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동인 해후의 다섯 번째 만남, ‘낡은 일기장’

일기장에서 꺼낸 일곱빛깔 추억 연주
음악전문가 ‘해후(邂逅)’의 존재를 입증하다

이주영 칼럼니스트 승인 2024.03.07 16:09 의견 0

[댄스TV=이주영 공연칼럼니스트] 일기장에서 꺼낸 추억을 연주하다. 음악동인 해후(邂逅)의 다섯 번째 만남의 무대다. ‘낡은 일기장’이란 타이틀로 어린시절 추억을 소담스럽게 길어올린 시간이다. 2024년 2월 28일, 성수동 헤르만 아트홀에서 진행된 이날 무대는 따뜻했다. 온기를 전해준 자양분은 다양하다. 네 차례 공연을 통해 서로의 마음을 나누고, 공유했기 때문이다. 음악동인 해후는 2019년 6인의 해후 ‘기억과 위로’, 2020년 7인의 해후 ‘마음과 노래, 꿈 향기 그리움’, 2021년 8인의 해후 ‘음악, 마음의 노래, 바람 별 기다림’, 2022년 ‘삶 여정 추억 이별’이란 음악 이야기를 풀어냈다. 2024년 8인의 해후는 ‘낡은 일기장’이다. 음악을 통해 만나고, 삶과 마음을 읊는다. 이들은 ‘해후’라는 반가운 친구에게 각자의 일기장을 수줍게 꺼낸다. 시간을 머금은 일기장. 비뚤비뚤한 글씨가 오히려 더 반갑듯 해후가 주는 감동의 음표는 삶의 쉼표를 포근하게 드리운다.

음악동인 해후의 '낡은 일기장' 포스터

이번 무대는 총 일곱 개의 일기가 음악이란 숨을 내쉰다. 최소영, 홍현수, 김정림, 송영숙, 정현수, 정주리의 일곱빛깔 일기장이다. 일기장 글은 서사성을 부여한다. 그 글은 영상을 만나 기호화 된다. 마지막으로 연주를 통해 세상을 마주한다. 연주 전, 각 작품마다 영상과 내레이션이 친절하게 관객을 마중한다. 성찬이 될 먹음직한 애피타이저다. 본 코스인 음악은 작곡과 연주, 노래가 서로의 등을 토닥여주며 미학성을 높인다.

놀이터, 아빠, 숙제장이 기다림과 해방감을 동시에 바라본다. ‘최소영의 일기_놀이터에서...’다. 기다림의 시간을 캐논 선율로 녹여낸다. 서울대 음대와 독일 라이프치히 음대 석사 및 최고 연주자 과정을 졸업한 피아니스트 최소영의 연주와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지도단원 김정림의 해금 연주는 서정성 강한 울림이었다. 언제든 어린 딸을 위해 달려온 아빠의 사랑을 정성스럽게 불러낸다. 아버지에게 사랑이란 그리움을 띄운 헌정의 무대다.

최소영의 일기 '놀이터에서...’

이른 아침 아빠가 나를 깨운다. “자전거 타러 가자”. 그 목소리가 지금도 귓잔을 맴돌 듯 ‘홍현수의 일기’는 자전거 타기의 추억과 길군악이 자전거의 두 바퀴처럼 달린다. 당시의 벅찬 희망과 즐거움이 길군악의 화려한 가락과 리듬에 동여매진다. 국립국악관현악단 상주 작곡가를 역임한 강은구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 국가무형문화재 가사 이수자이자 12가사 연구회 대표인 홍현수의 정가가 조화롭다. 아정한 정가의 힘으로 그날의 일기를 다시 썼다.

가위바위보 놀이만큼 흥미진진한 게 없다. ‘김정림의 일기’는 이 놀이가 주는 박진감처럼 ‘비누방울’(작곡 최지혜)과 ‘피노각시’(작곡 이진구) 곡으로 추억을 빼곡히 수놓았다. 하늘로 날아가는 비누방울, 피오키오과 꼭두각시가 만난다는 상상만해도 희열을 주는 피노각시의 놀이성은 김정림(해금), 강은구(피아노)와 서울시무형문화재 판소리고법 이수자 정주리가 앙상블을 이뤄내 극대화 된다. 탐미의 시간이다.

김정림의 일기 "가위 바위 보 와'

일기장에 ‘엄마라는 일기’는 평생 써도 부족하다. 선릉아트홀 대표 및 예술감독인 송영숙은 일기를 쓴다. ‘엄마의 기도’다. 세상 모든 어머니께 바치고자 하는 정성어린 마음은 ‘정(精)’과 ‘성(誠)’을 다시 한번 환기시킨다. 기도하듯 자신의 심정을 풀어 낸 이 작품은 초대(1장), 추억(2장), 그리움(3장), 훨훨(4장)이란 각 장이 묵주에 알알이 박혀 그리움을 더한다. 송영숙의 철가야금과 아쟁 연주, 정주리의 장구과 징 연주에 월드뮤직 그룹 ‘지온’ 리더인 김윤환의 핸드팬・디저리두 연주 가세는 동서양 악기의 조화로움과 종합성을 이끌어 냈다. 즉흥적 화답이 준 음악적 대화다.

송영숙의 일기 ‘엄마의 기도’

‘정현수의 일기_술래의 노래’. 어릴적 숨바꼭질을 술래의 노래로 들려준다. 전남대학교 음악학과 정현수 교수의 곡에 홍현수의 노래, 김정림의 해금, 최소영의 피아노가 하나 돼 술래잡기 한다. 술래의 여정에 살아 숨 쉬는 나만의 여정. 이것이 삶 아닌가. 노래와 연주가 상승곡선을 긋게 한 이 작품은 오래된 시간 속을 지금 마주하듯 음악적 순도가 높다.

피날레를 장식한 ‘그림자 밟기’. ‘정주리의 일기’다. 쫓는 술래와 잡히지 않으려 달아나는 모습이 또 하나의 그림자가 된 시간. 정주리의 양금 연주에 국립국악원 정악단 단원인 김민주의 거문고 연주, 퍼커셔니스트 박광현의 연주가 술래잡기 하듯 놀이성 강하다. 동해안굿 음악이 지닌 고유의 장단과 카혼(Cajon)이 지닌 리듬감이 경쾌하다. 현(絃)과 타(打)의 공존감이 팽팽하다.

음악동인 해후(邂逅) 작곡가와 연주자

먼지를 털어낸 일기장에서 꺼낸 나의 이야기, ‘추억’. 그 추억은 세월속에 켜켜이 쌓여 오늘의 나를 만든다. 삶을 노래하고 이야기한 해후의 이번 무대는 음악전문가 동인(同人), 해후(邂逅)의 존재를 입증했다. 다음 만남을 기다려 본다.

이주영(공연칼럼니스트・고려대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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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댄스TV= 이주영(칼럼니스트)_음악동인 해후의 ‘낡은 일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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