의 정의, 또는 국적, 직업, 누구의 아버지, 어머니, 누구의 아들, 딸, 누구의 남편, 부인과 같은 객관적 정의에 의지하게 된다. 그리고 대한민국 국민, 서울시민, 성북구민, 연극인, 극단초인 등 집단의 정체성은 타 집단에 대해 배타적 정체성을 부각하기도 한다.

찾지 못한 개인의 삶은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부유하게 된다. 불안정한 삶은 이유 없는 분노를 축적하게 만들고 집단의 정체성에 자신을 포함하려는 경향을 보인다고 한다. 그렇게 축적된 분노가 모여 타 집단에 대한 공격성을 표출함으로서 자기 집단의 정체성이 더욱 확고해진다고 느끼는 것 같다.

베니스의 상인>, 집단 지성을 믿는 사람들의 집단 광기에 관한 연구. 400년 전 이야기, 모든 것이 달라진 것 같아도 우리의 삶이 인간의 정신작용의 범주 안에 있으니 언제나 비슷한 상황은 반복된다.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부유하는 인간들의 분노, 그 방황하던 분노가 공격목표를 발견했을 때 이성이라는 제동장치는 얼마나 작동될 수 있을까? 삶을 찾아 모여든 사람들, 삶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다양성과 정체성. 대립이 아닌 보완이 되기 위한 고민을 해야 할 때다.

연극, 사람 사는 이야기<협력 연출 이상희>

유태인 샤일록, 그의 힘은 돈에서, 그의 열정은 복수심에서 나온다. 개처럼 벌어 이국땅 베니스에 뿌리를 내린 혁명가. 그러나 모든 혁명 1세대는 2세대에 의해 숙청된다고 했던가. 혁명가의 딸, 제시카는 아버지를 제거함으로써 폭력의 땅에 공존의 뿌리를 내린다.

포오샤가 밧사니오를 구원하고, 제시카가 로렌조를 구원하고, 네릿사가 그래시아노를 구원하고. 구원의 동아줄을 잡은 부유물들은 진보의 세상으로 한 걸음 나아간다. 한 세대 전 베니스를 무역과 금융의 도시로 이끌었던 안토니오와 샤일록의 세상은 이제 저문다.

독실한 기독교도이자 부유한 토착민. 기득권자 안토니오. 그는 성소수자라는 자신의 진짜 정체성을 가면 뒤에 숨기고 있다.

최상위 기득권자인 포오샤는 여자라는 이유로 자기 인생을 자기가 설계할 수 없다. 그녀는 지금 아버지가 남긴 유언에 갇혀있다. 그래서 그녀의 주체성에는 술책과 위장이 필요하다. 야곱이 아버지를 속이고 상속자가 된 것처럼.

가난한 토착민 밧사니오, 그래시아노, 로렌조. 노동의 가치는 한없이 떨어지고 싸구려 일자리마저 이주민들에게 빼앗긴 베니스의 부유물들. 그들의 선택은, 술과 사랑으로 도피하거나 도박과 로또를 향해 달려드는 불나방이 되거나.

그리고 네릿사. 그녀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아버지 아가멤논이 제물로 바친 딸 이피게니아가 떠오른다. 자비의 구원을 받아 신의 사제가 된 이피게니아. 우리는 그녀의 안타까운 시선을 통해 타들어 간 수많은 불나방들을 본다.

어떤 무대언어로 창작되나?

절제된 동작과 몸짓 안에 정체성을 찾아 떠도는 불안한 영혼들의 분노를 담고자 한다. 폭이 좁은 열두 개의 벤치가 오브제로 활용된다. 벤치는 집이 되기도 하고 길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바다로, 때로는 무대 안의 무대로 배우들의 움직임과 함께 새로운 심리적 공간을 창조한다. 가면으로 자신의 진짜 정체성을 가리기도 하고, 정체성을 찾지 못해 부유하는 자신을 가면으로 가리기도 한다.

원 작 : 윌리엄 셰익스피어
각색연출 : 박정의, 이상희

출 연 : 이상희,주선옥,김영건,이동인,김민규,임요한,장희정,한다희,김민정,박현숙,최예은

시놉시스

자신의 성 정체성을 숨긴 채 살아온 베니스의 거상 안토니오는 은밀히 사랑하던 밧사니오가 곧 자신을 떠날 거라는 우울감에 시달린다. 그때 엄청난 유산을 상속받은 벨몬트 최고의 부자 포오샤가 남편감을 고른다는 소식이 베니스에 전해진다. 인생 한 방을 노리던 밧사니오는 청혼자금 삼천 다카트를 빌리기 위해 다시 안토니오를 찾는다. 하지만 안토니오의 현금은 네 척의 무역선에 모두 투자된 상태, 베니스에서 삼천 다카트라는 거액을 당장 빌려줄 수 있는 사람은 유태인 샤일록뿐. 늘상 유태인을 박해하고 모욕주던 안토니오에게 복수할 기회를 노리던 샤일록은 삼개월이라는 기한을 어길 경우, 안토니오의 살 일 파운드를 원하는 부위에서 베어내겠다는 조건으로 삼천 다카트를 빌려준다.

밧사니오가 벨몬트로 떠나던 날, 밧사니오의 마지막 만찬에 초대받아 샤일록이 집을 비운 사이, 샤일록의 딸 제시카가 아버지의 돈을 훔쳐 달아난다. 딸의 도주가 안토니오와 밧사니오의 계략이라 생각한 샤일록의 분노는 극에 달한다. 그리고 삼개월 뒤 밧사니오는 청혼에 성공하지만, 무역선 네 척이 모두 파선한 안토니오는 돈을 갚을 수 없게 된다.

샤일록은 밧사니오가 제안하는 열 배, 스무 배의 위약금을 모두 마다하고 차용증에 적힌 대로 안토니오의 살 일 파운드를 베어내겠다고 선언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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