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스TV=김아라 기자] 2023 <여우락>의 포문을 여는 개막작은 윤진철, 김동언의 <불문율>이다. 판소리 명창 윤진철과 동해안별신굿 명인 김동언이 판소리 강산제 ‘심청가’와 동해안별신굿의 ‘심청굿’을 번갈아 주고받는 공연이다. ‘심청가’와 ‘심청굿’은 서사는 같지만, 소리를 하는 이유, 전하는 방식, 장단 등에 차이가 있어 같이 무대에 오르는 일이 없었다. <불문율>은 서로 만난 적 없는 두 세계를 마주하게 한다. 11살에 소리를 시작해 최연소로 판소리 무형문화재에 오른 윤진철 명창과 故김석출의 셋째 딸로 태어나 9살부터 굿판에 선 김동언 명인, 일생을 바쳐 각자의 분야에서 경지에 오른 두 대가가, 서로 다르지만 그 깊이만큼은 같은 두 전통의 만남으로 한국음악계의 새 역사가 될 무대를 꾸민다.
윤진철 명창이 부를 강산제 ‘심청가’는 흔히 보성소리라 한다. 사설이 섬세하게 다듬어져 있으며, 우아하고 기품 있는 소리를 지향한다. 윤 명창은 판소리 ‘심청가’의 예능보유자이자 보성소리의 맥을 이어온 정권진 명창의 마지막 제자로, 엄격하면서도 자유로운 소리를 그대로 이어받았다. <불문율>에서도 깨끗한 소리와 정교한 표현으로 강산제 ‘심청가’의 우아한 소리를 올곧게 표현한다.
김동언 명인이 부를 ‘심청굿’은 동해안별신굿에서 심청전의 내용을 바탕으로 자손들의 눈병을 예방하고 효자‧효부가 많이 나기를 기원하는 굿거리다. 평균 4시간에 걸쳐 진행되는 장편 서사무가로 주로 ‘큰무당’들이 연행해 왔다. 김동언 명인은 판의 기운을 쥐락펴락하는 이 시대 최고의 무녀답게 소리 한 자락, 손짓 한 번에 청중을 울고 웃게 하는 ‘심청굿’을 선보인다.
국립창극단 기악부장으로 활동 중인 조용수가 고수로 나서며, 동해안별신굿 보유자 김동열과 동해안별신굿 이수자인 김진환·전지환이 징·장구·꽹과리 연주로 두 판의 만남에 신명을 더한다. 무대는 심청의 효성에 감복한 용왕이 심청을 연꽃에 태워 인당수로 돌려보내는 장면을 모티브로 해 다양한 색감의 연꽃등으로 화려하게 꾸며진다. 또한 무대 위에 60여 개의 마당석을 마련해 두 판의 만남이 만드는 새로운 지형 변화를 보다 가까이서 목격할 수 있도록 돕는다.
신이 되고 싶었던 두 아기씨의 꽃 피우기 내기.
다시 쓰는 신화, 지화(紙花) 밭에서 판소리를 만나다.
<종이 꽃밭:두할망본풀이>는 제주도 무속신화 ‘생불할망본풀이’를 판소리와 재즈, 동해안별신굿의 지화로 표현한 1인 판소리 음악극이다. 판소리를 기반으로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창작자 박인혜가 극본·연출·작창·배우를 모두 맡았으며, 故김석출·故김용택·故김정희에게 동해안별신굿의 무악과 지화를 전수받은 정연락이 지화 작가로 참여했다. 음악 감독으로 음악그룹 나무의 대표이자, 라벤타나의 멤버로 활동 중인 최인환이 함께한다.
제주도 무속신화 ‘생불할망본풀이’는 아기를 점지하고 돌보는 생불신의 내력담이다. ‘생불’은 불(인간)을 생기게 한다는 의미고, ‘할망’은 여신을 뜻한다. ‘동해용왕따님아기씨’와 ‘명진국따님아기씨’가 생불할망이 되기 위해 경쟁하는 이야기, 생불할망이 된 이후 마마신인 대별상신과 대립하는 이야기로 구성돼있다. <종이 꽃밭:두할망본풀이>는 두 아기씨가 생불신 자리를 두고 꽃 피우기 경쟁을 벌기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내기 결과 명진국따님아기씨가 생불신에 선발되나, 동해용왕따님아기씨와 타협을 통해 공존의 지혜를 보여주는 부분에 주목해 사랑과 연대에 관한 이야기로 각색했다. 두 아기씨는 삶의 곳곳에서 위기를 맞지만 포기하지 않으며, 기존 질서를 허물고 새로운 세상으로 함께 나아가길 선택한다. 박인혜는 “나와 남을 향한 미움이 만연한 세상에서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인 ‘생명’과 ‘사랑’에 대해 돌아보고자 했다”라며 연출 의도를 전한다.
무대는 작품의 주요 오브제인 지화로 채워진다. 굿에서 지화는 공간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기능을 넘어, 일상의 공간을 성스럽게 변화시키는 매개물이자 신이나 망자의 넋을 청해 모시는 ‘청신’과 극락세계로 인도하는 ‘송신’ 역할을 한다. 이번 작품에서는 동해안별신굿 및 오구굿에서 쓰이는 전통 지화와 <여우락>을 위해 지화 작가 정연락이 새롭게 창작한 지화가 무대 곳곳에 꽃 피운다. 두 주인공이 가진 소박하고 솔직한 모습을 부각하고자 전반부에는 흰색 꽃을 사용하며, 후반부에는 붉은 꽃을 중심으로 무대를 꾸민다.
한편 소리를 중심으로 베이스·아코디언 등의 서양 악기와 전통 타악기가 어우러지며 신화의 환상성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지화 밭에 꽃 피우는 생명과 사랑의 이야기를 더욱 섬세하게 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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